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엔 특별기획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 시리즈 열다섯 번째, 김강윤 소방관의 소방서 식당에에 관한 이야기
스타트업엔에서는 특별 기획으로,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연재하고자 한다. 그 열다섯 번째 이야기는 불철주야 국민의 안전을 위해 헌신하는 부산 소방본부 산하 특수구조단 수상구조대 소속 김강윤 소방관의 구내식당에 대한 이야기인 '밥 먹으러 출근합니다'이다.
◇밥 먹으러 출근합니다
식욕은 인간의 중요한 욕구 중에 하나죠. 먹는 즐거움이야 굳이 말해 뭐하겠습니까만 저 역시 먹고 마시는 일이 주는 행복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특히 요즘에는 먹방이다 맛집이다 여기저기 먹는 행복을 공유하는 콘텐츠도 넘쳐나고 어릴 적 우리가 '요리사'나 '주방장'이라고만 불렀던 분들은 '쉐프'라 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선망받는 직업이 되었습니다.
유명한 요식업 사업가이자 쉐프인 백종원 님은 전 국민에게 요리하는 즐거움과 먹는 기쁨을 전달해 주는 일을 합니다. 특히 다양하고 맛있는 요리에 대한 비법을 알려주는데, 따라 하기 쉬우니 여기저기서 백주부 레시피라 불리는 요리를 만들어 서로서로 sns에 올려 한껏 자랑하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안팎으로 맛있는 거 천지인 세상입니다.
제가 일하는 소방서는 아시다시피 교대 근무를 합니다. 1년 365일 24시간 사고에 대비해서 늘 직원들이 상주하는 것이죠. 당연히 먹는 문제를 사무실에서 해결합니다. 처음 소방관이 되어 부산진 소방서 구조대에 발령받아 근무를 시작할 때 고향의 어머니가 전화가 와서 저에게 여쭤보셨습니다.
"밥은 누가 해주는데?"
그렇습니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니 먹는 일이 가장 걱정이 되셨나 봅니다. 저도 궁금하기도 했었고요.
소방서 각 센터나 구조대에는 식사를 책임져 주시는 주임님들이 계십니다. 주임님이라는 호칭은 각 시도 소방서마다 다른데 실장님, 영양사님 등으로 부르기도 하고 편하게 이모님 하기도 합니다. 호칭이야 어떻든 이분들께서 밥을 해주시는 건데 길게는 십수 년 이 일을 해오시는 분들이라 소방관들과는 한 식구나 다름없으신 분들이시죠.
음식이 맛있고 없고를 많이들 물어보시는데 사람 입맛이야 천차만별이니 먹는 사람마다 다르기는 하겠지만 몸 쓰는 일하는 소방관들이 그다지 까다로운 입맛도 아니고 한 식구처럼 오래 소방서 밥 만들어오신 주임님들도 척하면 척 직원들 입맛 맞춰서 음식 만들어 내시니 먹는 족족 맛있습니다. 그저 한 끼 식사 거하니 차려 놓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먹는 거죠.
소방서 음식 얘기하니 이쯤에서 제가 근무했던 기장소방서 구조대의 주임님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네요. 후덕하신 풍모에 예쁜 서울말을 쓰시고, 웃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우신 주임님이십니다. 음식 맛이요? 이거 이거 기가 막힙니다. 이 글 주제가 '밥 먹으러 출근합니다'라고 할 때 눈치채셨을 겁니다.
차려내는 식단마다 무슨 맛집 수준입니다. 어디서 배워 오셨는지 일품요리가 올라옵니다. 제가 기억나는 요리만 대략 나열 하자면요.
황태구이, 곤드레나물밥, 부챗살 스테이크, 마파두부, 고추 잡채, 전복 삼계탕, 꼬막 비빔밥….집밥으로는 하기 힘든 신통방통한 메뉴들이 매일 등장합니다.
맛으로 보자면 어지간한 식당은 저리가라입니다. 저를 포함한 7명의 팀원이 먹기 전부터 감탄하기 시작해서 먹으면서 감동하고, 먹고 나서 감사드립니다. 놀라운 것은 음식의 양입니다. 운동량이 상당한 구조대원들은 어쩌면 먹는 것도 질보다 양인데요. 주임님은 상다리 부서지도록 음식을 만들어 놓습니다. 웬만한 운동선수들보다 더 큰 덩치를 자랑하는 기장구조대 2팀 대원들은 주임님 음식 맛에 놀라고 음식량에 기쁨을 감추지 못합니다.
하지만 먹는 기쁨이 잠시 사라질 때도 있지요. 바로 출동 벨 소리가 들릴 때입니다. 주임님께서 정성스레 마련한 음식을 뒤로하고 뛰어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밥 먹다가 출동이 걸리면 차라리 양호합니다. 맛이라도 봤으니까요. 정말이지 맛있는 음식 한 젓가락 들라치면 걸리는 출동 벨 소리는 너무나도 야속합니다. 배고픔과 아쉬움에 후다닥 한 입 넣고 달려 나가지만 방화복 챙겨입는 구조차 안에서 입맛만 더 다시게 됩니다.
출동이 길어지면 음식이 식을까, 불을까, 맛이 떨어질까 봐 직원들 기다리시는 주임님 마음만 조마조마합니다. 밥도 밥이지만 혹시나 구조대원들 출동나가서 다치기나 할까 걱정도 되구요. 그러다가 늦게라도 출동 뒤 돌아와 식당에 들어서 식사를 하면 그새 음식맛이 없어졌다면서 먹는 우리보다 더 안타까워 하시고요. 그렇게 툴툴대는 모습이 아들 걱정하는 엄마 모습 같습니다. 그래도 먹는 우리는 꿀맛입니다.
얼마 전 기장구조대 떠나며 혹시나 좋아하실만한 선물을 드리고 갈까 해서 고민하다가 혹시 식당에서 혼자 계실 때 읽으시라고 책을 한 권 선물했습니다. 한 줄 메시지도 같이 넣어서 드렸는데 주임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하셔서 얼른 뒤돌아 나왔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앞서 발령 나서 가는 구조대원들 보며 늘 눈물지으셨는데 되려 내가 가는 길에 죄송스럽고 고맙고 그래서 마음이 짠했습니다.
집보다 사무실에서 먹고 자고 하는 시간이 더 많은 소방관들입니다. 누구를 구하고 누구를 살리는 일을 하는 우리가 힘들고 지칠 때 주임님 해주시는 맛있는 밥 한 끼에 몸과 마음이 든든해지고, 다시 기력을 찾습니다. 밥 먹는 그 시간이 얼마나 즐겁고 신나는지 모릅니다. 먹는 한 끼 별거 아니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살자고 하는 일이고 먹어야 사는 삶이니까요.
새로 부임한 특수구조단 낙동강 수상구조대는 주임님이 계시지 않아 구조대원들이 직접 식사를 해결합니다. 그러려니 하고 끼니는 때우지만, 주임님 해주는 밥이 정말로 그립습니다.
밥 먹으러 출근한다는 구조대 동료의 말이 기억납니다. 돌고 도는 소방서 생활이니 그 밥 먹으러 다시 기장으로 출근하는 날이 또 올 거라 생각됩니다.
요즘 같은 장마철 아침엔 주임님이 해주신 재첩국 한 그릇이 더욱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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