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전준우 칼럼] '사색의 품격, 사색이 자본이다'

스타트업엔 2021. 11. 5.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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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로 새벽에 일어난다.

 

전업작가가 되고 난 뒤로 아침에 늦잠을 자는 일이 종종 생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주로 새벽에 일어나서 글을 쓴다. 고요한 시간이 좋아서다.

 

새벽에 서재에서 글을 쓰다 보면 느껴지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아주 조용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서재에서 책을 넘길 때 사각사각하는 소리, 키보드 탁탁거리는 소리, 무언가에 집중할 때 느껴지는 고요한 쾌감이, 나는 너무 좋다.

학창 시절 이야기를 나의 저서에서 종종 이야기하고 있지만, 공부랑은 전혀 거리가 멀었다. 내가 모르는 세계가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은 어렴풋하게 했지만, 이렇다 할 멘토가 되어줄 만한 사람이 주변에 한 명도 없었기에 그저 괴로운 10대를 보냈다. 마흔을 바라보는 지금, 한 번도 10대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지금의 삶이 만족스럽다. 사색의 수준이 인생의 수준을 결정한다는 것을 알고 난 뒤엔, 틈만 나면 책과 노트를 펴서 묵상하고 생각을 진행시킨다. 

 

우리가 고전을 읽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가들의 생각을 통해 나의 생각을 발전시키기 위함이지, 그들의 생각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아니다. - 사색이 자본이다 82p, 김종원, 사람in출판사

내가 새벽에 읽는 책은 한정되어 있다. 성경. 

 

기독교 자체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다. 반감이 99%였고 1%는 무시였다. 넷플릭스를 뜨겁게 달군 <오징어게임>에 등장한 교인의 이야기만 보더라도, 한국의 기독교가 얼마나 타락했는지를 알 수 있다. 기독교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군대 있을 때 한 선임은 "나는 뭐든지 다 잘하는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는데, 군 생활하는 동안 성경을 한 번도 읽지 않았으면서 모태신앙이라고 이야기했다. 교만의 끝을 보는 듯했다. 군생활은 개판이면서 축구하다가 골을 넣으면 '주님이 허락하셨다'라고 이야기하는 후임병을 보고 기독교에 완전히 학을 뗐었다. 그 후임병을 갈구는 재미로 군생활을 했다.

 

이후 우연한 계기로 성경을 처음 읽게 되었다. 그리고 성경에 푹 빠졌다. 성경을 읽으면서, 인생의 모양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늘 성경을 들고 다녔고, 성경을 읽는 즐거움으로 20대와 30대의 대부분을 보냈다. 기독교에 거부반응이 많았던 유년시절을 보냈기에 지금도 사람들에게 종교를 강요하거나 이야기하지 않지만, 꽤 오랫동안 종교활동과 성경 읽기에 열심을 냈더랬다. 25살에 우연히 읽게 된 성경은, 내 인생의 판도를 뒤바꿔놓았다. 인간의 힘으로는 결코 쓸 수 없는 지혜, 깊이, 단어의 선택. 그 모든 게 성경에 있었다. 

 

[사색이 자본이다]에서는 사색을 위한 도구로서의 책, 사색을 통해 얻어지는 이점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성경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 나는 십분 이해한다. 오직 사색을 위한 책이 성경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성경은 읽을 때마다 새롭다. 사색에 최적화된 책이기 때문이다. 이어령 박사는 성경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보통 성경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무슨 내용이 어디에 있는지에만 집중한다. 정보란 아침에 탔다가 저녁에 내리고 나면 잊어버려도 되는 ktx 좌석번호와도 같은 것인데, 거기에만 집중해 그토록 갈망하고 아끼고 사랑하던 생명을 발견하지 못해서는 안 된다.  - 사색이 자본이다 中 전 문화부장관 이어령 박사 어록, 64p, 김종원, 사람in출판사

 

10대 시절에는 사색의 즐거움도, 공부의 즐거움도, 이성친구를 사귀는 즐거움도 알지 못했다. 20대 때도 바쁘게 다니긴 했지만, 인생에 이렇다 할 즐거움 없이 산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30대가 되고 나니, 사색의 의미를 조금씩 알게 되었다. 친구가 좋고 술이 좋던 20대가 지나가고 어느덧 마흔을 바라보는 지금, 이제는 내 영혼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게 되고, 의미 있는 것에서 부여되는 가치를 찾고자 노력하는 진정한 내 모습을 발견했다.

마지막 죽는 날, 숨을 거두며 가장 후회되는 게 무엇일까?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한 것? 좋은 직장에 가지 못한 것? 그도 아니면 멋진 이성을 만나지 못한 것? 아니다. 아마 자신을 조금 더 사랑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가슴 아플 것이다. 자신에 대한 사랑이 없는 사색은 고통일 뿐이다. 제대로 된 사색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싶다면, 새로운 세상에서 매일 성장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싶다면, 매일 끊임없이 자신에게 아주 뜨거운 사랑을 전하라. - 사색이 자본이다 316p, 김종원, 사람in출판사

 

아들이 태어나고 난 뒤, 처음으로 죽음이 두려워졌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매 순간이 소중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육체를 입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는 같이 살아 숨 쉬고, 행복해하고, 즐거워하지만, 죽음 앞에서는 아무리 아름답고 좋은 것들이라도 아무것도 아닌 흙으로 되돌아가버린다. 사랑하는 아들과 아내, 가족, 꿈, 친구, 장래희망 등등. 이 모든 소망은 생명이 있을 때 가질 수 있는 것이지, 흙에서는 아무런 소망도 발견할 수 없다. 흙으로 돌아가기 전에 나는 무엇을 하며 인생에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가? 그 질문에, 나는 사색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한 번씩 혼자 사색하며 길을 걷는다. 2시간도 걷고, 3시간도 걷는다. 생각에 잠겨서 길을 걷다 보면 이전에 없던 지혜나 지식이, 좋은 정보들이 떠오르는 것을 느낀다. 그럼 그 모든 정보들은 곧 원고의 소재가 되고, 칼럼의 소재가 된다. 교육자료로서 손색이 없는 아이템이 되기도 한다. 사색가들은 언제나 홀로 길을 걸었다(사색이 자본이다 76p, 김종원, 사람in출판사)는 말처럼, 혼자 걸으면서 다양한 생각의 줄기들을 뻗어나가는 것은 내 영혼에 훌륭하고 감사한 양식을 제공해주는 시간이다. 사색은 영혼을 위한 양식을 채우는 시간일 뿐만 아니라, 인생에 진정한 행복과 즐거움을 채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글/사진=전준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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