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의 업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
“사람들을 선입견을 가지지 않고 대하게 되면, 사람보다는 콘텐츠에 더 집중하게 되고 메시지에 더 집중하게 됩니다.”
“스타트업은 스스로 내가 일을 잘한다라는 기준을 세우고 나는 일을 잘해라고 스스로 평가를 해야되는데... 이 부분이 사실 충격적입니다.”
농업계의 구글, 농슬라(농업계의 테슬라)의 별칭으로 불리는 스타트업이 있다. 농업 플랫폼, 스마트팜, 유통 혁신 플랫폼, 탄소사업, 농가들에 대한 금융서비스 등 다양한 사업영역을 펼치고 있는 ㈜그린랩스는 ‘지속 가능한 방법으로 인류의 먹는 것을 혁신합니다’라는 비전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린랩스의 최만항 법무실장을 만나 인터뷰했다.
Q. 법무법인과 대기업, 스타트업을 두루 경험하셨는데요, 스타트업만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A. 저는 로펌에서 대기업, 대기업에서 외국계 글로벌 기업 그다음에 스타트업으로 계속 초기 기업쪽으로 넘어왔습니다. 이렇게 점진적으로 넘어오다 보니 대기업에 있다가 바로 스타트업으로 오신 분들에 비하면 처음 스타트업에 왔을 때의 충격은 덜하긴 합니다.
대기업과 스타트업은 기업문화가 확실히 다릅니다. 어느 쪽이 더 좋은지 비교를 많이들 하는데 일반적으로 대기업은 보통 입사를 해서 일을 해보면 내가 하는 업무가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계속되던 업무인 경우가 많습니다.
업무 매뉴얼이 있거나 관행이 있어서 다른 방식으로 일을 하면 다른 부서들이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갈등이 발생하기도 해서 대개 기존 매뉴얼대로 업무를 진행하는 걸 선호하게 됩니다. 하지만 스타트업에서는 그런 시스템이나 관행 자체가 아예 없습니다. 매뉴얼도 스스로 만들어야 되는데 다른 대기업에서 하던 방식대로 한다고 절대로 일이 돌아가지 않습니다.
항상 정해진 틀에서 업무를 하시는 것이 익숙한 대기업분들이 스타트업에 처음 오시면 갑자기 인정을 잘 못받는다고 느끼는 경우도 많습니다. 예들 들어 상사에게 업무보고를 하는데, 보고서 양식이 정해져 있지 않으니 어떤 분들은 형식을 갖춘 보고서를 열심히 만드는 동안 다른 분들이 메신저로 실시간으로 보고 하고 업무를 진행해버리면 속도를 못 따라간다고 평가받기도 합니다.
대기업의 경우 일을 잘한다 못한다의 기준이 어느 정도는 정해져 있고 오랜 시간 동안 조정이 되어왔지만, 스타트업은 그런 기준이 정립되어 있지 않고 자주 바뀌기 때문에 일을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한 정해진 해답을 찾기 어렵습니다. 스스로 내가 일을 잘한다고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우고 스스로 평가를 잘해야 되는데 이 부분은 주어진 기준에 맞추어 따라가던 방식으로 일을 하던 사람에게는 어려운 영역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동안 숙련되어 왔던 행동 양식의 기준들이 완전히 다 바뀔 수 있는거죠.
Q. 아무리 스타트업이라고 해도 회사의 방향이나, 대표이사의 철학 등 기준이 있지 않습니까?
A. 그 기준이라는 것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스타트업은 특히 비즈니스 모델이 변화하는 경우가 많고 구성원들과 시장 환경도 빠르게 바뀌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희 그린랩스의 예들 들어도 불과 1~2년 전의 주력 사업과 지금 집중하는 사업 모델이 완전히 다릅니다. 회사가 생각하는 사업의 방향성이 있다 하더라도 6개월만 지나면 시장 환경의 변화에 따라 또 바뀌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한 해 동안 나간 사람도 많고, 들어온 사람도 많습니다. 그린랩스도 직원 수가 200여 명에서 600여 명까지 늘어나는데 1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때문에 교육도 어렵고 좀 적응이 되려고 하면 또 구성원들이 바뀌고... 아니면 어떤 사업모델을 가지고 이제 좀 익숙해지면 사업모델이 바뀌어 있거나 조직 자체가 다 바뀌어 있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경험해 본 바로는 정체성을 정립해 나가는 과정을 겪는 시기가 스타트업이라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다 정립되고 비즈니스 모델도 확정되고 안정적으로 회사가 운영된다면 더이상 스타트업이라고 하긴 어렵겠죠. 저희도 빨리 그런 날이 오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Q. 실장님께서 경험하신 외국계 스타트업과 한국 스타트업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A. 제가 근무했던 회사는 유럽 회사로 본사가 독일에 있었는데, 실제 글로벌에 있는 직원 수도 2만 명이 넘는 다국적 그룹입니다. 국적이나 인종, 사용하는 언어도 40여 개가 넘다보니 그룹 내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는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라는 표현이 있잖아요.
