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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김강윤 소방관의 이야기 ⑲ '추석 영화 ‘타워링’과 안전불감증'

스타트업엔 2020. 9. 29.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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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엔 특별기획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 시리즈 열아홉 번째, 김강윤 소방관의 재난 안전에 관한 이야기

 

스타트업엔에서는 특별 기획으로,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연재하고자 한다. 그 열아홉 번째 이야기는 불철주야 국민의 안전을 위해 헌신하는 부산 소방본부 산하 특수구조단 수상구조대 소속 김강윤 소방관의 재난 안전에 대한 이야기인 추석 영화 ‘타워링’과 안전불감증이다.

◇'추석 영화 ‘타워링’과 안전불감증'

추석이 곧 다가온다. 몹쓸 바이러스 때문에 고향 가기도 버거운 상황이지만 그래도 큰 명절을 앞두는 마음은 늘 설렌다. 어린 시절 설이나 추석 같은 날에는 먹는 즐거움에 보는 즐거움도 상당했다.

송편도 좋았지만 워낙 기름진 음식을 사랑하는 나는 전을 특히 좋아했다. 뒤집은 솥뚜껑에 기름을 두르고 그 위에 배추전, 고구마 전, 명태전 같은 것들이 올라갈 때마다 군침을 흘리며 옆에서 지켜보았다. 그러면 큰어머니와 사촌 누나들이 하나씩 들어 뜨끈할 때 먹으며 내 입에 넣어주시곤 했는데 그것을 본 어머니가 도끼눈을 흘기시며 전 굽는 곳에서 멀리 쫓아내시던 기억도 생생하다.

먹는 것뿐이겠는가? 어린 시절 추석 연휴 TV프로그램에는 특선영화라 하여 하루에 한편씩 평소에는 보기 어려운 영화를 틀어줬다. 영화관이라고는 없는 시골마을에서 명절이 아니면 저 멀리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 영화를 볼 기회는 전무했다. 주로 밤에 방영을 했는데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친척들이랑 영화 방영을 기다렸다.

영화 타워링 포스터

특히 그중에서 몇 살쯤인 지 기억은 안 나지만 '타워링'이라는 재난 영화를 본 것이 떠오른다. 어른이 되어서는 늦은 시간도 아닌(?) 밤 10시쯤 시작된 영화는 3시간여를 방영했는데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러닝타임이었다. 3부로 쪼개어 방영했고 사이사이 광고가 나왔는데 재미없는 광고 시간에 어떡해서든지 잠들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버텨냈다.

영화의 내용을 이러하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신축된 100층이 넘는 거대 빌딩 최고층에서 성대한 파티가 벌어진다. 빌딩이 만들어진 축하파티였는데 건축주는 자기가 지어낸 최첨단 빌딩을 자랑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때  50 몇 층쯤에서 화재가 발생한다. 그런데도 건축주는 화재가 80층의 상층부 쪽으로는 번지지 않을 거라 장담하며 파티를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건축자재는 화재에 취약한 (방염성능이 없는) 자재들이었고 불길은 순식간에 전체 빌딩을 뒤덮는다. 여기서부터 빌딩 내부의 사람들은 죽어나가기도 하고 또 살기 위해 발버둥 친다.
 
주인공들은 불길을 잡기 위해 거대한 빌딩 속을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사투를 벌인다. 그 와중에 숨 막히는 연기와 뜨거운 화염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은 빌딩 밖으로 몸을 던진다. 나는 그 장면에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는데 함께 보던 친척들 중 누구도 왜 스스로 그 높은 빌딩에서 몸을 던지는지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았다.

911 테러(사진=김강윤 소방관)

훗날 911 테러로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재난 때 영화와 똑같은 현상을 보았는데 그것이 패닉으로 인한 회피 본능 작용으로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간은 극단적 위험에 몰렸을 때 그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는 설령 죽음에 이를지라도 당장의 그곳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본능이 발현되는 것이다.

또한 다양한 인간 군상도 보인다. 자기 먼저 살고자 하는 부자들 그리고 권력에 기대어 다른 사람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는 위선자들이 나온다. 재난 영화의 큰 스토리 줄기이기도 한 이런 인간들의 등장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는 이미 어린 학생 수백 명이 바닷속에 서서히 가라앉아 갈 때 나만 살겠다고 그곳을 팬티 바람으로 뛰쳐나온 무책임한 어른들을 두 눈으로 목도한 적이 있다. 영화의 이야기는 결코 영화만의 이야기가 아님을 생생히 본 것이다.

