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지하철 밖의 풍경
지난해 12월을 시작으로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위한 예산 확보 및 교통 인프라 구축 등의 요구 사항을 담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휠체어 바퀴를 이용해 지하철 문이 닫히는 것을 막는 방식부터 오체투지 방식으로 지하철에 올라타 발차를 지연시키며, 전장연은 장애인의 이동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하는 데에 성공했다.
동시에 출근길 지하철 운행의 지연으로 불편이 야기되자 사람들의 불만도 커지며 지하철을 이용할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전장연의 시위 방법은 부도덕하다는 비난도 나오기 시작했다. 국민의 힘 이준석 대표는 전장연의 시위를 시민을 볼모로 하는 불법 투쟁으로 규정하고 지하철 발차를 지연시키는 것은 ‘비문명적’ 행위라고 비판하기까지 했다.
지하철은 어떻게 우리 사회의 ‘문명’ 공간이 되었을까?
19세기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철도 위의 열차는 시속 48km까지 질주하기 시작했는데, 당시 열차의 평균 속도는 사람들이 이용하던 마차보다 세배나 빠른 속도였다고 한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장거리를 이동하는 열차를 보고, 칼 맑스는 “시간에 의한 공간의 소멸”이라 표현했을 정도로 철도 이동은 혁명적이었다. 철도는 사람뿐만 아니라 다양한 물자와 정보 교환의 이동 수단이 되며, 세상을 하나의 연결망으로 만드는 그 시대의 가장 중요한 ‘미디어’가 되었다. 이후에 등장한 방송과 통신, 인터넷과 같이 ‘망’을 사용하는 미디어는 철도의 DNA를 물려받은 후손인 셈이다.
독일의 역사학자 볼프강 쉬벨뷔쉬는 그의 책 <철도 여행의 역사>에서 철도는 대륙 횡단을 통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공간을 확장했지만, 정작 우리의 삶은 열차에 얽매여서 여행의 시작과 끝밖에는 보지 못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여행의 여정에서 마주치는 주변을 느끼고 경험하는 순간들은 사라지고, 열차 안에서 보이는 풍경은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단편적 이미지가 되어 버렸다고 지적한다. 철도로 인해 사람들은 주변과 교감하지 못한 채 분리된다고 주장하며 우리 주변 환경이 어떻게 우리 삶의 배경이 되어 버리는지 설명했다.
전장연은 정확히 이 문명의 약점을 온몸으로 파고들며 균열을 내고 있다. 그들은 시위를 통해 자신들이 열차 밖의 스쳐 가는 풍경이 아니라고 외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삶의 배경으로 남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또 공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반문명’적 행동으로 인해 우리의 지하철이 잠시 멈출 때, 우리는 비로소 문명에 의해 가리워졌던 풍경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세간의 화제가 되었던 장애인 단체 대표와 정당 대표의 문명적 TV토론이 성사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장애인 이동권 관련 뉴스 댓글에선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를 마주하지 않는 방법들을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여전히 전장연의 목소리는 열차 밖의 스치는 풍경으로 남아있는 것 같다. 결국 우리들의 미디어도 19세기 철도와 같이 우리 주변의 목소리들을 또 하나의 삶의 배경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지 염려가 된다.
스타트업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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