그런데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일을 하는 다국적 기업에서는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요. 그러다보니 커뮤니케이션은 당연히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상대방이 내 의사를 이해하고 나도 상대방의 의사를 명확히 이해하려면 엄청 노력을 해야 된다는 게 기본으로 깔려 있어요. 영어를 기본으로 사용을 하지만, 각자 모국어는 다 다르고 각자가 쓰는 영어의 뉘앙스도 다르기 때문에 명확하게 표현을 하지 않으면 소통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회사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그걸 꼭 말로 해야 아냐"라고 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글로벌 회사에서는 말로 안 하면 안 한 거예요. 한국은 아직 권위주의 문화라든지 상사의 의중을 파악하는 사람이 인정받는 분위기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글로벌 회사에서는 그런 기준이 없다 보니 사람들을 선입견을 가지지 않고 대하게 되고 사람보다는 콘텐츠에 더 집중하게 되고 메시지에 더 집중하게 됩니다.
Q. 글로벌 회사에서는 소통을 위한 시스템이 있나요?
A. 아니요. 그 부분은 결국에는 노력입니다. 한국에서 일을 할 때는 소속 구성원한테 일을 시킬 때 보통은 그냥 말로만 툭 던지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런데 글로벌 회사에서는 말로 하고 다시 메시지도 보내고 이메일로 보내고, 중간중간 제대로 이해한 건지 계속 확인해야 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오해도 적고, 메시지가 간명해지니까 갈등의 소지가 줄어듭니다.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사용하는 것이 인상 깊었고 한국 회사로 온 다음에 그 부분들이 조금 아쉽긴 했습니다. 예들 들면 높은 상사랑 회의를 하고 나왔다가 내가 잘 못 알아들은 것 같고 뭔가 좀 정리를 해보니까 다시 물어봐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과 ‘해석’을 하려고 전전긍긍하는 경우들이 있죠. 못 알아들었다고 비난받을까 두려워 용기가 필요한겁니다.
그런데 거기서는 너무 당연한 거예요. 필요하면 언제든지 당연히 물어봐야 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일을 하는 사람이 100% 알지도 못하면서 일을 한다면 오히려 일을 잘못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Q. 현재 법무팀에서 사용하고 있는 시스템은 무엇이 있나요?
A. 리걸 스타트업인 ‘법틀’에서 개발한 솔루션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용해 본 결과 법무에 특화돼서 아주 편리합니다. 예전에는 계약서 원본을 창고 같은데 보관을 했었는데, 아무래도 훼손되기도 쉽고 자료를 찾을 때도 불편했습니다. 이런 자료들을 다 소프트카피로 저장할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입니다.
사실 법무 솔루션을 쓰는 회사는 아직 많지 않고 오히려 대기업들은 회사에서 개발해서 쓰는 경우들이 있어요. 대기업이 아닌 일반 기업들은 법무를 위한 솔루션을 따로 써야 된다고 생각하기도 쉽지 않고 그냥 일반 그룹웨어를 쓰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희도 처음에는 엑셀파일 같은 걸로 출력해서 공유하다가 클라우드 서비스도 이용해 보고, 노션같은 협업 툴도 사용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 걸 한 번에 다 해결해 줄 솔루션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그때 알게 된 게 법틀이었습니다. 이것저것 다양한 툴들을 조합해서 사용을 해본 경험이 있어서, 현재 사용중인 법틀이 얼마나 편리한 법무 솔루션인지 알게 되었다고 보는게 맞을 것 같습니다.
Q. 스타트업에서 근무하시면서, 인상적인 에피소드가 있으시다면 소개해 주세요~
A. 법무법인의 의견을 어떠한 문제에 대해 ‘안된다’는 의견을 받은 적이 있는데, 사업부서에서는 ‘안된다’는 답을 받을 거라면 법무법인의 의견을 구할 이유가 뭐가 있느냐고 한 적이 있습니다. 대기업에서는 그런 ‘안된다’는 의견도 필요할 때가 많은데 스타트업은 그러면 되는 방향이 무엇인지 찾아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니까요. 결국에 어떻게든 해결 방법을 찾아서 해결한 적이 있는데 법률 전문가로서의 한계를 뛰어넘는 경험을 한 것 같았습니다.
