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고] 김강윤 소방관의 이야기 21편 '2020년의 내가 1996년의 나에게'

스타트업엔 2020. 11. 16.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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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엔 특별기획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 시리즈 스물한 번째, 김강윤 소방관의 과거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

 

스타트업엔에서는 특별 기획으로,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연재하고자 한다. 그 스물한 번째 이야기는 불철주야 국민의 안전을 위해 헌신하는 부산 소방본부 산하 특수구조단 수상구조대 소속 김강윤 소방관의 과거의 나에게 편지형식으로 전하는 이야기인 '2020년의 내가 1996년의 나에게'이다.

◇잘 들어라.

굳이 내가 너의 이름을 부르지는 않겠다. 어차피 내가 너고, 네가 나이니, 미래에 네가 너에게 쓰는 글이라 생각하고 읽기를 바란다.(복잡하구나)

먼저 당부할 것은 나에게 복권 당첨이 되는 숫자를 가르쳐 달라거나 훗날 네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품지 않기를 바란다. 너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녀석이라는 것을 내가 더 잘 알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혹여 물어보더라도 난 대답해 주지 않을 것이다.

그냥 잘살고 있다는 정도의 대답으로 만족하길 바란다. 그냥 목숨 부지하고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것인지만 알기를 바란다. 이 말은 살다 보면 알게 될 것이다. 그냥 이 편지는 네가 10대 시절, 바로 그 시절에 잘 듣지 못했던 말들을 이제 와 내가 해주고 싶어서쓰는 글이다. 그 말이 무엇인지는 편지의 끝 무렵에 다시 언급하겠다.

◇또 잘 들어라.

그때 그 시기에 너는 아주 완벽히 잘하고 있단다. 무슨 소리인가 할 것이다. 네가 가고 싶은 대학은 정원을 줄여 경쟁률이 더 치열해졌고, 그래서 대학 입시에 대한 회의가 지금쯤 들고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네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미친 듯이 노력하고 있는 그 자체를 나는 아주아주 칭찬하고 싶은 것이다.

지금쯤이면 수능시험을 앞두고 있을 테니 학교 기숙사 도서관에서 두꺼운 기출문제집을 보며 씨름하고 있을 너의 모습 역시 너무 자랑스럽다. 수능 모의고사 성적이 아니라 네가 그렇게 죽어라 공부하고 있는 그 자체를 칭찬한다는 말이다. 일찍이 수학을 포기한 덕분에 수리 1영역의 공부 거리를 없애버렸을 테고 그 시간에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언어영역과 사탐 영역 공부할 수 있다는 너만의 공부전략도 아주 훌륭하다고 말해주겠다. 나의 기억 속에 고등학교 수학 선생들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는 것이 너의 이러한 공부전략 덕분임을 굳이 말하지 않을 수가 없구나.

힘든 것도 잘 안다. 체대 입시를 하는 너로서는 매일 공부와 더불어 입시 실기 과목에 대한 운동 연습을 하는 것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닐 것이다. 특히 턱걸이와 제자리 높이 뛰기의 기록이 향상되지 않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할 것이다. 이 부분은 미리 말해줄 수 있다.

어차피 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실기 과목 중 턱걸이와 제자리 높이 뛰기가 없는 대학에 지원하거라. 다시 말하면 굳이 턱걸이와 제자리 높이 뛰기에 목숨 걸지 말라는 이야기이다. 네가 수학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다른 과목에 집중했듯 운동도 그렇게 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어쨌든 고3이라는 중요한 시기에 너는 너의 역할을 훌륭히 잘하고 있다고 꼭 말해주고 싶었다.

◇다시 한번 잘 들어라.

너의 고등학교 생활은 멋지고 환상적이었다. 이 부분 역시 칭찬받아 마땅하다. 매우 의아할 것이다. 술, 담배를 일찍이 섭렵하고 그렇게 죽고 못사는 너의 친구들이랑 행했던 너의 고등학교 3년 동안의 행태가 칭찬받을 일이라 하니 말이다. 하지만 네가 생각하는 그런 일들은 그 시절의 일부분일 뿐이다.

넌 적어도 네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다. 너는 네가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일찍 정하고 그곳에 집중했다. 1학년 때부터 체대 진학을 목표로 두고 운동을 했고, 일찍이 수학을 포기하고 국어와 영어에 집중했으며(그래도 2학년 1학기 중간고사에서 수학 '0'점은 너무 심했다), 일찍이 여자에게 인기가 없음을 알고 이성에게 한눈팔지 않은 것을 격하게 칭찬한다. (사실이지 않으냐?)

3학년이 되어 매일 4시간이 넘는 운동시간을 넌 단 하루도 빠짐없이 충실히 해온 것을 나는 안다. 운동 후 파김치가 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가는 너의 뒷모습이 보이는 거 같아 서글픈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함께 운동하는 친구들과 입시에 대한 불안함을 이야기할 때 늘 자신 있게 말했던 너를 기억하면 뿌듯한 마음도 든다.

