남근숭배(男根崇拜.phallicism)는 행위나 성기(性器)에 의해 상징되는 생식 원리를 숭배하는 것으로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것이다. 그중 남근석은 남성기의 모양이 유사하거나 남성기를 상징하는 암석의 형태로 출산, 아들을 낳게 해달라는 기원, 여성의 바람기를 막거나 풍수 음양과 관계가 있다.
풍수風水에 의하면 땅은 만물을 키우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그 힘의 많고 적음에 따라 인간에게 주는 혜택도 달라진다고 한다. 밭이나 마을에 선돌을 세우게 된 것도 농경사회에서 풍요와 관련된 것이었다.
『한국의 성신앙 현지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자지바위, 좆바위, 남근석 등이 있고, 은유적 표현을 써서 돛대바위, 갓바위, 이 밖에 총각바위, 들바위, 말바위, 장수바위 등 그 수를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게 불리고 있는데 모두가 남성 성기와 관련된 이름들이다. 남근숭배는 전 세계적으로 퍼져있지만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것으로 풍수風水사상에 의해 남근석이 세워진 곳이 있다.
전라북도 군산시 개정면 발산리에 있는 총각바위는 170cm 정도인데 아낙네들이 바람이 자주 나므로 이를 누르기 위해 골짜기 입구에 세웠다고 한다. 대방산이 여성의 생식기처럼 생긴 음부형陰部形이라는 풍수사상과 관련이 깊다. 대방마을은 뒤로 대방산을 두르고 있는데, 대방산은 마치 소쿠리처럼 마을을 둥그렇게 감싸고 있다.
한편 동해안에는 해안가 서낭당에서 남근을 숭배하는 사례가 많이 발견된다. 해신당海神堂의 신들은 어부, 해녀, 어선 등 해상의 일들을 관장하고 수호하는 것으로 여겨서 어민이나 해녀의 집안에서는 이 신들을 중시하고 자주 해상의 안전과 풍어를 이 신들에게 빈다. 이 당들은 나무로 깎은 남근男根을 당에 바치는 주술적 풍요 기원으로 알려져 있는데,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신남에 있는 해신당은 우리나라 성 숭배 신앙을 대표하는 곳이다. 현재는 해신당 공원으로 조성되어 관광명소가 되었다.
신남마을 해신당에 전해 내려오는 슬픈 전설이 있다. 혼인을 약속한 처녀와 총각이 미역을 따기 위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돌섬에 처녀를 데려다주고 돌아온다고 했던 총각이 풍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처녀는 그 돌섬에서 애를 쓰다 죽었고 그 후 고기잡이 어부들이 나가면 돌아오지 않자 나무로 깎아 만든 남근을 사당에 걸고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 45cm의 거대한 음경을 가진 지증왕
한편 남근숭배 사상은 일연이 지은 『삼국유사三國遺事』에도 보이는데 신라의 지증왕과 경덕왕의 음경에 대한 이야기이다. 전 세계적으로 남성들의 공통된 로망은 대물 콤플렉스라고 보인다. 그렇다면 신라의 지증왕과 경덕왕의 거대한 음경은 어떤 의미일까?
『삼국유사三國遺事』 ‘지철로왕智哲老王’조를 보면 다음과 같은 설명으로 시작한다.
왕은 음경陰莖의 길이가 1척 5촌이나 되어 훌륭한 배필을 구하기가 어려워 사신을 삼도三道에 보내 배필을 구하였다. 사신이 모량부牟梁部(경주 왕궁에서 8km)에 이르렀는데, 동로수冬老樹 아래에서 개 두 마리가 크기가 북만한커다란 똥 한 덩어리를 양쪽에서 물고 다투는 것을 보았다. 그 마을 사람들에게 물으니 어떤 소녀가 고하여 말하기를 “이것은 모량부 상공相公의 딸이 이곳에서 빨래를 하다가 은밀히 숲속에 눈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그 집을 찾아 그녀를 보니 신장이 7척 5촌이나 되었다. 이 사실을 왕께 갖추어 아뢰자 왕은 수레를 보내 그 여자를 궁중으로 맞아들여 황후로 삼았고, 군신들은 모두 경하했다.