재난 영화의 특성상 영화 속 소방관들의 모습은 가히 영웅적이었는데 넋을 놓고 볼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어벤저스'와는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당시 내 눈에는 소방관들이 바로 슈퍼 히어로였다. 시뻘건 불속에 스스럼없이 뛰어들어 사람을 구하고 커다란 덩치의 소방차를 조작하며 불에 맞서는 물을 뿜어낼 때는 영웅이 악당을 두들겨 패는 듯한 쾌감도 느꼈다. 영화의 내용이 어찌 되었든 간에 보는 내내 난 다른 사람들 보다 소방관들은 죽지 않기를 속으로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지금 나이가 들어 내가 그 영화 속 소방관이 되어 있는데 지금 그 영화를 다시 떠올려 보면 마치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지가 않는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지만 나는 지금껏 영화 속 장면은 현실로 보며 자라온 것이기 때문이다.

삼풍백화점 붕괴(사진=김강윤 소방관)

고급 백화점이 폭삭 주저앉거나(삼풍백화점 붕괴), 한강을 가로지르는 크고 긴 다리가 무너지며(성수대교 붕괴), 대도시의 번화가에서 아래서 지하철이 불에 타고(대구지하철 화재), 수백 명을 싣고 가던 여객선이 침몰하기도 한다.(서해 페리호 침몰, 세월호 침몰) 하지만 영화와 다르게 실제에서는 슈퍼히어로는커녕 영화와 같은 멋들어진 활약을 하는 소방관도 찾기 힘들다. 거대한 재난에 무력하게 안타까워하기만 한 인간만 있을 뿐이다.

물론 사고를 대처하는 구호기관(소방, 경찰, 군, 공공기관 등)은 사력을 다해 단 한 사람이라도 살리려고 노력한다. 그 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그나마 그 지옥 같은 곳에서도 적지 않은 생명이 생환되기도 하였다.

그래도 곱씹어 볼수록 안타까운 것은 아무리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라 하더라도 왜 비슷한 대형 재난 사고는 자꾸 일어날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부득이하게도 '안전불감증'이라는 다소 식상한 단어를 꺼내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인간이 만들어낸 거대한 구조물들과 탈 것, 즐길 것들이 아직도 알 수 없는 부조리에 노출되어 있지는 않는지 우려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에 우리는 '안전'이라는 양보할 수 없는 절대적 명분을 소홀히 하지는 않는지 곱씹어 봐야 한다.

각자 스스로 생각해보기를 권해본다. 나는 일상적인 생활에서 과연 '안전'이라는 키워드를 생각하고 있는가? 바다나 계곡에 놀러 갈 때 어린아이들에게 구명조끼를 준비해 주는가? 태풍이 불어 비바람이 부는데 바닷가 가까이 가지는 않은가? 폭우가 내린다는 예보를 보고도 깊은 산속 계곡으로 가지 않는가? 삼풍백화점을 지은 사람을, 성수대교를 만든 사람을, 세월호를 운항한 사람을 욕하기 전 스스로는 과연 안전에 대해 얼마나 충실한가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영화 타워링의 화재 원인은 방염성능이 있는 전선피복을 시공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건축주의 안전불감증으로 그렇게 하지 않아 전기누전으로 발생이 되었다. 충분히 현실적으로 가능한 이야기이다. 30년이 넘은 영화에서도 그럴진대 지금 우리 역시 형태만 다를 뿐 여전히 같은 '불감증'에 빠져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볼 문제이다.

신임 소방사 시절. 구조대 회식을 앞두고 식당을 예약할라치면 선배들은 농담반 진담반으로 나에게 말을 했다.​

"출입구 근처로 자리 예약하거라"

그 이유가 혹여 불이 나면 탈출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유별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안전에 대해 민감한 직업이다 보니 생겨나는 에피소드이다.

사람은 누구나 편안함을 추구하려고 한다. 앉고 싶고, 눕고 싶고, 자고 싶고... 하지만 안전이라는 것에 있어서는 편안함이 용납될 수 없을 것이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안전이라는 담보가 있고 난 후에 편안함을 바라야 한다. 부디 이 땅에 다시는 tv의 모든 채널이 대형 재난을 방송하며 보는 사람을 안타깝게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인재(人災)라는 말 역시 다시는 반복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글/사진=김강윤 소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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