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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준우 칼럼] '제국의 미래(Day of Empire)가 아름다운 이유'

스타트업엔 2021. 8. 27.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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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아름다움

 

학창 시절, 가장 싫어하던 과목이 수학과 국사였다. 공부 자체에 그다지 흥미가 없기도 했거니와 어렵고, 따분하고, 지루하기까지 한 수학과 국사를 왜 공부해야 했는지 당시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지나간 시간들 역시 나 개인에게 있어서 지나간 추억이며 과거이자 하나의 역사로 남아 있다. 

 

역사란 어떤 면에서 보면 지루하기 짝이 없는 학문이자 지식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진실이면서 과거에 존재한 현실이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 보면 지나간 순간의 연속이며, 돌아오지 않는 강물과 같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쉬지 않고 나아가는 시간의 영속성 때문에, 과거와 역사는 일부 학생들과 고시생들에게 지루하고 외울 것이 많은 학문 정도로 인식되기도 한다. 

 

반면에 역사는 미래를 통찰하는 기회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흥미로운 시간의 기록이다. 수많은 사람이 역사의 중요성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고, 역사를 통해 앞으로 일어날 미래의 다양한 기회를 예측하기도 한다. 역사를 아는 것은 나를 아는 것이고, 국가를 아는 것이며, 나아가 인류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힘이기도 하다.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인물과 국가의 변천사다. 

 

지금 바로 역사 속 인물 중 아는 사람을 떠올려 보라. 나는 이순신 장군, 아인슈타인, 베토벤 정도가 떠오른다. 이들을 내가 기억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어릴 때부터 익히 들어온 역사 속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인류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어떤 결정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낸 사람들이었다는 점에서, 이들은 역사에 획을 그은 인물들이다. 조선 수군 13척이 왜군의 배 300여 척을 격퇴한 명량해전, 현대물리학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상대성 이론, 청력 상실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엘리제를 위하여를 작곡한 불멸의 작곡가. 물론 전문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자세히는 모른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역사적 인물들의 노력으로 인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이전보다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제국의 미래

 

[제국의 미래(Day of Empire)]는 중국계 미국인 2세이자 예일대학교 법학 교수로 재직중인 에이미 추아 교수의 오랜 집필 끝에 완성된 대작이다. 페르시아와 로마와 같은 고대 국가를 거쳐 중국, 영국, 미국에 이르기까지 세계 초강대국의 설립과 몰락에 대해 꼼꼼히 기록한 역사서다. 서문에 밝혔듯이 역사라는 학문 자체는 나에게 그다지 흥미로운 기삿거리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국의 미래가 마음에 와닿은 이유는,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화려했던 국가의 흥망성쇠를 통해 삶의 큰 방향을 기획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지금이야 세계 최강대국이 미국이며, 뒤를 이어 중국과 영국 정도로 알려져있지만, 고대 시대만 해도 세계를 제패한 제국이 로마였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에드워드 기번 Edward Gibbon의 [로마제국 흥망사]처럼 훌륭한 책도 있지만 4,200페이지(완역본 기준)에 달하는 전권을 읽고 로마의 역사를 탐구하기엔 나의 지적 수준이 따라가지 못했고, [제국의 미래]에서 이야기하는 로마의 문화와 특성을 통해 한때 세상을 지배한 국가의 특징을 조금이나마 발견할 수 있었다.

 

극작가이자 시인인 세네카는 스페인 출신이었고, 타키투스는 골족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웅변가이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스승이었던 프론토는 아프리카 출신이었다. 키케로의 말을 빌리면, 최고 절정기의 로마는 "야만인이나 미개한 민족" 출신도 정치 과정에 참여하고 제국의 권력과 명성에 한몫할 수 있었던 독특한 문화를 갖추고 있었다.
-「제국의 미래」 72p, 에이미 추아, 비아북

 

물론 로마에 관한 이야기뿐만 아니다. 세상을 지배한 제국 Empire에 관한 이야기다. 칭기즈칸의 제국 몽골, 무역 제국 네덜란드, 세계 최대의 해상국가 영국, 청교도에 의해 설립된 미국 등 흥미진진한 제국의 설립과 몰락이 상세하게 정리되어 있다. 지루하기보다는 흥미진진하고, 어렵지 않다. 쉽고 간결하다. 그리고 제국의 시작과 몰락의 중심에는 관용Tolerantia이 가장 큰 핵심주제로 남아 있었다.

