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전준우 칼럼] '도심에서 얻을 수 없는 마음의 묵상, 월든'

스타트업엔 2021. 9. 1.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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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5단계

 

삶을 5단계로 나눌 수 있다면, 1단계는 천진난만하게 뛰어다니며 즐기는 어린 시절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무엇이든지 꿈꾸고, 계획하고, 세상 만물을 순수한 눈으로 바라보는 단계다. 유년시절이 이에 속한다.

 

그다음 단계가 사춘기에 접어드는 10대 중반에서 후반까지다. 뭔가 의심스럽고, 만족스럽지 않으며, 막연한 걱정과 두려움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시기다.

 

3단계가 되면 성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하는 단계로 대학생 무렵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4단계는 부모가 되어 자식을 키우며 두 번째 인생을 사는 시기라고 이야기할 수 있으며, 마지막 5단계는 인생을 마무리하는 단계로, 3단계와 4단계에 접어든 자녀를 보며 노후를 만끽하는 시기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내가 어린 시절 아버지는 공무원이셨고 어머니는 동네에서 작은 미용실을 하셨다. 미용실은 항상 손님으로 북적거렸고, 엄마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손님을 맞았다. 경제적으로 한 번도 어려웠던 기억이 없다. 중학교 1학년 무렵 IMF가 터졌지만 '남의 이야기'였고, 마흔을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도 그 당시 IMF가 우리 가정에 어떤 불행을 가져다주었는지 모른다. 그만큼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다. 학교폭력을 당한 것도 아니었고, 왕따를 당한 적도 없다. 사람을 가려서 사귀는 편이긴 하지만 그런 성격도 나이가 들면서 바뀐 것일 뿐,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의 나는 앞서 언급한 1,2단계의 시간이 슬픔으로 얼룩져 있다. 알 수 없는 두려움, 걱정, 근심과 같은 것들이 마음에 찌꺼기로 남아 슬픔으로 가득한 학창 시절을 보내도록 이끌었다. 돌이켜 그때를 생각해보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늘 마음에 품고 있는 고민이나 아픔, 혹은 그와 비스름한 어떤 감정들이 내게는 더욱 큰 응어리로 남아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시트콤과 드라마를 통해서 보이는 화려한 삶의 모습, 그와 반대로 너무나 지루하고 따분한 작은 도시에서의 시간들, 하루가 멀다 하고 돈 문제와 자식의 성적 문제로 한숨을 내쉬는 부모님의 얼굴, 도대체 꿈이나 목표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암울하기만 한 미래, 학생에게는 관심조차 없고 직업으로만 생각하는 선생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의 결정체인 성적표. 두 번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유년시절의 기억이다.

 

그런데 3단계 중반부 언저리에 접어든 순간부터, 내 인생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대외활동, 좋은 친구들과 은사님들도 한몫했다. 하지만 그보다 내 마음에 큰 소망이 된 것은, 내 인생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또 그것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난 뒤부터였다.

 

어린 시절 내 꿈은 교사, 작가, 시인이었다. 지금은 대개 이루어진 꿈이다. 그 꿈에서 한발 더 나아가, 어린 시절에 추구하던 삶의 모습은 작은 통나무집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쓰거나 읽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자연과 벗 되어 살고 싶은 것이 나의 소박한 꿈이자 이상이었다. 주머니 사정이 모자라서 통나무집을 구매하지는 못했지만, 18개월에 접어든 아들을 재우고 나면 서재에 틀어박혀서 책을 읽고 글을 쓴다. 통나무집 못지않은 즐거움이 있다. 

