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시청에서는 2017년에 일명 ‘I-TEAM’을 만들었다. 디자인씽킹(Design Thinking)을 시정에 적용해서 고질적 문제들을 해결하고 혁신을 불러오기 위한 목적에서 만들어진 팀이라고 할 수 있다. 철학자들과 디자이너들을 전면에 배치한 인간중심 디자인 팀을 내부적으로 운영하며 얼마 전에도 ‘Civic Designer’라는 포지션을 담당할 인력을 뽑는다는 광고가 나기도 했다. 디자인씽킹은 디자인 과정에서 요구되는 문제해결 능력을 심화시켜 비즈니스 전략으로 전환,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일체의 과정을 의미한다. 미국의 디자인 컨설팅 회사 IDEO의 창업자 팀 브라운이 2008년에 최초로 제안하면서 다양한 기업에서 활발하게 적용하고 있다. 사용자와 기술을 연결하여 혁신을 창조하는 최적의 방법론으로 일컬어지면서 많은 주목을 받았던 것이다.
사실 디자인씽킹의 본질을 생각하면 디자인적 사고는 비단 기업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정부나 시민사회 등 전 사회적으로 적용될 만한 가치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디자인적 사고가 사회의 모든 분야에 적용되고 폭넓게 활용된다면 디자인 혹은 디자이너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전례 없는 인기를 구가하며 소위 말하는 ‘몸값’이 치솟게 될까, 아니면 그 반대가 될까? 반대라면 디자인적 사고가 보편화되어 모든 이들이 디자이너가 된다는 현실이다. 디자이너들의 고유한 가치가 사라지게 된다는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정답은 이도 저도 아니다. 다만 미래를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슈퍼스타 디자이너가 될 수도 있고 혹은 후자와 같이 직업도 제대로 보전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디자인적 사고를 요구하되 디자인이라는 본질적 ‘업’ 외에 다학제적 접근방식과 추가적인 전문성 등이 요구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디자이너의 사회적 포지셔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거다. 이제까지는 크리에이터로서의 직업군에 속했다면 앞으로는 관리자 역할을 중추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본격적인 디자인 경영을 표방하며 기업의 대표나 관리자가 되는 디자이너들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가 이를 대변해 준다.
이와 함께 디자인이라는 직업의 변화를 고찰할 때 고려해야 할 요소는 다름 아닌 AI의 역할과 테크놀로지의 발전이다. 2018년도 매거진 보그(Vogue)가 예측한 2025년도에 인기를 얻을 새로운 직업군을 살펴보면 디자인의 미래가 얼추 그려지기도 한다. 예를 들면 가상공간 디자이너. 앞으로 5년 후, VR 기술 시장의 규모가 44조 원에 이르며 엄청난 발전을 하게 되는데, 사무실, 공연장, 전시장 등을 설계하고 디자인할 인력을 필요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어느 분야에 디자이너의 수요가 발생하리라는 예측을 하기보다는 예술적 범주 안의 디자인이 본격적인 경영 아이디어로 진화한 것처럼 디자인의 본질이 앞으로 또 어떻게 변화하고 진화해 나갈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 보다 의미 있을 것이다.
우선 디자이너에게 요구되는 능력은 소비자들과의 소통과 협업 능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나이키는 ‘에어 맥스 데이’를 중심으로 일반인들에게 제품을 기획, 디자인하고 출시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고 있다. 건축가가 디자인한 나이키 ‘에어’는 런닝화의 디자인을 획기적으로 바꾼 사례로 1987년에 최초로 세상에 공개되어 인기를 끌었다. 2014년부터 공식 지정된 ‘에어 맥스 데이’를 기념하여 전 세계적으로 디자인 아이디어를 공모하고 투표로 파이널리스트를 선정, 다음 해 한정판으로 출시하기도 한다.
국내에서도 ‘소비자와 함께 만들어 판다’는 슬로건을 내건 롯데마트가 고객 참여 디자인을 제품으로 출시하고 있다. 올해로 5년째 진행 중인 이 프로그램은 홈앤리빙 브랜드 ‘룸바이홈’을 통해 일반인들의 디자인 아이디어를 공모하여 매해 시즌 별로 20여 종에 이르는 제품을 판매해 왔다. 나이키와 롯데마트의 경우 모두 마케팅의 일환으로 기획된 프로그램이기는 하지만 상품개발이 기업만의 고유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기존 디자이너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소비자들과 소통하고 협력하는 태도와 역량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디자이너들이 협력해야 할 대상은 소비자들에만 국한되지 않다. 제너러티브 디자인(Generative Design)의 사례는 이제 본격적으로 디자이너들이 인공지능을 비롯한 기술의 산물과 소통하고 협업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제너러티브 디자인은 컴퓨터에 디자인하고자 하는 목표와 여러 가지 제한요소를 입력하면 AI와 클라우드의 연산능력이 결합된 알고리즘을 통해 최적화된 디자인 옵션을 다양하게 생성해 주는 프로그램이다.
가령 의자를 디자인한다고 하면 사용하고자 하는 자재와 의자의 중량 및 가격 등의 명령값만 입력하면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넘으면서도 입력 조건에 최적화된 수천 개의 옵션을 생성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원자재 가격 및 개발 시간과 비용 등을 줄여 전례 없이 효율성을 증대시킬 수 있다. 이미 스포츠 의류 브랜드 언더아머가 제너러티브 디자인과 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하여 신개념 트레이닝화를 개발했고, 항공기 개발사인 에어버스 역시 생체공학적 항공기 객실 부품을 개발했다. 특히 에어버스 사례의 경우, 승용차 10만대의 배출량에 버금가는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요구되는 역량과 사회적 포지셔닝이 변할 수 있을 뿐 디자인에 대한 기업과 사회의 수요는 미래에도 여전히 높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밝은 미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현재에 어떠한 준비를 하느냐에 달려 있다. 폐쇄적 업무 구조를 개선하고 소비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기술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을 끊임없이 개발한다면 혁신의 경험을 창조하는 디자인의 미션은 어김없이 달성되리라 본다.
김민하 - 《미래독백2》 (김민하 저, 바른북스 펴냄, 2022)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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