법무 기능을 강화하면서 전에는 되던 것들이 이제는 안 되는 것들도 생겨나는데, 직원들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렵거나 납득하지 못하기도 하고 심하면 불만을 토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분들을 하나하나 설득하면서 기존의 업무가 어려워지지 않도록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는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는데요. 시간이 지나 이러한 역할들의 중요성을 깨닫고 협조적으로 변하는 분들을 보면서 성취감을 느낄 때도 많았습니다.
법무법인이나 대기업에서 일할 때에는 정장을 입고 다녔는데 스타트업에서는 편한 복장을 보통 입다가 간혹 재판을 나가거나 할 때 정장을 입고 오면 누군지 못 알아보고 어디서 오셨냐고 한 적이 있네요.
Q. 기업법무팀(기업변호사)를 꿈꾸는 현직 변호사나 예비 변호사를 위해 조언을 해 주신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A. 사내 변호사가 법무법인에 비하면 업무가 편하고 안정적이라고 선입견을 가지는 분들도 있는데, 기업 내에서의 법무도 그 역할이 매우 중요해지고 있고 하고자 한다면 정말 많은 어려운 일들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도전적인 정신과 성장에 대한 열망이 큰 분들이 지원하시면 좋겠습니다.
최근 사내 변호사의 숫자가 매우 많이 늘었지만 아직 기업 환경에서는 다른 기능들에 비하면 여전히 소수이고 역할 또한 고정적이거나 한정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법무 인력을 채용하는 사람들조차 법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잘 모르는 경우도 많아요.
그래서 사내 변호사 한 사람 한 사람이 기업 환경에서 법무의 역할과 기능, 그리고 성장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 대변인이라고 보셔야 합니다. 특히 선배들이 잘못된 길을 걷게 되면 후배들에게 갈 수 있는 많은 기회를 빼앗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기업 변호사라고 하면 오너들의 문제점을 덮어주는 이미지 정도였죠. 하지만 이제는 수많은 훌륭한 변호사들이 기업에서 여러 가지 어려운 역할을 수행하면서 지평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사내 변호사들 중 본인은 회사원이기 때문에 법무법인의 변호사처럼 전문성이 없어도 되고 변호사이기 때문에 일반 직원보다는 우대받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런 소수의 변호사들 때문에 다른 후배들까지 폄하되거나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사내 변호사는 훌륭한 변호사이면서 동시에 훌륭한 회사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Q. 그린랩스의 향후 비전과 목표는 어떻게 되나요?
A. 그린랩스의 비전은 ‘지속 가능한 방법으로 인류의 먹는 것을 혁신합니다’입니다. 저희는 농수축산물의 생산부터 판매까지 모든 과정을 하나로 해결할 수 있는 솔루션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데이터 농업 플랫폼, 스마트팜, 유통 혁신 플랫폼, 탄소사업, 농가들에 대한 금융 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를 개척하고 있습니다. 농업계의 구글, 농슬라와 같은 별칭을 실현시키고자 전 직원들이 어려운 환경에 뛰어들어 고생하고 있습니다.
먹는 것과 관련된 문제는 인류의 가장 본질적이고 핵심인데, 그동안 정부, 지자체, 대기업뿐만 아니라 많은 곳에서 여러 가지 발전과 혁신을 지향해 왔지만 워낙 오래된 전통과 이해관계자들이 많고 난이도가 높은 분야라 애그테크 쪽에서 파괴적인 수준의 혁신이 일어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린랩스는 현재 수많은 우수한 인력들이 모여 가장 어려운 분야를 개척하고 혁신을 실현하려는 기업입니다. 저희가 실패한다면 정말 이 분야는 가능성이 없다고까지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어서 많은 분들이 지지해 주고 응원해 주시고 있습니다.
Q. 마지막으로, 실장님께서 생각하시는 본인의 향후 목표 및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A. 우스갯소리로 저는 사농공상과 1~4차 산업을 다 경험해 봤다고 얘기하고는 하는데, 그린랩스가 그중 마지막 조각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저는 기업 변호사와 기업 내 법무조직의 가장 이상적인 모델을 만들어 다른 기업들과 법무 인력들에게 좋은 사례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후에는 그린랩스가 최대한 성장하고 성공하여 보다 많은 스타트업들이 성공할 수 있는 토양이 되고 여기에 양분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결국 사회에서는 사람과 기업이 농작물이니까요.
스타트업엔 유인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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