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고] 김지원의 In Medias Res 4편 '콘텐츠 산업의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에 관한 문제의식'

스타트업엔 2023. 2. 13.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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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를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끼던 사람들조차도 최근 들어 부쩍 잦아진 자연재해를 목격하며 기후변화에 대한 심각한 위기의식을 갖게 되었다. 전 지구인의 생존과 생계를 위협하는 기후재난은 자연스럽게 지속가능성 (Sustainability)에 대한 높은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속가능성은 1987년 유엔환경계획(UNEP)과 세계환경개발위원회(WCED)가 공동으로 채택한 브룬트란트 위원회 보고서 (Our Common Future)에서 빈곤과 기후변화, 재해를 해결하기 위해 시장 중심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한 발전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공감대에서 출발한 의제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온전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국제적 결의였으며, 현재는 미래 세대의 생존 가능성을 위해서 현세대가 추구해야 하는 절대적인 목표가 되었다.

지속가능한 개발 목표

지속가능성은 이제 모든 기업이 피해 갈 수 없는 중요한 의제가 됐다. 미디어 산업의 가치사슬 (콘텐츠-플랫폼-네트워크-디바이스)의 출발점인 콘텐츠 산업도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한 노력이 다급한 분야다. 미디어 콘텐츠 산업은 다른 전통적 제조업에 비해서 탄소 배출량이 적기는 하지만, 콘텐츠 제작에 동원되는 장비, 시설 및 소품 그리고 이동 활동들이 폐기물을 발생시키고 많은 양의 탄소를 배출한다.

 

ARUP의 보고서 (A Screen New Deal: a route map to sustainable film production)에 따르면 예산 규모가 7천만 달러를 넘는 블록버스터 영화는 제작 과정에서 평균 2,840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고 한다. 미디어 콘텐츠 제작은 환경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한 노력이 꼭 필요한 산업 분야다. 

 

안타깝게도 한국 콘텐츠 산업은 지속가능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있는 듯하다. 23개의 콘텐츠 기업·기관과 함께 에코 콘텐츠 프로덕션(ECP)이니셔티브를 출범하며 조현래 한국콘텐츠진흥원장은 K-콘텐츠의 지속 가능 ‘성장’을 위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고 했다.  ‘지속가능성’과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이율배반적 비전을 내놓은 것이다. 지속가능성은 자연이 스스로 생태계의 기능을 유지하고 균형을 확보할 수 있는 상태를 뜻하는 데 반해, 성장은 자본의 축적과 증대를 의미한다. 성장이 지속가능성을 해친 원인이기에, 이 둘을 함께 외치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현재 당면한 문제의 심각성을 와해하는 왜곡된 인식인 것이다. 

ECP 로고

이런 인식의 출발 때문일까? 

 

한국의 콘텐츠 제작 기업들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노력은 근본적인 문제 해결 방법에는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K팝 숲’ 조성 사업을 위해서 멜론에 ’숲; 트리밍’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다. 멜론 정기결제권 이용자가 ‘숲; 트리밍’ 페이지에서 자신이 선택한 아티스트 앞으로 총 2,000만 원이 적립되면, 가수의 이름을 딴 숲이 조정된다고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SM 엔터테인먼트도 나무 심기 운동을 탄소제로 경영의 구체적인 실천 방안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콘텐츠 산업의 과잉생산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나무를 심거나 숲을 조성하는 방법은 기업이 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에 불과하다. 

 

좀 더 적극적으로 콘텐츠 생산 기술에 변화를 준 기업들도 있다. Hive, JYP, SM, YG와 같은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은 친환경 인증을 받은 종이, 코팅지, 콩기름 잉크 등을 활용한 친환경 앨범을 생산하였다. MBC의 경우, 2023년까지 현장 취재용 차량과 임원용 차량을 100% 전기차로 전환하는 목표를 설정하고, 단계적으로 진행 중이다. 업무 차량이 모두 전기차로 전환되면 연간 345톤의 탄소배출 감소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지만, 현재 취재 현장의 상황과 여건들로 인해 전기차는 단거리 출입처 차량으로만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생산 과정의 일부를 친환경 기술로 교체하는 것은, 기술 외의 여건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실행이 제한되는 소극적 방법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근본적인 방법은 콘텐츠 제작 과정의 전체적인 변화를 필요로 한다. 콘텐츠를 생산하는 소재나 기술뿐만 아니라, 생산하는 방법과 시스템 그리고 생산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일하는 방식까지 모두 생태 중심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는 우리에게 주어진 ‘진짜’ 과제가 무엇인지 직시할 필요가 있다.

글/사진=김지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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