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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 16

[기고] 김강윤 소방관의 이야기 38편 '있을 때 잘하자'

◇있을 때 잘하자 아침 일찍 출근하며 또 한숨이다. 아침잠이 많은 아내는 아직 한밤중인데 그런 아내를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얼마나 곤히 자는지 출근 준비로 이것저것 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에도 깨지 않는다. 측은한 마음에 한참을 보다 현관문을 열었다. 마음이 천근만근이다. ‘괜찮아야 할 텐데...’ 일주일 전 아내가 골반이 아프고 몸이 피곤하다며 부인과 진료를 받았다. 다음 날, 증상이 좋지 못하다는 말에 조직 검사를 또 했다. 의사 말인즉슨 '자궁경부암' 검사란다. 아내가 덤덤히 그 말은 나에게 전하는데 나는 숨이 턱 막혀 말을 잇지 못했다. '암'이라니... 식사 중에 아무렇지 않은 듯 말을 하는 아내를 앞에 두고 끝내 밥을 다 먹지 못했다. 식사를 마치고 밤 산책을 나갔는데 딸아이와 앞서 걷는..

기고 2021.11.23

[전준우 칼럼] 'Resque, 그 아름다운 이름에 대하여'

◇소방관이 되다 학창시절, 친하게 지내던 선배가 있었다. 사실 내 편에서 친해지려고 부던히 노력한 경우였다. 훤칠한 키에 미남형 외모, 굳게 다문 일자형 입술을 가진 그 선배는 또래 남학생이 봐도 상당한 매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하루는 어떤 초등학교 여학생이 연락처를 묻더란다. 가르쳐주었더니 그 때부터 결혼하자고 졸라서 애를 먹었다고 했다. 길거리에서 어머니랑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본 여학생이 "나 말고 만나는 여자가 있느냐"며 떼를 쓰는데 달래느라 진땀을 뺐다는 이야기도 해주었다. 미남은 어디에서나 통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사건이었다. 그 선배는 학교를 대표하는 마라톤 선수였다. 대다수의 학생들이 기진맥진해서 쓰러질 때 선배는 숨만 조금 고를 뿐, 인상 하나 찌푸리지 않고 1등으로 들어왔다. 고..

기고 2021.09.13

[기고] 김강윤 소방관의 이야기 37편 '당신이 모르는 위험'

◇당신이 모르는 위험 술을 좋아했다. 지금은 거의 끊었지만(아주 가끔 집에서 아내와 맥주 한 잔은 한다) 남부럽지(?) 않게 많이 마셨다. 술이라면 자다가고 뛰어나갔고, 술 약속이 있는 날엔 아침부터 두근거렸다. 술 마신 다음 날의 숙취의 고통은 잠시, 야간 근무를 하는 날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마셨다. 알코올 중독은 아니더라도 알코올 의존증은 분명했다. 나름 술 버릇이 있었는데 그것은 여기저기 전화를 해대는 것이다. 늦은 밤 가족, 친구, 지인 등 술 취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 기억하지도 못하는 말을 쏟아냈다. 좋은 마음으로 했다고 해도 받는 사람은 여간 곤욕이 아닐 것이다. 잘 시간에 전화 받으니 혀 꼬부라진 말로 어쩌고저쩌고하면 난감함이 이를 데 없다. 그래도 나는 그것이 나름의 애정표현 정도로만..

기고 2021.07.27

[기고] 김강윤 소방관의 이야기 36편 '운동을 해야 하는 가장 강력한 이유'

◇운동을 해야 하는 가장 강력한 이유 현대인에게 운동은 미(美)적 관점일 것이다. 다이어트라 불리는 운동은 몸을 가꾸고 아름답게 만드는 데 목적을 많이 둔다. 단언하기엔 뭐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운동은 다이어트에 결정적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론 근육량을 늘리고 열량을 소모함으로써 어느 정도 이바지하기는 하겠지만 식단 조절이 동반하지 않은 운동은 결코 당신의 몸을 멋지게 해주지 않는다. 수영을 15년 했다. 아마추어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선수 출신 강사의 지도를 받으며 엄청난 연습량을 소화하며 운동했다. 운동만이 능사라면 나의 몸은 각지고 멋진 근육을 가졌어야 했지만 나는 단 한 번도 그런 몸을 가져보지 못했다. 왜냐면 나는 수영이라는 운동을 하며 식단 조절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더 많..

기고 2021.07.26

[기고] 여름철 해수욕장 안전에 관하여

◇여름철 해수욕장 안전 코로나로 세상이 멈추고 많은 시간이 지났다. 세상 사람들은 오랜 시간 동안 집 안에만 머무르며 질병의 위험이 지나가기를 바랐을 것이다. 이제는 각고의 노력으로 조금씩 빛이 보이는 듯도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가오는 여름에는 많은 사람이 피서를 즐기기 위해 바다나 강, 계곡이나 하천을 찾을 것으로 예상한다. 그중에서도 바다는 늘 많은 사람이 찾는다. 해운대, 광안리 등 유명한 해수욕장이 있는 대도시 부산을 지키는 소방관들은 벌써 수십 년째 바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올해도 해수욕장에 파견 근무를 하고 있다. 119 구조대원들의 노력과 함께 관련 기관과 민간 구조대원들의 힘까지 합쳐 단 한 건의 안전사고도 발생하지 않게 하려고 이미 만반의 대비를 하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직접 바..

