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전준우 칼럼 '글쓰기는 생존을 위한 훈련이다'

스타트업엔 2020. 9. 21.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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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의 탁월함

수년 전 독서모임에서 있었던 일이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 함께 토론하던 한 여성분이 내게 물었다.

"준우씨는 가장 좋아하는 책이 뭐에요?"
"레미제라블입니다."

『이방인』을 앞에 놓고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레미제라블』이 세계최고의 소설이라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런 면에서 개개인의 독서취향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느끼는 바도 다르다. 나는 31살 때 레미제라블을 처음으로 완독했다. 무려 한달이나 걸렸다.

심지어 역사를 다룬 부분이나 이해가 안되는 부분은 대강 넘어가면서 읽었다. 쉽지 않은 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1살 이전까지 읽었던 책들을 모두 대단찮게 느껴지도록 만들어버린 책도 레미제라블이다. 레미제라블 완독 후 하루에 1권 이상 독서하는 습관이 생겼다.

개인적으로 레미제라블이 내 인생 최고의 책으로 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30대 초반의 암울했던 나의 현실을 반영하는 듯한 장발장의 인생이 내 마음에 큰 울림을 주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대문호 빅토르 위고에 의해 창조된 인물이지만 인간사의 가장 어두운 면과 행복한 면이 그의 삶속에 진지하게 녹아 있었고, 극한의 두려움을 인내하는 삶을 만들어가는 인물로서 장발장의 인생은 지극히 인간적이고도 고독했다. 그야말로 걸작 중의 걸작이었다. 그래서 레미제라블에 대한 평가는, 미미한 차이는 있을지라도, 품격이 넘치는 단어와 언어를 사용한 극찬이 대부분이다.

'한 인간의 작품이라기보다 자연이 창조해 낸 작품.'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아름다움.'
'레미제라블은 하나의 세계요, 하나의 혼돈이다.'
'21세기에 빅토르 위고와 같은 작가가 나올지 의심스럽다.'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시대를 반영하는 인물이다. 실존하는 역사적 사실을 17년에 걸쳐 소설로 풀어냈다. 복잡한 인물도, 이야기의 전개, 역사상 가장 뛰어난 황제로 불린 나폴레옹 대제의 시대와 6월 항쟁을 통해 산업혁명 시대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을 생생하게 다루었다는 점에서 역사에 남을 작품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레미제라블』의 우수성과 문학적 완성도에 깊게 탄복하긴 했지만, 무엇보다 글이 어떻게 사람을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했고, 어떻게 글이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지에 대해서도 깊게 고민했다. 글에 담긴 힘은 생각보다 컸고, 나로 하여금 평생 글을 쓰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아래는 장발장이 빵을 훔치고 난 뒤 잡혀서 툴롱 항구로 떠나기 전 장면이다.

목에 걸린 쇠목걸이의 나사를 쇠망치로 박는 내내 그는 울었다. 목이 메어서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는 나직이 이렇게 중얼거렸다.

“나는 파브롤의 가지치기꾼이오.”

그렇게 눈물을 흘리면서 오른손을 들고 마치 일곱 계단을 쓸어내리듯 손짓을 했다. 키 순서대로 나란히 세워 놓은 일곱 아이들의 머리를 차례로 쓰다듬는 듯했다. 그것은 마치 자신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든 간에 그 일이 일곱 아이들을 끔찍이 위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상징하는 듯했다.

『레미제라블 1권』116p, 빅토르 위고, 더클래식

레미제라블은 분명히 복잡하고 어려운 소설이다. 그러나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미묘한 감정의 흐름, 생각의 변화, 예를 들어 사랑, 우정, 분노, 슬픔과 같은 단어들을 아주 매혹적이고 탁월한 문체로 표현한다. 레미제라블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만한 이야기다. 나는 여기에서 레미제라블의 탁월함을 보았다. 글의 위력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빅토르 위고의 뛰어난 필력에 자연스럽게 겸손을 되찾으리라 믿는다. 글쓰기에 있어서만큼은 말이다.

◇무엇으로 생존할 것인가

바야흐로 100세 시대다. 60대에 은퇴해서 100세까지 40년이라는 시간이 남는다. 금융전문가들은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에 더불어 주택연금까지 준비하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연금성 소득을 준비하는 것은 은퇴 이후 미래를 준비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연금성 제도는 지금부터 안정적인 직장, 혹은 안정적인 소득원이 발생한다고 했을 때 꾸준히 납입하면서 준비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개인사업자거나 소상공인, 혹은 소득이 일정하지 않은 직업군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권하기엔 쉽지 않다.

다양한 연금상품을 활용해서 노후를 준비하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다양한 기회들을 만드는 데 집중하는 것이 훨씬 더 좋은 방안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편안한 노후를 맞이하기 위한 연금성 소득을 만들기 위해 연금성 금융상품을 몇 개나 가입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 아닐 수도 있다.

글쓰기나 독서가 생존을 위한 최적의 기회는 아니다. 유투브와 같은 영상매체를 활용해서 자신의 브랜딩을 창조할 수도 있고,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한 비즈니스 컨설턴트로서의 활동을 통해 수입을 창출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들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충분히 준비할 수 있는 것들이라는 것이다.스스로가 얼마나 자신의 미래에 대한 준비를 철저하게 하느냐에 따라 만들어질 수 있는 수많은 기회들 중 하나다.

세계적인 경영 컨설턴트이자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렸던 피터 드러커는 신문기자 및 보험회사 경제분석가 출신으로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독립 컨설턴트로서 명성을 쌓았지만, 그 이면에는 문법과 작문에 있어서 완벽하지 않은 영어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다양한 주제의 글을 여러 잡지사에 기고하면서 꾸준히 영어실력을 배양시켜 나간 인물이기도 하다.

세계적인 컨설턴트로서의 기회가 주어진 것은 역사의 선택과 운명론에 입각한 시대의 선물일 수도 있다. 그 이전에 그는 시간제 강사, 프리랜서 작가, 정치학과 철학을 가르치는 전임강사, 제너럴 일렉트릭(GM)사의 경영 감사, 뉴욕대학교 경영학 교수이기도 했다. 엄청난 다독과 쉼없는 칼럼 기고를 통한 글쓰기의 훈련이 위대한 경영 컨설턴트로서의 명성을 뒷받침하고 있음을 잊어선 안된다.

◇글쓰기는 생존의 도구다

글은 칼과 같아서, 쓰면 쓸수록 날카로워지고 단단해진다. 숙련되기 때문이다. 머릿속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오랜 훈련의 결과다. 내게 있어서 글쓰기는 생존의 도구이자, 책을 쓰기 위한 훈련이었다.

사회는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지식을 바탕으로 자기경영을 실천하는 개인에게 성장을 위한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 기술적인 전문성은 엄청난 독서, 경험으로 인해 체득화된 지식, 그리고 이를 완벽하게 문장화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훌륭한 기회다.

책을 출간하기 위해 노력하는 예비 작가든, 혹은 자기소개서를 준비하는 학생이든, 블로그나 개인 홈페이지에 글을 쓰는 사람이든, 글쓰기는 확실히 내면의 세계를 담아내는 훌륭한 도구가 된다는 점에서 좋은 기회를 내포하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꾸준히 글쓰기에 마음을 쏟아야 할 이유다.

글/사진=전준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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