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전준우 칼럼 '잘쓴 글과 그렇지 않은 글의 차이'

스타트업엔 2020. 10. 5.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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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쓴 글을 쓰는 사람들

학창시절, <책을 읽읍시다>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공영방송에서 나왔던 프로그램인데, 작품으로서의 가치가 뛰어난 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훌륭한 문학적 품위를 자랑하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 감춰져있던 책들이 방송을 통해 수면 위로 떠올랐고, 그야말로 훌륭한 품격을 자랑하는 책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 프로그램이었다.

당시 방영한 책 중에 故최순우 국립중앙박물관장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가 있었다. 담임선생님과 주위 사람들의 추천으로 구입은 했지만, 마음에 그리 와닿지는 않았다. 당장 코 앞에 다가온 입시와 전혀 상관 없는 책이었고, 독서에 깊이가 없었으며, 문학적 품위에 흠뻑 젖어서 담박한 문장의 아름다움을 느낄 만한 때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서른이 훌쩍 넘어서 작가가 되고 난 이후에 읽은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는 10대 때 내가 느끼던 감정과 많이 달랐다. 쉽고, 아름답고, 간결했다.

조용한 시간에 은은한 광선 아래 비치는 이 담박한 불상의 살결과 담소한 얼굴 맵시를 바라보고 있으면 백제 조각이 지니는 은근한 아름다움의 일면과 그 염원을 역력히 느껴 아는 듯만 싶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中 백제의 석조여래좌상, 115P, 최순우, 학고재

백재의 석조여래좌상을 두고 '담박한 불상의 살결'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담박하다는 말은 ‘욕심이 없고 마음이 깨끗하다, 느끼하지 않고 산뜻하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담백하다'와 같은 뜻이지만 앞뒤 주어가 무엇인지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사용되는 단어인 듯 하다. 예를 들어 다음 문장처럼.

어머니의 한복이 사뭇 담박하다.
국물이 무척 담백하다.

이후 '담소한', '은근한'과 같은 단어를 사용해서 석조여래좌상의 은은한 아름다움을 잘 표현하고 있다.

한 뜸 한 뜸의 바늘 자국마다 젊은 여인들의 순정이 사무쳐 있는 조선의 자수, 그리고 무슨 소망 같기도 하고 기도 같기도 한 절실한 마음이 오색 비단실을 줄타고 올올이 스며든 곳.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中 조선의 자수병풍, 40P, 최순우, 학고재

자수병풍이라는 것이 일상생활에서 으레 볼 수 있는 부류의 것은 아니므로 쉬이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은 있으나, 자수병풍을 두고 이처럼 지순한 단어를 사용해서 설명하기는 더더욱 쉽지 않다. 흔히 잘 쓴 글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의 공통점은 쉽고 단순한 문장, 그리고 담박하고 순수한 문장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최순우 선생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는 잘쓴 글의 표본을 보여주는 듯 하다. 또 다른 글을 하나 더 살펴보자.

원주민은 대비 효과에 대한 감각이나 취향이 없으며 그들은 자연과 연결된 탯줄이 완전히 끊어지지 않은 듯하다. 그들은 보름달이 떴을 때만 은고마를 열었다. 달이 최선을 다할 때 그들도 그렇게 했다.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은은하면서도 강력한 빛 속에서 아프리카의 풍경이 목욕하고 헤엄칠 때 그 거대한 조명에 작은 불빛을 보탠 것이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 151P, 카렌 블릭센, 열린책들

최신화된 문명의 굴레 안에서 사는 사람들이 쓴 글보다 문명이 때묻지 않은 순수한 자연에서 사색하며 기록한 글의 순도가 짙다는 것은, 확률적이긴 하나, 어느 정도는 맞다. 문명세계와 맞닿지 않은, 그래서 자연과 더 가까운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모습을 '자연과 연결되어 끊어지지 않은 탯줄'로 표현했다.

◇그렇지 않은 글이란

형식적인 인사, 형식적인 배려를 두고 감동을 받거나 따뜻한 감정을 느끼기란 어려운 일이다. 글도 마찬가지다. 글에도 온도가 있다고 믿는다. 따뜻한 온도가 느껴지는 글이 있는 반면, 차갑고 무거운 글이 있다. 다듬어지지 않은 글은, 시작이 어떠하였든지간에 차갑고 무겁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첫 책을 출간하고 난 뒤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은 기쁨과 행복에 젖어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부족한 필력과 엉성한 문장구조가 눈에 띄었다. 글로 마음을 전달하려면 따뜻하게 쓰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교육일을 하고 있으면서 많은 부모님들을 만난다.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상담도 하는데 그런 과정들을 통해 여러 방면에서 배우게 된다. 그러면서 발견한 특징들이 몇 가지 있었다.

­『교육의 힘』, 100P, 전준우, 바이북스

30번 이상 퇴고하면서 문장을 다듬는 지금과 달리, 첫 책은 열댓번 다듬은 게 전부였다. 불필요한 단어와 문장이 수두룩하게 보인다. 위 문장은 다음처럼 짧고 간결하게 고칠 수 있다.

나는 많은 부모님을 만난다. 그분들과 상담을 나누는 동안 많은 것을 배운다. 다양한 특징들도 발견한다.

첫 문장에서 사용된 글자의 수는 72자다. 반면에 수정한 위 문장의 글자수는 41개에 불과하다. 훨씬 쉽고 간결하다. 쉬운 글일수록 마음에 담겨지는 깊이도 다르다. 쉽게 쓴다고 쓴 글이었는데 사실상 그렇지 못한 글이었다. 다음 문장도 검토해보자.