칭기즈칸은 지금의 기준으로 보거나, 당대의 통치자들과 비교해보아도 대단히 관용적인 정책을 취했다. 유럽인들이 이교도들을 말뚝에 묶어 불에 태우고 있을 때, 칭기즈칸은 만인에 대한 종교의 자유를 공표했다. 그는 또한 다양한 인종들을 포용하고, 초원지대 사람들을 갈라놓던 부족 간 장벽을 용의주도하게 허물고, 피정복민들 가운데 유능하고 재능 있는 사람들을 골라 공직에 임용했다. 두 세대가 지난 후, 칭기즈칸의 손자인 몽케, 훌라구, 쿠빌라이는 칭기즈칸이 썼던 전략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역사상 가장 넓은 땅을 차지했다. 몽골족이 세계의 패권을 손에 넣고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잔혹함이 아니라 인종적, 종교적 관용에 있었다. 
-「제국의 미래」 147p, 에이미 추아, 비아북

 

다양한 국가에서 해외봉사단원으로 활동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본 저서에서 이야기하는 관용Tolerantia, 그중에서도 종교적 자유가 뒷받침되지 않은 나라는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는 점이다. 가난하거나, 위험하거나, 치안이 좋지 않은 나라는 대개 국가에서 국민, 외국인, 혹은 종교의 자유를 대하는 관용이 부족한 경우가 많았다. 국가를 향한 국민의 충성도가 낮은 나라, 종교적 박해가 심각한 나라, 사회경제의 몰락이 눈앞에 보이는데도 호구지책 이외에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는 정부가 세워진 나라는 '그에 걸맞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IT산업이 급속도로 발달하고 수십 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들이 눈 앞에 펼쳐지는 지금, 종교의 자유라는 것이 그리 대단찮게 느껴질 수도 있다. 불과 70여 년 전만 해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으며, 먹을 음식이 없어서 굶는 사람이 무척 많았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종교적 박해를 피해 넘어온 사람들로 인해 세계 최강대국으로 성장한 경우가 빈번하게 있었다. 

네덜란드 사람들의 관용에는 예리한 계산이 숨어 있었다. 공화국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하던 정치인들 가운데 대다수는 경제적인 이익을 기대하여 공개적으로 종교의 자유를 옹호했다. 예컨대, 피터르드 라 카우르트는 [네덜란드의 이익]이라는 책에서 "관용은 네덜란드 여러 도시의 경제를 성장시키고 인구를 부양하기 위해서 긴급히 요구되는 이주 정책을 촉진하는 데 필수적인 것이었다"라고 썼다. 수단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네덜란드의 관용 정책은 대단히 효과적인 것이었다.
-「제국의 미래」 221p, 에이미 추아, 비아북

 

그렇다고 종교적 자유만이 세계 초강대국의 발판이 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종교적 박해를 피해 넘어온 사람들 중에는 다양한 직업과 직종군에 속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들은 서로 간의 동맹과 무역 네트워크를 활용해서 다양한 분야로서의 성장을 꾀했고, 이후 합자회사(동인도회사, 서인도회사)를 설립하면서 세계적인 초강대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처음부터 다원주의 Pluralism을 주장했으며 종교적 관용의 원칙 위에서 설립된 미국은 그러한 사람들의 노력과 강한 의지에 의해 불과 200여 년 만에 세계 초일류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 연합한 제 식민지는 자유롭고 독립된 국가이며, 또 권리에 의거하고 자유롭고 독립된 국가여야 한다. 이 국가는 영국의 왕권에 대한 모든 충성의 의무를 벗으며, 대영제국과의 모든 정치적 관계는 완전히 해소되고 또 해소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 국가는 자유롭고 독립된 국가로서 전쟁을 개시하고 평화를 체결하고 동맹 관계를 협정하고, 통상 관계를 수립하여 독립 국가가 당연히 해야 할 모든 행동과 사무를 할 수 있는 완전한 권리를 갖고 있는 바이다. 우리들은 이에 우리의 생명과 재산과 신성한 명예를 걸고 신의 가호를 굳게 믿으면서 이 선언을 지지할 것을 서로 굳게 맹세하는 바이다. - 미국 독립선언문 중

◇미국의 관용에 대하여

 

관용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며 개인을 위해 존재하는 단어도 아니다. 국가와 시민 의식 전반에 흐르는 겸손과 단아한 태도를 의미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책은 미국의 관용에 대한 에이미 추아 교수의 경고와 함께 끝이 난다. 역사를 뒤돌아봤을 때 대부분의 국가가 그러했듯, 관용이 사라진 국가는 빠른 속도로 몰락했으며, 세계 초강대국에서 평범한 국가로 전락했다. 중국계 이민자 2세로 시작하여 세계 최고수준의 교육기관에서 교수로 활약하는 에이미 추아 교수의 말처럼, 관용이 빠진 곳에서는 어떤 성장이나 발전도 더딜 수밖에 없다. 역사는 끊임없이 되풀이된다. 오늘도 역사가 되며, 내일도, 그 이후의 모든 날도 역사의 회오리 속으로 사라진다. 관용이 없는 오늘, 내일은 역사 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의미 없는 날이 될지도 모른다. 

 

더럼 보고서를 읽고 있으면, 글로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유감스러워하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식민지 미국 주민들이 처음으로 책임감 있는 정부를 요구하던 1770년대에 그런 정부를 세웠다면, 영국인들이 자유에 대해서 자신들이 말했던 대로 행동했다면, 미국에서 독립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뿐인가. 미합중국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제국의 미래」 324p, 에이미 추아, 비아북

글/사진=전준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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