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CEO클럽 모임에서 만난 분이 계신다. 공과계열에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수준이 높은 사립대학교 교수님으로, 젊고 유쾌한 분이었다. 모임에 참석한 분들과 한참 대화를 나누던 중, 그 교수님이 나에게 하신 말씀이 있다. "경청을 정말 잘하시네요."
최근에 행사를 준비하는 모임에서 알게 된 또다른 분이 계신다. 이렇다 할 특징이 없는, 평범한 분이었다. 그 분은 술자리에서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원래 말이 그렇게 없어요?"
어떤 말을 하는가보다 중요한 것이 어떻게 말하느냐 하는 것이고, 어떻게 말하느냐보다 중요한 것이 어떤 질문을 하는가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말은 누구나 잘 한다. 어릴 때부터 배우기 때문이다. 질문은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배울 수 없다. 질문을 잘 하는 사람이 드문 이유다. 상대방을 만날 때, 어떤 말을 하느냐보다 어떤 질문을 하느냐를 유심히 지켜보라. 상대방이 가진 마음의 깊이와 품격은 말보다 질문에 담겨있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물론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중요하다. 마음을 표현하는 데 서툰 사람들은 곧잘 우울증에 걸리거나, 위험한 상황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외에 말을 많이 해서 이득을 보는 경우는 홈쇼핑과 세일즈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상대방의 질문에 집중하면, 훨씬 더 깊이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인연에도 깊이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최근에 이런 생각을 했다.
3개월 인연.
3년 인연.
30년 인연.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누가 만든 말인지는 모르지만, 참 훌륭한 표현이라는 생각을 했다. 짧은 인생에 예술적 가치를 더할 수 있는 사람들을 주변에 두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비난하고 힐난하며 수군수군하는 사람들, 돈관계가 깨끗하지 않은 사람들, 술담배를 권하는 사람들, 말이 많아 탈도 많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우리 주변에 많다. 그들과 가까이하며 인생을 허비하고 싶은가, 아니면 훌륭한 진리와 가치를 추구하며 의미있는 일에 시간을 쏟는 사람들과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가?
함께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고, 사업상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도 내 주위에 있다. 나이대는 모두 다르지만, 그들은 내 친구들이다. 나이가 많은 친구, 나이가 어린 친구, 비슷한 또래의 친구도 있다. 하지만 진짜 친구들은 주로 책에 있다. 진짜 친구들 중에는 오래 전에 죽은 친구도 있고, 아직 살아서 전 세계에 훌륭한 영향력을 전파하는 친구도 있다.
지그 지글러, 피터 드러커, 카네기, 나폴레온 힐, 투퀴디데스, 나폴레옹, 브라이언 트레이시, 찰스 디킨스, 로버트 치알디니, 호메로스, 예수 그리스도,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내 진짜 친구들이다. 그들은 내게 용기를 주고, 자신감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며, 나의 실수와 연약함을 너그럽게 포용해준다. 그 속에서 상당히 큰 힘과 믿음을 얻는다. 그 중에는 벤자민 프랭클린이라는 친구도 있다.
나는 행복한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함, 성실함, 완전함으로 맺어진 인간 관계에 있다는 것을 점점 더 확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에 대한 내 결심을 적어 놓았고 평생 실천하기로 했다. -프랭클린 자서전 111p, 벤자민 프랭클린, 김영사
벤자민 프랭클린의 자서전은 얇고 가볍다. 그럼에도 전세계 수많은 젊은이들의 마음에 소망과 꿈을 심어주었다. 어쩌면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가장 본질적인 규범을 몸소 실천한 사람이었기에 그의 이야기가 훨씬 더 큰 감동과 영감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젊은 시절의 벤자민 프랭클린은 서로의 성장가능성을 돌아보면서 상호 협력할 수 있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모임도 진행했다.
내가 아는 재능 있는 사람들을 모아 서로의 발전을 꾀하기 위한 클럽을 만들었다. 이름을 전토Junto라 하고 금요일 저녁마다 모였다. -프랭클린 자서전 114p, 벤자민 프랭클린, 김영사
서로의 성장가능성을 톺아보기 위한 클럽과 모임은 지금도 유용하다. 국제 로타리, 국제 라이온스를 비롯한 다양한 청소년 단체 및 글로벌 봉사단체가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벤자민 프랭클린의 인생에서 가장 훌륭한 부분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은 따로 있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자민 프랭클린을 만든 13가지 덕목과 규율이다.
1. 절제
2. 침묵
3. 질서
4. 결단
5. 절약
6. 근면
7. 진실
8. 정의
9. 중용
10. 청결
11. 평정
12. 순결
13. 겸손
벤자민 프랭클린의 13가지 덕목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유는, 보기 좋은 단어의 나열 때문이 아니었다. 정상적으로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절제, 침묵, 질서, 결단과 같은 단어들보다 훨씬 듣기 좋고 보기에도 좋은 단어들을 수백개 이상 기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13가지 덕목이 훌륭한 이유는 행동으로 실천하면서 스스로의 가치를 드높이는 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는 사실 덕분이다. 그리고 완벽하지 않은 자신의 모습 속에서 하나하나 새로운 성찰을 해나간다는 것이 그에게는 즐거움이었으며, 후손들에게는 삶의 나침반이 되어 준 것이다.
최근 들어 만나고 있는 분들이 계신다. 그분들은 모두 나보다 20세 이상 많은 분들이고, 사회적으로 큰 명성을 쌓은 분들이다. 나는 그 분들처럼 성공하지도, 인생의 많은 풍파를 만나보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 분들을 존경하는 이유는, 그 분들이 세상에 미치는 선한 영향력이 내 인생에도 스며들어서 가치있는 일에 몰두하고자 하는 마음의 그릇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게 친구이자, 스승이자, 멘토와 같은 존재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13가지 덕목처럼 말이다.
마약, 섹스, 총기사건과 같은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발생하고, 역사적인 제국의 몰락을 언급하며 미국의 건실함이 영원할 수 없음을 시사하는 에이미 추아 예일대 법학과 교수의 강력한 경고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은 여전히 건재하다. 지금의 미국을 건국한 사람들은 종교의 자유를 위하여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으로 넘어온 영국인들이지만, 미국의 정신을 만든 것은 벤자민 프랭클린이라고 그들은 이야기한다. 위대한 미국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리더들의 부재.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공과 실패를 저울질하는 내면의 삭막함이 아닌, 벤자민 프랭클린의 검소함과 덕을 마음에 담는 지혜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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