아무리 좋은 교육과 뛰어난 교사가 있더라도, 어떤 일을 시작하든지 그 중심은 인성교육이다. 세상의 어떤 사람도 마음의 심지가 곧지 않으면 동화될 수 없다. 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마음의 심지를 세우는 일이다. 지금도 나는 아이들에게 마음의 심지를 세우는 일을 하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아이들에게 마음의 심지를 세우는 일을 하고 싶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갈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교육의 힘』, 104P, 전준우, 바이북스

위 문장에서 '아무리 좋은 교육과 뛰어난 교사가 있더라도'라는 문장은 사실 불필요하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좋은 교육’은 인성교육을 포함하고 있으며,‘ 뛰어난 교사’는 인성교육의 중요성 역시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뒤이어 '마음의 심지'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마음의 심지가 무엇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은데다 '동화'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쉽게 이해할 수 없도록 글을 썼다. 마지막으로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갈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라는 말로 글을 끝맺으면서 '더 넓은 세상'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도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첫 책이니만큼 뒤돌아보면 숱한 부족함이 발견된다. 시간이 흘러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을 훑어볼 때가 있을 것이다. 그 때, 지금 공들여 쓰고 있는 이 글에서 얼마나 많은 부족함이 그 때 보일 것인가 생각하면 벌써부터 등골이 서늘해진다.

◇잘쓴 글, 좋은 글

좋은 글의 예를 하나 더 살펴보자. 역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에 나오는 대목이다.

어느 해 겨울 눈이 강산처럼 쌓인 달 밝은 하룻밤을 오대산 상원사에서 지낸 일이 있었다. 새소리 물소리도 그치고 바람도 일지 않는 한밤 내내 나는 산소리도 바람소리도 아닌 고요의 소리에 귓전을 씻으면서 새벽 종소리를 기다렸다. 웅장한 소리 같으면서도 맑고 고운 첫 울림이 오대산 깊은 골짜기와 숲속의 적막을 깨뜨리자 길고 긴 여운이 뒤를 이었다. 어찌 생각하면 슬픈 것 같기도 하고 어찌 생각하면 간절한 마음 같기도 한 너무나 고운 소리였다. 이렇게 청정한 종소리를 아침 저녁으로 들으면서 이 절의 스님들은 선의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가다듬고 또 어지러워지려는 마음속을 씻어내는지도 모른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中 상원사 동종, 164P, 최순우, 학고재

최순우 선생이 강원도 평창에 위치한 상원사라는 절에 있는 상원사 동종의 종소리를 듣고 쓴 글의 맨 처음 문장이다. 새벽에 울려퍼지는 종소리를 듣고 느낀 점을 글로 표현했다. 흠잡을 곳 하나 없는, 완벽하게 아름다운 문장이다. 깨끗하고 적막한 눈덮인 오대산의 모습, 마치 눈이 내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고요함 속에서 잔잔하게 울려퍼지는 종소리의 그윽한 아름다움을 지순한 단어를 사용해서 글로 표현했다.

그렇지만 좋은 글이란 것이 무조건 담박하고 그윽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어야만 할 필요가 있을까. 기본적으로 잘 쓴 글은 쉽게 읽힌다. 문장의 구조가 어떠하고, 부사가 어떠하다는 것이 기실 중요한 듯 보여도 딱히 그럴까 싶은 것이, 박완서 선생의 글을 보면 단번에 알 수 있다.

블루진이나 몽탁 저지 바지에 티셔츠를 들쓰고 구럭 같은 가방에 책을 잔뜩 처넣고 남는 책은 안으면 고만이다. 머리나 빗었느냐고 물으면 글쎄 빗었던가 하면서 한 번도 퍼머기가 가 본 적이 없는 머리를 손가락으로 두어 번 빗질을 하면 고만이다.

­『박완서 산문집』 中 답답하다는 아이들, 192P, 박완서, 세계사

박완서 선생의 글은 정말 쉽다. 무척 재미있는데다 해학도 있다. 그럼에도 시대를 반영한다. 생각할 거리가 풍부하다.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이지만 글 속에 녹아있는 가치는 자기계발서 수십권과 맞먹는다.

부자는 자기네 부자 사회와 보통 사는 사회까지는 이해할 수 있을지 몰라도 가난을 이해하긴 어렵다. 극빈자 역시 자기네의 가난과 더불어 보통 사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재벌의 생활에 대해선 이질감 내지는 복수심밖에 동하는 게 없다. 결국 아래위를 함께 이해할 수 있고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가장 폭넓게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가진 층이 바로 이 보통 사는 사람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박완서 산문집』 中 보통으로 살자, 225P, 박완서, 세계사

◇글의 양면성

17세기의 물리학자이자 수학자, 철학자였던 블레즈 파스칼은 이런 말을 남겼다.

"피레네 산맥의 이쪽 면에서 진실인 것은 저쪽 면에서는 거짓이다."

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읽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잘쓴 글과 그렇지 않은 글이 나뉘어질 수 있다. 전쟁터에서 남편을 잃은 아내가 쓴 글은 어린 아이들에겐 크게 와닿지 않는 글일 수 있다. 모든 사물과 현상에는 양면성이 존재하니까. 그럼에도 잘쓴 글은 은연중에 잘쓴 글임이 드러난다.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런 글을 쓰기 위해서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마음을 갈아야 할 것인가. 숙고해봐야 할 문제다.

글/사진=전준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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