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전준우 칼럼 '실패에서 배우는 글쓰기의 힘'

스타트업엔 2020. 11. 17.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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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향한 도전

아내를 끌어안고 펑펑 눈물을 흘리며 울던 2019년 9월 30일은 최저시급에도 못 미치는 월급이 통장으로 입금된 날이었고, 동시에 임신 7개월 차에 접어든 아내가 곧 태어날 아들을 위해 태아보험을 가입한 날이기도 했다.

학교, 군부대, 기업체에서 독서법과 책 쓰기 강의를 하고, 기업 CEO와 전문직 종사자를 대상으로 책 쓰기 컨설팅을 돕는 기관인 「전준우책쓰기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으며, 정책지원자금을 희망하는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경영지원 및 사업계획서 컨설팅을 도와드리는 「한국중소기업정책지원협회」도 함께 운영하고 있는 지금, 어려운 기억들과 상처들은 마음 깊은 곳에 단단한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질 좋은 거름이 되어주었다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또 한 편으론 결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쓰린 기억들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무능력의 끝을 봤다고 표현하면 맞을까.

누구나 알다시피 실패란 나쁜 경험으로만 끝나진 않는다. 내성도 강해졌고, 사업을 볼 수 있는 눈도 생겼고, 기회를 포착하는 감각도 조금은 생겼다. 그러나 이 모든 표현들은 사업을 하겠다고 다짐하고 난 뒤 죽도록 고생만 하다가 아내를 끌어안고 펑펑 울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에 불과하다.

다행히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은 슬픈 과거들은 책을 쓰는 데 훌륭한 소재가 되어주었다. 첫 책을 출간하고 난 뒤에는 다양한 기관에서 강의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생겼고, 연대급 군부대에서 장교들과 병사들을 위한 강의를 한 적도 있다. 꾸준히 글을 써서 두 번째, 세 번째 책도 출간되었다.

평범한 삶만큼 아름다운 삶도 없다고들 하지만, 그렇다고 평범하게 살고 싶진 않았다. 내게 있어서 평범은 '오늘 내가 헛되이 보내는 시간은 어제 세상을 떠난 사람이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오늘'이라는 훌륭한 말을 알면서도 늘 똑같은 모습으로 사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단어에 불과하다. 때가 되면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의 장점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렇게 사는 사람들 중에 멘토가 될 만한 사람을 만난 적은 별로 없다.
사업을 해보겠다고 회사를 뛰쳐나와서 고생한 시간들은 즐거움보단 힘든 기억에 가까웠지만, 그렇다고 근자감에 가까운 도전정신이 갑자기 만들어진 건 아니었다. 20대 시절부터 내 마음 중심에는 남을 돕는 인생을 살고 싶다는 가치관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 가치관이 평범한 삶을 살기를 거부하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내 마음을 이끌었다.

21살 때는 겁 없이 조깅화만 신고 전국일주를 떠났고, 24살 때는 트레킹화인 줄 알았던 안전화를 신고 이틀 만에 지리산을 종주했다. 25살 때 아프리카를 다녀온 뒤에는 극단을 창립해서 전국 순회공연을 다녔고,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대안학교에서 근무하며 아이들을 가르치던 교사로 활동했다. 몇 권의 책을 출간하고 난 뒤에는 전업 작가가 되어 글쓰기 컨설팅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자그마한 소망이 있었다. 어느 것 하나 평범한 여정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2,30대였다.

사실 다양한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반면에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 얻어진 것 역시 많았기에 별다른 두려움은 없었다. 까짓것 어째 되겠지, 하는 막연한 자신감이 내 마음에 항상 자리하고 있었다. 지금은 어렵지만 앞으로는 승승장구하며 살 것이다, 하는 자신감이 내 마음에 있었다.

학원에서 교사로 근무할 때는 무척 재미있었다. 힘들긴 했지만, 새끼손가락만 한 사탕 하나에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렇게 가슴이 뭉클할 수 없었다. 공부보다 인간이 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온 마음을 쏟아 가르쳤다. 공부방으로 시작해서 큰 교육기관을 설립하기로 마음먹고 퇴사를 결정하던 날, 아쉬워하던 아이들의 눈빛과 삐쭉 내민 입은 나로 하여금 미안함과 더불어 큰 자신감 역시 갖게 했다.

사업은 쉽지 않았다. 3개월 동안 번 돈은 학원에서 근무할 때 받던 한 달 월급 수준이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느낌이었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슬픈 기억이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내게 힘이 되어주는 한 가지 사실이 있었다. 앞으로 살면서 절대 사라지지 않는 한 가지 사실. 내가 '작가'라는 사실이었다.

