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고] 김강윤 소방관의 이야기 28편 '2001년 3월, 홍제동'

스타트업엔 2021. 3. 5. 16:46
728x90

◇2001년 3월, 홍제동

 

나이가 마흔이 넘어가며 그나마 꾸역꾸역 살아 온 지난 날들을 돌아보면, 이런저런 기억에 때론 쓴웃음 짓고 때론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한다. 지나간 일 들춰서 뭐 할까보냐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도 난 가끔 멍하니 옛일 생각하는 시간이 나름 귀한 때이다. 지난 1월 책을 출간하며 사람들의 많은 관심과 과분한 축하를 받았다. 내 글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건 나 자신일 텐데 나보다 더 내 글을 좋아해주며 알아주는 사람들이 그리도 많다는 것에 매일 놀라면서 또 감사했다.

 

그중에도 책 출간을 자기 일처럼 좋아해줬던 구조대원 후배가 있다. 수년 전, 지척에 살며 가끔 아니 자주 술잔을 기울이던 후배다. 190이 넘는 큰 키에 늘씬하고 잘 생긴 한 살 아래 동생이었던 '인섭이'는 누구보다 내 책에 많은 찬사를 해주었다. 지금은 서울로 인사이동을 하여 그곳 어디 소방서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가끔 전화하며 속내를 잘 털어놓는 막역한 사이다. 그러던 중 책 이야기를 하다가 글 속의 어느 이야기에 서로의 관심이 닿았다.

 

“형님. 홍제동 이야기 있잖아요. 책 속에 이야기...
그때 생존하신 선배님이 저와 같이 근무해요.“

 

마치 혼자 뭐라도 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순간 뜨끔했다. 내가 쓴 책 속의 홍제동 주택화재 이야기... 그때 살아난 사람. 후배는 잠시 그분의 이야기를 전했다. 여전히 잘 근무하고 있지만 20년 전 홍제동을 잊지 못하고 있다는 한 소방관의 지금을 조심스럽게 전했다. 휴대전화 너머 들려오는 후배의 음성이 작게 들리며 그 짧은 순간에 깊은 생각에 빠졌다. '그래... 살아계시지. 살아계셨어.'

2001년 홍제동 주택화재

순직한 소방 동료들의 이야기를 반드시 책에 쓸 거라 맘먹고 적어나간 꼭지가 '별이 된 소방관들'이다. 40여 개의 꼭지 중에 가장 많이 손이 간 글이고 눈물을 눈으로 가슴으로 철철 흘리며 쓴 글이기도 하다. 그랬던 이유가 내가 소방관이라서도 아니고, 내가 작가여서는 더욱 아니었다. 그들이 죽어간 그 시간에 나는 살아있었으며 그들이 살아난 그날에도 난 살아있었기 때문이었다. 무너진 콘크리트 더미에 깔려 죽어가던 젊은 소방관들의 고통을 털끝만치도 헤아리지 못하는 주제에 몇 줄 글로 그때를 적어나갔다는 몽매(蒙昧) 한 죄책감이 가슴 한편에 진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거기다가 살아남은 소방 선배에게 뭐라도 이야기를 들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후회도 밀려왔다. 20년 전에 나는 기껏 약관의 나이가 지난 천둥벌거숭이였는데 그들이 죽어간 그날, 슬픔은커녕 한 줄 기사로 나온 끔찍한 사고 따윈 관심도 없었던 사람이었단 말이다. 지금에서야 같은 일을 한답시고 글을 쓰며 죽어간 선배들의 이름을 책 속에 올리며 독자들에게 기억해 달라며 신파를 부리는 내가 무슨 자격으로 글을 썼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적어도 살아서 살아가는 선배에게 뭐라도 묻고 직접 들은 이야기를 써야하지 않았나라는 후회가 오늘에서야 밀려온다.

 

그래도 말하고 싶은 것은 있었다. 글 욕심이 아니었노라고 하진 못하겠지만 분명 글의 메시지는 '기억'이었다. 특히 홍제동을 기억해 주길 바랐다. 반세기가 넘은 대한민국 소방 역사에 불속에서 쓰러져간 소방관을 셀 수야 있겠냐마는 그나마 이 나라가 '살만해'지고 나서 생긴 소방관 순직 사고 중 가장 슬픈 일이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2001년 홍제동 주택화재

“안에 사람이 있어요.”

 

불에 타 무너질지도 모르는 오래된 주택 안에 9명의 소방관들이 서슴없이 들어간 이유는 바로 이 말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렇다. 누군가 소방관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것. 0.001%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그렇게 사지(死地)로 들어가야만 했던 소방관들. 자신을 보호해 줄 장비는 턱없이 부족했지만(불이 아니라 물을 막아주는 비옷같은 방수복을 입고 들어갔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그것이 부족한 것인지조차 몰랐을 젊은 소방관들은 불과 얼마 뒤에 그곳에서 다시 살아나오지 못하고 만다. 끝내 구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그곳에서 말이다.

 

여섯은 죽고 셋은 살았다. 살아남았을 감사함도 잠시, 산 사람은 살아난 것이 더 고통스러웠다고 한다. 살아서 힘들었고 죽은 이가 보고 싶어 죽고 싶었다고 한다. 죽은 자의 얼굴이 동판에 새겨져 일터에 만들어졌다. 잊지말자고 하며 차가운 얼굴을 손으로 어루만졌다. 하지만 세상은 서서히 그들을 잊어갔다. 그러나 살아난 자들은 그러지 못했다. 그렇다.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같은 소방관, 같은 아빠, 같은 아들 그리고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보냈던 '형제'들이 얼마나 보고 싶을까?

 

그날 홍제동에서 죽어 떠나버린 나의 선배를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아니 나는 그들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이 죽은 지 정확히 20년이 된 오늘도 스스로 기억을 꺼내어 보는 것이 면구스럽다. 하지만 그날 살아남은 자들은 그렇지 않다. 20년 전, 그곳에서 함께 뜨거운 어둠 속으로 같이 걸어들어갔던 기억은 결코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내심 미안한 마음을 감추고 후배에게 말했다.

 

“언젠가 한번 살아남은 그 선배님과 이야기할 수 있을까?”

순직한 6명의 소방관

후배는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거라 말한다. 홍제동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스스로의 흘러간 기억도 가물거리는데 이름 모를 소방관들의 죽음이 타인의 기억 속에 남아있길 바라는 내 마음이 이기적인 걸까? 그래도 오늘만큼은 비명에 떠나버린 누군가의 남편, 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아빠를 기억했으면 한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했던 또 다른 소방관들이 여전히 세상 사람들을 지키고 있다는 것도 알아줬으면 한다. 세상이 그들을 기억해주지 않더라도 말이다.

 

2001년 3월 4일

 

박동규
김철홍
박상옥
김기석
장석찬
박준우

여섯 명의 소방관이 별이 되다..

글/사진=김강윤 소방관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