위 기록은 지증왕의 음경이 거의 45cm나 되어 배필을 구하기 어려웠고 지방의 관리 딸이 키가 크고 성기도 클 것이라 여겨 왕비로 삼았다는 내용이다.
현대 한국 남성 기준으로 발기 길이가 13cm라고 하니 엄청난 크기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과연 누가 왕의 음경 길이를 줄자로 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왕비가 거인증에 걸렸을 리 만무하다. 왕비가 7척 5촌의 키면 2m15cm이니 지증왕의 음경 크기에 맞춘 것으로 보인다. 이를 다르게 해석하면 왕이 중앙 귀족의 딸이 아닌 왕궁에서 떨어진 지역이었던 모량부 관리의 딸을 왕비로 삼았던 배경을 합리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지증왕은 사실 직계손이 아니었고 방계傍系였기 때문에 출신에 대한 컴플렉스도 있고 왕위에 오른 게 64세였다고 전한다. 당시 64세라면 대문 밖이 저승이라 해도 과하지 않을 나이였다.
따라서 지증왕의 거대한 음경은 그의 취약점을 감추는 동시에 업적을 더욱 높이 칭송하기 위한 상징으로 해석된다. 지증왕은 지철로왕의 시호(諡號: 왕이 죽은 후 붙인 이름)이다. 소를 이용해서 농사짓는 우경법牛耕法 실시, 신라新羅 국호 제정, 마립간麻立干이라는 부족국가 명칭에서 왕으로 시호를 정한 것 등은 왕권의 강화를 보여주는 정책이었다.
『삼국유사』에는 지증왕 이후 35대 경덕왕(景德王,?~765)의 음경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경덕왕은 음경의 길이가 8촌이었지만 자식이 없었다. 그래서 왕비를 폐위하여 사량 부인에 봉하고는, 후비로 만월부인을 두었다. 여기서 경덕왕은 음경이 24cm가 될 정도로 크다는 것과 새 왕비를 맞이한 이유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나중에 만월부인도 아이를 낳지 못하자 불국사의 승려 표훈대사表訓大師에게 간청을 하였다는 기사가 나온다. 훗날 아들을 얻었으니 36대 혜공왕이다.
경덕왕 대는 신라의 전성기로 전국의 행정체제 및 행정단위의 명칭을 대개는 한자식으로 개혁하며 귀족세력을 견제하면서 불교진흥으로 불국사를 창건하였다. 경덕왕의 음경 이야기도 왕권의 강화를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불국사는 당시 2000칸이 넘는 거대한 사찰이었고 현재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또한 에밀레종으로 알려진 성덕대왕신종은 부왕이었던 성덕왕을 치하하기 위해 만들었는데 가장 큰 동종銅鐘으로 그만큼 왕권과 국가의 재정이 튼튼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이다. 경덕왕 또한 지증왕과 같은 맥락으로 거대한 음경이라 기록하였다고 해석할 수 있다.
오늘날에도 남근숭배에 대한 잔재殘在는 상업 광고 등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한편 남근숭배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성범죄로 이어지면서 사회의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남근숭배는 농경사회가 남긴 유산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스타트업엔
'기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승준 칼럼] 예비창업자와 스타트업이 특허, 상표를 해결하는 방법 (0) | 2023.07.05 |
---|---|
[웨이브N INSIGHT] 스타트업의 밸류에이션, 기본으로 돌아가자 (0) | 2023.06.26 |
[전승준 칼럼] 기업들의 ChatGPT 비즈니스 활용 사례 (0) | 2023.06.13 |
[기고] '헬렌 Q'의 성(性) 이야기 4편 '조선 왕실의 스캔들과 성풍속' (0) | 2023.06.12 |
브리즈번 호주인들이 즐겨 찾은 장소 중의 하나인 선콥 스테디움(Suncorp Stadium) (0) | 2023.06.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