◇Walden을 통해 발견하는 삶의 진리

 

월든 Walden.
어디선가 본 듯한, 뭔가 익숙한 제목이긴 했다. 아마 시카고 그레이트북스 144권 중의 하나였거나, 세계명작 100선과 같은 곳에 오른 제목이었기에 그랬으리라. 그리고 책 속에 기록된 이야기들은 내 마음을 어린 시절 꿈속으로 자꾸만 끌어당기는 듯 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사람들은 그릇된 생각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육신은 조만간에 땅에 묻혀 퇴비로 변한다. 사람들은 흔히 필요성이라고 불리는 거짓 운명의 말을 듣고는 한 옛날 책(성경)의 말처럼 좀이 파먹고 녹이 슬며 도둑이 들어와서 훔쳐갈 재물을 모으느라고 정신이 없다. 그러나 인생이 끝날 무렵이면 자연히 알게 되겠지만 이것은 어리석은 자의 인생이다. 『월든 21p』, 헨리 데이빗 소로우, 은행나무

 

내가 조금만 더 일찍 이런 구절을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릇된 생각 때문에 고생하고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이 그처럼 많다는 것을 어릴 때 알았더라면, 내 유년시절이 그토록 고통스럽거나 처절하지 않았어도 되었을 것을. 슬픔으로 가득한 시간이었으므로 뒤돌아볼 수도 있는 것인가, 하고 스스로를 다독거릴 뿐이다. 가치 위주의 삶을 살기로 결심하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그래서였는지는 모르지만, 이후 내 인생은 돈과 그다지 연관성 없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돈을 버는 방법도, 기술도, 능력도 없었다. 평생을 공무원으로 생활하신 아버지 밑에서 자랐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사업에 대한 감각이 전혀 없었다. 손을 대는 사업마다 족족 실패했다. 

 

그렇다고 가난하게 살지도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차가 2대 생겼고, 방 3칸 있는 집이 내 이름 앞으로 되어 있었고, 미처 소화가 덜 되어 굶은 적은 있어도 흰쌀밥을 먹지 못해 굶은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호박을 의자로 써야 할 만큼 가난한 사람은 없다. 만약 있다면 그것은 주변머리가 없기 때문이다. 『월든 105p』, 헨리 데이빗 소로우, 은행나무

 

그러한 어려움과 문제 가운데서도 나는 글쓰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개미새끼 기어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의 적막감이 흐르는 서재에서의 시간, 나는 그 시간을 무척 좋아했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서재에 앉아 독서하며 글을 쓰는 시간은, 내게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놀라운 행복을 전해주었다. 

 

이런 행복은 나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나보다 앞서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기관에서 학업을 영위한 헨리 데이빗 소로우에게도 적막한 통나무집에서의 시간은 놀라우리만치 소망으로 가득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사색을 함으로써 우리는 건전한 의미의 열광 속에 빠질 수 있다. 『월든 206p』, 헨리 데이빗 소로우, 은행나무

 

​월든을 읽고 사색하면서, 나는 내가 가진 많은 것들이 사실은 의미 없는 것들의 집합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언젠가 극진공수도의 창시자 최배달의 생전 취재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구글의 검색 로직으로 말미암아 우연히 발견한 영상인데, '가장 두려운 것이 무엇인가.' 하는 기자의 질문의 잊을 수 없는 한 마디를 남겼다.

 

"배고픔이 가장 두려웠다."

 

그는 오래전 사람이다. 내가 이야기하는 사색과는 거리가 먼 무술인이자, 훌륭한 싸움꾼이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그 역시 사색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내일은 어떻게 배고픔을 이겨내야 할지, 내일은 어디에서 먹을 것을 구해야 할지, 그는 아주 간절한 마음으로 사색하고 묵상했을 것이다. 나는 오늘도 아침, 점심, 저녁 3기를 흰쌀밥만 먹었다. 전혀 배고프지 않다. 내가 이야기하는 사색과 그들이 이야기하는 사색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도 높은 수준의 정신생활을 하는 것으로 인해 낮은 차원에서 손해를 보지는 않는다. 남아돌아가는 부는 쓸모없는 것들밖에 살 수 없다. 영혼에게 필요한 단 한 가지의 필수품을 사는 데는 돈이 필요 없다. 『월든 488p』, 헨리 데이빗 소로우, 은행나무

 

월든을 통해, 사색을 위해서 통나무집을 살 필요도, 두꺼운 고전을 구입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글/사진=전준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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