그 와중에도 학교 축제를 친구 한두 명과 거의 다 기획하며 훌륭히 만들어냈던 것, 거기에다 축제의 사회까지 보며 두 시간 동안 체육관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열광시킨 것도 네가 해낸 훌륭한 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세상 누구보다도 환상적인 너의 고등학교 시절에 대한 뿌듯한 자부심을 가지 바란다..

◇마지막으로 잘 들어라.

너는 너의 가족을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이 부분에서 너의 표정이 일그러짐을 느낀다. 이해한다. 그 시절 너에게 가족이 절대 평범하지 않았음을 알기에 나의 말이 받아들여지기 힘들 것이다.

열심히 일하시지만, 매일같이 술을 마시고 무서워지는 아버지와 천식 치료를 위해서라며 불교와 토속신앙에 심취해 전국을 돌아다니시느라 항상 집에 없었던 어머니, 명문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공부도 잘했던 형이지만 엄마에 대한 반감 때문인지 독실한 크리스천이 되어 엄마와 다툼이 많았던 형.

학교를 마치고 밤 10시가 다 되어 집에 가면 아무도 없는 캄캄한 집안에 들어설 때 네가 느꼈던 힘든 심정을 나는 잘 안다.

그럴 때마다 옥상에서 혼자 담배를 피우며 밤하늘을 바라봤던 네가 가족에 대해 가진 생각이 어떨지도 충분히 이해한다. 네가 목표했던 체육대학 진학이라는 그 꿈이 없었더라면 지긋지긋한 집구석을 언제라도 뛰쳐나가고 싶었을 너의 불안한 그 시절을 나 역시 뼛속 깊이 각인하고 있다.

하지만 잠시만 생각해보길 바란다. 너의 가족은 누구보다 너를 사랑한단다. 아버지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쉼 없이 일하는 이유가, 어머니가 전국의 사찰을 찾아다니는 이유가, 형이 미친 듯이 기도하고 공부하는 이유가 결코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가족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치열하게 살고 있음을 느껴야 한다. 가족이 함께 있지 못한다는 슬픔과 늘 혼자라는 너의 외로움은 언젠가 너의 내면을 성숙하게 만드는 좋은 씨앗임을 알아주길 바란다. 또한, 그 시절 항상 너와 함께 했던 소중한 친구들이 있었기에 가족의 부재가 충분히 상쇄될 수 있었음이 어쩌면 다행이지 않았겠느냐?

이제 편지를 마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부탁하자. 고등학교 2학년쯤인가 체육관 뒤에서 담배를 피우다 걸린 너와 친구들이 학생주임한테 불려가 반성문을 쓸 때, 네가 친구들(난 정확히 '이명규'의 반성문을 대신 써준 것은 기억한다)의 반성문을 대신 써준 것을 너도 알 것이다. 너의 반성문은 누가 보아도 반성과 용서를 구하는 마음이 서려 있었다. (진심이었느냐?)

그 반성문을 읽은 학생주임이 우리를 전원 사면해준 초유의 일도 아마 기억할 것이다. 흡연자를 철저히 응징하는 그 학생주임은 필경 너의 글에 반한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왜 이 말을 하냐면 쓰다 말 다 하는 너의 일기를 꼭 꾸준히 써보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그래. 안다. 고3 학예발표회 때 당당히 전시되길 바라며 제출했던 너의 시와 글이 국어 선생 곽 00에게 단칼에 거절당한 것이 상처가 되어 다시는 글과 일기를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네가 곽00 선생을 평소 존경하고 있었음에도 너의 글이 거절당한 것이 더 큰 충격이었다.

어쩌면 네가 좋아하고 잘하는 운동보다 글 읽고 쓰는 것을 더 잘했을 네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남에게 보여준 글이 존경하는 선생님에게 거절당했기에 그것이 아무도 모르는 너만의 깊은 상처가 된 것이다. 하지만 글쓰기를 멈추지 말기를 바란다. 아니 멈추지 않을 것이다. 무슨 형태로든 계속 글을 쓰기를 바란다. 왜냐고는 묻지 마라. 그냥 그래야만 한다. 하지만 쓰고 말고는 너의 선택이니 잘 생각하기 바란다.

너의 미래를 구체적으로 말하지 못함을 이해해라. 내가 단 한 줄이라도 네가 무엇이 될지를 말한다면 2020년의 내가 연기처럼 사라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네가 너무나도 재미있게 봤던 영화 '백 투 더퓨처'의 한 장면처럼 말이다.

단 내가 위에 언급한 내용을 곱씹어 보길 바란다. 네가 고등학교 시절 그렇게 듣고 싶어도 듣지 못했던 너에 대한 칭찬과 늘 네 가슴속 아픔으로 간직했던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너에게 해주고 싶었다.

넌 잘하고 있다. 그리고 너의 가족은 너를 사랑한다. 이 말이 네가 너에게 쓰는 편지의 맺음말이다. 2020년 11월 12일. 대한민국 어딘가에서 네가 너에게 쓴다.

글/사진=김강윤 소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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