◇작가란 무엇인가

다양한 방면을 통해 책을 출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시대다. 자비로 출판하는 사람도 있고, 자신도 몰랐던 필력이 세상에 빛을 발하기 시작하면서 난데없이 작가가 된 사람도 있다. 나처럼 실력이라곤 전혀 없는데 막연한 기대와 어릴 적 소망으로 작가가 된 사람도 있으리라. 그러나 기본적으로 작가는 자신의 내면의 세계를 절제된 언어로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붙일 수 있는 호칭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때로는 복잡하고, 때로는 예민하며, 때로는 글로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의 흐름을 다양한 방법을 통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문장과 글로 옮길 수 있는 훈련을 반복한 사람들이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워도 내가 작가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면 모든 어려움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책을 쓴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서점에서 판매되는 수많은 책들 중에서, 정말 '책'이라고 할 수 있는 게 과연 얼마나 있을까? 종이 꾸러미에 불과할 수도 있는, 그런 '책'도 분명히 있다. 나는 책을 쓸 때마다 항상 성경을 먼저 읽고 기도한 뒤에 글을 쓰는 습관이 있다.

책이 완성되고 난 뒤에는 7번씩 3번 퇴고하고, 이후 출판사와 원고를 주고받으면서 약 30번 가량의 퇴고를 거치는 습관도 있다. 내가 쓴 책들은 모두 그렇게 쓰인 책들이다. 최대한 쉽고 간결하게, 하지만 깊은 마음을 담은 도구로서의 기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다한다. 그렇게 3권의 책을 출간한 것은 지속적으로 스스로를 강하게 채찍질할 수 있는 훌륭한 도구가 되어주었음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학원사업을 실패하고 난 뒤 2달 동안은 막노동을 했다. 안전화를 신고 새벽 인력시장에 나갈 때마다 비참한 현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3권의 책을 출간한 작가, 독서법과 인성교육 강사, 모범생이기보다는 인간이기를 강조하던 선생님. 그러나 모두 지나간 과거가 되어버렸고, 어느 순간 하루하루를 걱정해야 하는 건설현장 노동자로 일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그마저도 비가 오면 일을 하지 못했고, 아내의 출산일은 가까워오고 있었다. 아내는 내게 한 번도 실망했다고 이야기하거나 속상한 마음을 내비친 적이 없다. 도리어 "지금 오빠가 겪는 모든 것은 과정에 불과해."하고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건설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이 담배를 태우며 시간을 때우는 동안, 나는 안전모를 푹 눌러쓰고 아내의 사진을 보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런 생각에 전환점이 찾아온 적이 있었다.

◇겸손과 글쓰기의 관계

막노동 현장에서 일을 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대부분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들이었지만, 개중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분명히 있었다. 인생이 결코 일방적인 방향으로만 진행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그들을 통해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저는 ㅇㅇ신문사 편집부장이에요. 휴일에는 한 번씩 나와서 운동 삼아 일하고, 담뱃값 벌어가고 그래요."

"삼산동(울산시내 중심가)에 120평짜리 가게 두어 개 하고 있어요. 요새 장사가 잘 안되서 한 번씩 나옵니다."

"건물 하나 갖고 있습니다. 월세 받고 사는데, 집에만 있으면 뭐합니까? 손주들 과자 값이나 벌까 싶어 나와 봤어요."

누구나 어려움을 당하고 문제를 겪지만, 그 어려움을 통해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어려움에서 무엇을 배우느냐가 그 사람의 성장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새로운 세상을 경험한다는 것은 익숙하던 것들로부터의 결별을 의미한다. 어렵고 어색하고 해야 할 일이 많다. 그래서 인간은 변화를 두려워한다. 나 역시 그랬다. 막노동 현장이라고 해서 대단히 어려운 건 없었다. 스트레스 받을 일 없고 오후 4시만 되면 슬슬 정리가 되었다. 차라리 편하기까지 했다. 그대로 머물러 있다가는 막노동 현장에서 십장으로 성장하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익숙함을 끊어버렸다.

일상이 나태하게 흘러간다고 느껴질 때면 한 번씩 현장에서 일을 하기도 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어느덧 편안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안전화를 갖다버리고 다시는 막노동 현장으로 가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실패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깊은 세계가 있다고 믿는다. 바로 겸손이라는 세계다.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을 알아야 한다고 믿는다. 인생의 밑바닥까지 내려갔다가 왔을 때에만 경험할 수 있는 겸손은 깊은 글을 쓸 수 있도록 마음을 연단시킨다. 자신의 부족함을 모르는 사람에게서는 겸손하지 않은 글이 나올 가능성이 많다.

불과 10개월 전 이야기임에도 무척 오래전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그 때의 경험 이후 내 인생이 아주 여러 가지 형태로, 아울러 가파르다고 느껴질 정도의 고속성장을 거듭하면서 만나는 사람들과 더불어 삶의 다양성 역시 큰 폭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일상의 패턴들마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는 것을 몸소 경험하면서 용기와 자신감이 생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새로운 도전이라는 것이 성공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와 도전정신은 다양한 부분에서의 성장을 일구어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막연하지 않았다. 성공적인 인간관계, 사업의 폭발적인 성장과 같은 부분은 자신의 부족함을 뼛속 깊은 부분까지 깨달은 사람들의 발버둥에서 싹튼다는 것을 알게 된 소중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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