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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서 12

[기고] 김강윤 소방관의 이야기 38편 '있을 때 잘하자'

◇있을 때 잘하자 아침 일찍 출근하며 또 한숨이다. 아침잠이 많은 아내는 아직 한밤중인데 그런 아내를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얼마나 곤히 자는지 출근 준비로 이것저것 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에도 깨지 않는다. 측은한 마음에 한참을 보다 현관문을 열었다. 마음이 천근만근이다. ‘괜찮아야 할 텐데...’ 일주일 전 아내가 골반이 아프고 몸이 피곤하다며 부인과 진료를 받았다. 다음 날, 증상이 좋지 못하다는 말에 조직 검사를 또 했다. 의사 말인즉슨 '자궁경부암' 검사란다. 아내가 덤덤히 그 말은 나에게 전하는데 나는 숨이 턱 막혀 말을 잇지 못했다. '암'이라니... 식사 중에 아무렇지 않은 듯 말을 하는 아내를 앞에 두고 끝내 밥을 다 먹지 못했다. 식사를 마치고 밤 산책을 나갔는데 딸아이와 앞서 걷는..

기고 2021.11.23

[기고] 김강윤 소방관의 이야기 28편 '2001년 3월, 홍제동'

◇2001년 3월, 홍제동 나이가 마흔이 넘어가며 그나마 꾸역꾸역 살아 온 지난 날들을 돌아보면, 이런저런 기억에 때론 쓴웃음 짓고 때론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한다. 지나간 일 들춰서 뭐 할까보냐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도 난 가끔 멍하니 옛일 생각하는 시간이 나름 귀한 때이다. 지난 1월 책을 출간하며 사람들의 많은 관심과 과분한 축하를 받았다. 내 글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건 나 자신일 텐데 나보다 더 내 글을 좋아해주며 알아주는 사람들이 그리도 많다는 것에 매일 놀라면서 또 감사했다. 그중에도 책 출간을 자기 일처럼 좋아해줬던 구조대원 후배가 있다. 수년 전, 지척에 살며 가끔 아니 자주 술잔을 기울이던 후배다. 190이 넘는 큰 키에 늘씬하고 잘 생긴 한 살 아래 동생이었던 '인섭이'는 누구보다 ..

기고 2021.03.05

[기고] 김강윤 소방관의 이야기 27편 '사유(思惟)의 이유'

◇사유(思惟)의 이유 1월의 저물녘에 낡아빠진 경운기 앞에 돗자리를 깔고 우리 동네 김 씨가 절을 하고 계신다. 밭에서 딴 사과 네 알 감 다섯 개 막걸리와 고추 장아찌 한 그릇을 차려놓고 조상님께 무릎 꿇듯 큰절을 하신다. 나도 따라 절을 하고 막걸리를 마신다. 23년을 고쳐 써 온 경운기 한 대 야가 그 긴 세월 열세 마지기 논밭을 다 갈고 그 많은 짐을 싣고 나랑 같이 늙어왔네! 그려 덕분에 자식들 학교 보내고 결혼시키고 고맙네! 먼저 가소! 고생 많이 하셨네 김 씨는 경운기에 막걸리 한 잔을 따라준 뒤 폐차장을 향해서 붉은 노을 속으로 떠나간다. 박노해, 전문 시를 즐기지는 않지만 아름다운 이 시를 어느 책에서 보았다. 말로만 듣던 박노해 시인의 시인 가보다. 더 많은 그의 시를 읽지는 못했지만,..

기고 2021.02.23

[기고] 김강윤 소방관의 이야기 26편 '강은 흐른다'

◇강은 흐른다 낙동강은 아주 긴 강이다. 발원지인 강원도 태백에서부터 다대포와 만나는 을숙도 끝단까지 500여 km가 넘게 기다랗게 흐른다. 경상북도와 대구, 경상남도와 부산을 가로지르며 때론 넓고 얕게, 때론 좁고 깊게 굽이쳐 내려온다. 영남 사람들에겐 생명수와도 같은 낙동강. 그래서 '영남의 젖줄'이라고도 부른다. 이런 낙동강 최남단 하류 즉 경남 양산 호포에서 을숙도 하굿둑까지 22km 지역이 내가 근무하는 '낙동강 119수상구조대'의 관할 구역이다. 이 구역을 '본류'라고 한다. 또 김해 초장리부터 부산 강서 녹산까지 54km 지역을 '지류'라 하여 이곳 역시 관할 구역에 속한다. 방대한 넓이의 이 물길을 119수난구조 전문대원 14명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지키고 있다. 소방관이 불가에 안 가고 ..

기고 2021.02.23

[기고] 김강윤 소방관의 이야기 21편 '2020년의 내가 1996년의 나에게'

스타트업엔 특별기획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 시리즈 스물한 번째, 김강윤 소방관의 과거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 스타트업엔에서는 특별 기획으로,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연재하고자 한다. 그 스물한 번째 이야기는 불철주야 국민의 안전을 위해 헌신하는 부산 소방본부 산하 특수구조단 수상구조대 소속 김강윤 소방관의 과거의 나에게 편지형식으로 전하는 이야기인 '2020년의 내가 1996년의 나에게'이다. ◇잘 들어라. 굳이 내가 너의 이름을 부르지는 않겠다. 어차피 내가 너고, 네가 나이니, 미래에 네가 너에게 쓰는 글이라 생각하고 읽기를 바란다.(복잡하구나) 먼저 당부할 것은 나에게 복권 당첨이 되는 숫자를 가르쳐 달라거나 훗날 네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품지 않기를 바란다. 너라면 ..