기고 2021.06.24

[기고] 김강윤 소방관의 이야기 28편 '2001년 3월, 홍제동'

◇2001년 3월, 홍제동 나이가 마흔이 넘어가며 그나마 꾸역꾸역 살아 온 지난 날들을 돌아보면, 이런저런 기억에 때론 쓴웃음 짓고 때론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한다. 지나간 일 들춰서 뭐 할까보냐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도 난 가끔 멍하니 옛일 생각하는 시간이 나름 귀한 때이다. 지난 1월 책을 출간하며 사람들의 많은 관심과 과분한 축하를 받았다. 내 글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건 나 자신일 텐데 나보다 더 내 글을 좋아해주며 알아주는 사람들이 그리도 많다는 것에 매일 놀라면서 또 감사했다. 그중에도 책 출간을 자기 일처럼 좋아해줬던 구조대원 후배가 있다. 수년 전, 지척에 살며 가끔 아니 자주 술잔을 기울이던 후배다. 190이 넘는 큰 키에 늘씬하고 잘 생긴 한 살 아래 동생이었던 '인섭이'는 누구보다 ..

기고 2021.03.05

[기고] 김강윤 소방관의 이야기 27편 '사유(思惟)의 이유'

◇사유(思惟)의 이유 1월의 저물녘에 낡아빠진 경운기 앞에 돗자리를 깔고 우리 동네 김 씨가 절을 하고 계신다. 밭에서 딴 사과 네 알 감 다섯 개 막걸리와 고추 장아찌 한 그릇을 차려놓고 조상님께 무릎 꿇듯 큰절을 하신다. 나도 따라 절을 하고 막걸리를 마신다. 23년을 고쳐 써 온 경운기 한 대 야가 그 긴 세월 열세 마지기 논밭을 다 갈고 그 많은 짐을 싣고 나랑 같이 늙어왔네! 그려 덕분에 자식들 학교 보내고 결혼시키고 고맙네! 먼저 가소! 고생 많이 하셨네 김 씨는 경운기에 막걸리 한 잔을 따라준 뒤 폐차장을 향해서 붉은 노을 속으로 떠나간다. 박노해, 전문 시를 즐기지는 않지만 아름다운 이 시를 어느 책에서 보았다. 말로만 듣던 박노해 시인의 시인 가보다. 더 많은 그의 시를 읽지는 못했지만,..

기고 2021.02.23

[기고] 김강윤 소방관의 이야기 26편 '강은 흐른다'

◇강은 흐른다 낙동강은 아주 긴 강이다. 발원지인 강원도 태백에서부터 다대포와 만나는 을숙도 끝단까지 500여 km가 넘게 기다랗게 흐른다. 경상북도와 대구, 경상남도와 부산을 가로지르며 때론 넓고 얕게, 때론 좁고 깊게 굽이쳐 내려온다. 영남 사람들에겐 생명수와도 같은 낙동강. 그래서 '영남의 젖줄'이라고도 부른다. 이런 낙동강 최남단 하류 즉 경남 양산 호포에서 을숙도 하굿둑까지 22km 지역이 내가 근무하는 '낙동강 119수상구조대'의 관할 구역이다. 이 구역을 '본류'라고 한다. 또 김해 초장리부터 부산 강서 녹산까지 54km 지역을 '지류'라 하여 이곳 역시 관할 구역에 속한다. 방대한 넓이의 이 물길을 119수난구조 전문대원 14명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지키고 있다. 소방관이 불가에 안 가고 ..

기고 2021.02.23

[기고] 김강윤 소방관의 이야기 25편 '내 인생에는 꿈이 없었다'

◇내 인생에는 꿈이 없었다 어린시절에 사실 나는 꿈이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다. 막연했고, 멀었다. 꿈이라는 게. 누구나 그런 줄 알았다. 내 주위엔 다 그랬기 때문이었다. 남들처럼 하라면 했고, 가라면 갔다. 같은 옷을 입고 잘 짜여진 교실에서 네모난 책상 앞에 줄 맞춰 앉아 같은 말을 하고, 같은 말을 들어야 했다. 그러다가 가지 못했다. 가라고 해서 갈거라고 했던 대학이었는데 대학은 나를 받아주지 않았다. 적잖은 실망이 밀려왔다. 뒤로 밀려 혼자 서 있는 듯 느껴졌다. 결국 인생이라는 게 일렬횡대로 가 같이 가지 못한다는 것만 뼈져리게 깨달았다. 20대가 되어서도 꿈이란 것은 없었다. 아무리 봐도 그랬다. 대학에 두번 떨어지고, 부끄러움이 몰려와 선택한 군인의 길. 다행이었고 잘한 선택이었다..

기고 2021.02.22

[기고] 김강윤 소방관의 이야기 24편 '선언(宣言)'

◇선언(宣言) 미식축구 NFL 역사상 최고의 선수이자 최고의 쿼터백으로 평가받는 톰 브래디. 소속팀 뉴 잉글랜드 패트리어츠를 18시즌 동안, 16번의 디비전 우승, 13번의 챔피언십 진출, 그리고 9번의 슈퍼볼 진출과 역대 최고인 6번의 슈퍼볼 우승의 위치에 올려놓은 전설적인 선수다. 개인적인 수상도 상상을 초월한다. NFL의 역사에 있어 위대한 선수로 추앙받는 조 몬태나와 테리 브래드쇼를 넘어서는 슈퍼볼 역대 최다 우승을 했고, 슈퍼볼 역대 최다 우승 쿼터백이라는 타이틀도 얻었으며, 슈퍼볼 MVP 역대 최다 수상 기록인 4번의 슈퍼볼 MVP도 수상했다. 프로스포츠의 천국인 미국에서 그것도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에서 이룬 그의 전인미답의 기록들은 향후 깨지기가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하지만 그..

기고 2021.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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