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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김강윤 소방관의 이야기 26편 '강은 흐른다'

스타트업엔 2021. 2. 23.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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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 흐른다

낙동강은 아주 긴 강이다. 발원지인 강원도 태백에서부터 다대포와 만나는 을숙도 끝단까지 500여 km가 넘게 기다랗게 흐른다. 경상북도와 대구, 경상남도와 부산을 가로지르며 때론 넓고 얕게, 때론 좁고 깊게 굽이쳐 내려온다. 영남 사람들에겐 생명수와도 같은 낙동강. 그래서 '영남의 젖줄'이라고도 부른다. 이런 낙동강 최남단 하류 즉 경남 양산 호포에서 을숙도 하굿둑까지 22km 지역이 내가 근무하는 '낙동강 119수상구조대'의 관할 구역이다. 이 구역을 '본류'라고 한다. 또 김해 초장리부터 부산 강서 녹산까지 54km 지역을 '지류'라 하여 이곳 역시 관할 구역에 속한다. 방대한 넓이의 이 물길을 119수난구조 전문대원 14명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지키고 있다.

사진=김강윤 소방관 제공

소방관이 불가에 안 가고 물가에 왜 있는가 물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람 살려야 하는 일을 하는데 물불을 가리겠는가? 오히려 화재사고는 조금씩 감소하고 있고 재난의 형태는 더 다양해지고 있다. 인간 사회가 발달하고 더 편해진 것도 같은데 주변의 위험은 오히려 줄지 않고 있다. 물에서 일어나는 사고 역시 그렇다. 최근 2년간 관내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수난(水難) 사고는 평균 250건이 넘는다. 그중 인명구조는 연평균 25건 이상이며 실종자 수색 및 안전조치 역시 연평균 30건이 넘는다. [낙동강 119수상구조대 구조출동 통계 인용]

 

강물은 바다와 다르게 잔잔하고 고요하다. 널따랗게 펼쳐진 논처럼, 마룻바닥에 깔려진 장판처럼 평평하게 흐른다. 새벽녘 호숫가처럼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분명히 흐른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더 넓은 바다로 흐른다. 크고 작은 땅위의 물이 여기에 다 모이니 수량(水量)이 많아서 마치 멈춰 선 듯 보일뿐 무척이나 빠르게 흘러간다. 그래도 가만히 있는것처럼 보이는 그 모습만큼은 한없이 평안하다. 강이 주는 매력이다. 하지만 비가 많이 오거나 태풍이 닥칠 때면 강물도 여지없이 요동친다. 시뻘건 황토물로 변해 뭍으로 넘쳐 모든 것을 잠기게 만들기도 하고, 세차게 넘실대며 빠르게 흘러가며 강 주위의 생명을 집어삼킬 듯 넘실거리기도 한다. 그땐 강이 무섭다. 아니 물이 무섭다.

흐르는 강, 석양 그리고 119 (사진=김강윤 소방관 제공)

강이라는 자연환경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어민들이다. 낙동강의 본류와 지류 모두에 어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많다. 바다의 그것과는 다르게 작은 어선에 많아봤자 두어 명이 타서 조업을 하는데, 가끔 오며 가며 볼때면 잘 잡히느냐 묻는다. 그때마다 돌아오는 답은 다르다. 배 안에 언뜻 보이는 물고기들도 그때마다 그 양과 종류가 다르다. 생업으로 이어가기에는 버거워 보여 더 묻지 않는다.

강은 땅의 삶에도 관여한다. 강 주위 김해평야는 낙동강의 물을 먹는다. 말 그대로 젖줄이다. 낙동강이 주는 영양분이 대지의 작물을 자라게 한다. 바다에 맞닿는 삼각주의 땅은 기름지고 풍성하다. 김해평야는 삼각주의 풍요로움을 그대로 안고 위쪽으로는 벼농사가, 아래쪽으로는 토마토와 같은 채소 농사가 번창한다. 이곳의 작물은 낙동강이 주는 찰지고 진한 영양분을 고스란히 받아먹고 자라 그 맛과 영양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강가에서 여흥을 즐기는 업(業)을 하는 사는 사람들도 있다. 수상스키와 웨이크보드를 즐기고, 제트스키와 같은 고급 레포츠도 요즘 부쩍 많이 보인다. 하얗고 커다란 요트를 띄우고 그 안에서 여유와 낭만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석양을 등지고 떠있는 요트는 강과 산과 하늘에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낸다.

겨울 낙동강(사진=김강윤 소방관 제공)

강가에 있는 캠핑장엔 주말 밤이면 캠핑족들로 인산인해다. 코로나로 주춤하지만 이전에는 따뜻한 모닥불을 피워놓고 가족들과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강가를 끼고 만들어진 길은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그중에 자전거 도로가 백미다. 낙동강 물줄기를 따라 끝없이 이어지는 자전거길은 '국토종주 길'이라 하여 내륙으로 무려 300여 km를 뻗어나간다. 땅 위의 길은 사람이 만들었지만 사람을 그 길에 오게 만드는 것은 강이다.

이런 아름다운 강은 슬픔도 만들어 낸다. 힘든 세상살이에 강물에 몸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다. 20여 미터가 넘는 구포대교 위에서 아득한 아래의 물 위로 자신의 몸을 내버린다. 때론 살지만 거의가 죽는다. 살리고자 급히 다가가지만 이내 보이지 않은 까만 물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없다. 며칠을 찾아 헤매지만 마치 숨어버린 듯 보이지 않는 죽은 자의 육신은 그러다 한참 뒤 스스로 떠오른다.

죽은이의 몸을 수습하는 119수상구조대원(사진=김강윤 소방관 제공)

물에서 죽은 자의 모습은 험하다. 살 가죽은 녹아내려 흐물거리고, 부패한 내장 때문에 배는 터질 듯 부풀어 올라있다. 계절에 따라, 시간에 따라 부패의 진행 상황은 다르지만 대게 그러하다. 그들을 수습하는 일 역시 우리의 업(業)이기에 마음은 무겁다. 썩어있는 뼈와 살을 바라보기가 두려워서가 아니다. 누군가의 가족이고 친구였던 육신의 지난날이 불현듯 떠올라 그렇다. 녹아내려 듬성듬성 떨어지는 피부 조각들이 부모에게 물려받은 생명의 소산물이 아니었겠는가라는 생각에 미친다면 마음은 더 그렇다. 살고 죽는 연유까지는 관여할 바가 아니라 할지라도 눈앞에 굳어있는 혼백 없는 자의 몸을 보고 있으면 만감이 교차한다.

이렇듯 풍요와 안락을 주는 물이며 죽음과 고통을 안기는 물이기도 한 물. 그 두 가지 이면을 동시에 바라보며 나는 이곳에 있다. 희로애락이 한꺼번에 뒤엉켜 당장이라도 솟구쳐 오를듯한 강물은 오늘도 여전히 고요하다. 그런 강이 마치 인간의 삶인 듯 보인다. 생명이 태어나고 생명이 죽어가는 이곳이 생의 순환을 모두 가진 거대한 우주처럼 느껴진다.

강물의 끝단에 가보면 바다로 흘러가는 강의 뒷모습이 보인다. 서글프다. 풍요로움이든. 즐거움이든. 고통이든. 슬픔이든. 모든 것이 끝나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괜히 그렇다. 그래서 그런지 겨울의 강은 더 크게 보이고 더 고요하다. 그런 강은 오늘도 흐른다.

글/사진=김강윤 소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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