기고 2020.11.16

[기고] 김강윤 소방관의 이야기 ⑳'달라지는 세상에서 잃지 말아야 할 것'

스타트업엔 특별기획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 시리즈 스무 번째, 김강윤 소방관의 달라진 세상에 대한 이야기 스타트업엔에서는 특별 기획으로,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연재하고자 한다. 그 스무 번째 이야기는 불철주야 국민의 안전을 위해 헌신하는 부산 소방본부 산하 특수구조단 수상구조대 소속 김강윤 소방관의 코로나로 또는 IT기술의 발전으로 달라진 세상에 대한 이야기인 '달라지는 세상에서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달라지는 세상에서 잃지 말아야 할 것 코로나 때문에 딸아이가 학교 수업을 비대면 온라인으로 합니다. 예전 같았으면 학교 간다고 분주할 시간에 부스스한 모습으로 일어나 노트북을 켜고 접속을 하더니 책을 옆에 펴고 앉아 있네요. 엄마가 그러고 들을 거냐고 한 마디 하니 대충 세수하고 ..

기고 2020.10.27

[기고] 김강윤 소방관의 이야기 ⑲ '추석 영화 ‘타워링’과 안전불감증'

스타트업엔 특별기획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 시리즈 열아홉 번째, 김강윤 소방관의 재난 안전에 관한 이야기 스타트업엔에서는 특별 기획으로,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연재하고자 한다. 그 열아홉 번째 이야기는 불철주야 국민의 안전을 위해 헌신하는 부산 소방본부 산하 특수구조단 수상구조대 소속 김강윤 소방관의 재난 안전에 대한 이야기인 추석 영화 ‘타워링’과 안전불감증이다. ◇'추석 영화 ‘타워링’과 안전불감증' 추석이 곧 다가온다. 몹쓸 바이러스 때문에 고향 가기도 버거운 상황이지만 그래도 큰 명절을 앞두는 마음은 늘 설렌다. 어린 시절 설이나 추석 같은 날에는 먹는 즐거움에 보는 즐거움도 상당했다. 송편도 좋았지만 워낙 기름진 음식을 사랑하는 나는 전을 특히 좋아했다. 뒤집은 솥뚜껑에 기름..

기고 2020.09.29

[기고] 김강윤 소방관의 이야기 ⑯ '다시 사는 삶'

스타트업엔 특별기획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 시리즈 열여섯 번째, 김강윤 소방관의 홍수에 관한 이야기 스타트업엔에서는 특별 기획으로,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연재하고자 한다. 그 열여섯 번째 이야기는 불철주야 국민의 안전을 위해 헌신하는 부산 소방본부 산하 특수구조단 수상구조대 소속 김강윤 소방관의 홍수에 대한 이야기인 '다시 사는 삶'이다. ◇다시 사는 삶 어릴 적, 그러니까 7, 8살쯤으로 기억하는데 '셀마'라는 태풍이 한반도에 상륙했을 때이다. 뉴스에는 온통 곧 태풍이 들이닥칠 것이니 만반의 준비를 하라는 소식만 보도됐다. 어린 눈에 보이는 하늘은 온통 시커멨고 비는 올 듯 말 듯 하면서 바람만 불어대는 것이 여간 겁이 나는 것이 아니었다. 어쨌든 태어나 처음으로 태풍이라는 무서운 ..

기고 2020.09.09

[기고] 김강윤 소방관의 이야기 ⑮ '밥 먹으러 출근합니다.'

스타트업엔 특별기획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 시리즈 열다섯 번째, 김강윤 소방관의 소방서 식당에에 관한 이야기 스타트업엔에서는 특별 기획으로,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연재하고자 한다. 그 열다섯 번째 이야기는 불철주야 국민의 안전을 위해 헌신하는 부산 소방본부 산하 특수구조단 수상구조대 소속 김강윤 소방관의 구내식당에 대한 이야기인 '밥 먹으러 출근합니다'이다. ◇밥 먹으러 출근합니다 식욕은 인간의 중요한 욕구 중에 하나죠. 먹는 즐거움이야 굳이 말해 뭐하겠습니까만 저 역시 먹고 마시는 일이 주는 행복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특히 요즘에는 먹방이다 맛집이다 여기저기 먹는 행복을 공유하는 콘텐츠도 넘쳐나고 어릴 적 우리가 '요리사'나 '주방장'이라고만 불렀던 분들은 '쉐프'라 하여 많은 사람..

기고 2020.09.09

[기고] 김강윤 소방관의 이야기 ⑪ '6월의 기억'

스타트업엔 특별기획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 시리즈 열 번째, 김강윤 소방관의 동료에 관한 이야기 스타트업엔에서는 특별 기획으로,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연재하고자 한다. 그 열 번째 이야기는 불철주야 국민의 안전을 위해 헌신하는 부산 기장 소방서 구조대 소속 김강윤 소방관의 순직한 동료의 그리움에 대한 이야기인 '6월의 기억'이다. ◇6월의 기억 "형님... 범석이가..." 범석이의 죽음을 전하는 후배의 목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각오하고는 있었지만 막상 그 소식을 들은 후 나는 온몸이 얼어붙은 듯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전화를 끊고 마른 침만 연신 삼키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범석이의 부고를 알리는 문자 메시지가 왔다. 미세하게 떨리는 손을 애써 진정시키..

기고 2020.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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