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전준우 칼럼] '행여라도 그대의 마지막 날에'

스타트업엔 2021. 9. 23.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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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자

 

최근에 알게 된 노래가 있다.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뮤지컬 배우 최재림이 불렀던 노래, 김동률의 <동반자>다.

 

행여라도 그대의 마지막 날에
미처 나의 이름을 잊지 못했다면
나지막이 불러주오

 

20대와 30대, 40대의 차이점은 사람을 다루거나 대하는 방법에 있다고 본다. 20대 때는 친구가 좋고, 잘생기거나 예쁜 사람이 좋다. 감각이 있고 위트 있는, 그래서 돋보이는 사람들이 좋아 보인다. 30대가 되면 의미 있는 일에 마음을 쏟는다. 아내, 가족, 직장, 혹은 사업과 같은 것들. 나도 그랬다.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들이 좋아서 10년이란 시간 중 대부분을 보냈다. 겸손과 품위를 갖춘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영혼의 친구를 만드는 것만 같아 소망스러웠다.

 

마흔이 가까워오자 생각이 조금씩 달라졌다. 40대를 눈앞에 둔 지금, 삶에 진정한 친구를 두는 것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 곱씹어보게 된다. 잘생기고 예쁜 것, 품위가 있는 것, 그것도 나름대로의 맛과 멋을 갖고 있지만 올바른 가치관을 가진, 그래서 흘러넘치는 품격을 갖춘 사람이 더 의미 있게 다가옴을 느낀다. 낙엽이 떨어지고 해가 짧아지는 가을이 되면, 그런 인연이 더더욱 그리워짐을 느낀다. 그럴 때면 내가 항상 꺼내 드는 책이 있다. 『그리스인 조르바』, 품격을 갖춘 사람이 그리울 때마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꺼내 들고 조르바의 마음 깊숙한 곳을 음미하곤 한다.

 

목적지인 크레타 섬으로 가기 위한 길목인 항구에서 만난 조르바는 자유인이었다.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 괴팍한 성격, 거칠고 투명한 눈빛, 강인한 턱, 그리고 뜨거운 정열과 순수한 영혼. 조르바는 이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는 남자였다.

조르바는 내가 오랫동안 찾아다녔어도 만나지 못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펄떡펄떡 뛰는 심장과 푸짐한 말을 쏟아내는 커다란 입과 위대한 야성의 정신을 가진 사람. 모태인 대지에서 아직 탯줄이 채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 언어, 예술, 사랑, 순수, 정열의 의미가 막노동꾼의 입에서 나온 가장 단순한 언어로 내게 전달되었다. [그리스인 조르바] 21p, 니코스 카잔차키스, 베스트 트랜스

 

북유럽 마케도니아에는 피보다 진한 우정을 나눈 동생이 살고 있다. 학창 시절 양궁선수로 활약한 그는, 언젠가 내게 학창 시절 겪은 고통의 시간들을 이야기해주었다.

 

“아침에는 죽고 싶다는 생각으로 일어납니다. 씻고 밥을 먹으면서도 심장이 터질 듯이 두근거렸습니다. 학교에 가서 선생님에게 매를 맞을 걸 생각하면 그렇게 두려울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 선생님의 체벌이 심했거든요. 가방을 싸서 학교에 가는 동안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빠르게 뛰었습니다. 저 멀리 학교가 보이면 그때부터는 두려움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시간을 6년이나 보냈습니다.”

 

지역 대표 양궁선수로 활동하던 그는 국가대표 양궁선수들과 형, 동생 하는 사이라고도 이야기했다. 맑은 눈동자, 순수한 미소, 겸손한 태도. 나는 그 친구의 그런 모습을 참 좋아했다. 이야기를 이어갔다.

“양궁선수는 활을 쏘는 순간 점수를 압니다. 활시위가 손에서 떠나는 순간 스쳐 지나가는 바람의 세기만으로도 몇 점인지 압니다. 이건 8점이구나, 하면 8점이고 이건 9점이다, 하면 9점입니다. 인간이 컨트롤할 수 없는 바람의 흐름에 따라 점수가 나뉘는데, 1,2점 때문에 국가대표나 지역 대표가 되거나 예비후보가 됩니다. 상당한 스트레스와 싸워야 하는 일입니다.”

 

대학 졸업 후 그는 양궁선수로서의 삶을 정리하고 마케도니아에서 청소년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23살의 젊은 청년은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있다.

 

“형님, 저는 아직 어린아이 같고 아버지의 자격도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런 제가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이제 어떤 아버지가 되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둘째 아들이 태어났을 때, 그가 내게 한 말이다. 

 

대학생 시절, 그가 우리 집에 3일간 묵으며 지낸 적이 있다. 그때 나의 부모님이 차려주신 밥을 먹으며 “부모님이 차려주신 따뜻한 밥을 오랜만에 먹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하고 이야기했다. 겸손하고, 예의 바르며, 마음의 깊이가 남다른 친구였다. 그에게는 두 명의 남동생이 있었다. 동생들은 “첫째형은 무섭고 엄격한 분”이라고 이야기했지만, 학창 시절 이혼한 부모님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안고 있던 동생들이 어긋나가지 않고 올바르게 자라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랬으리라는 생각에 마음이 착잡했다. 그는 내 인생의 조르바와 같은 존재였다.

 

“조르바! 이리 와 보세요! 나한테 춤 좀 가르쳐 주세요!”
조르바가 펄쩍 뛰어오르듯 일어났다. 그의 얼굴이 황홀하게 빛나고 있었다.
“춤이라고요, 보스! 정말 춤이라고 했소? 좋아요! 이리 오시오!” [그리스인 조르바] 372P, 니코스 카잔차키스, 베스트 트랜스

20대 초반, 인도라는 나라에 가보고 싶었다. 영혼의 인도자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지독히 외롭고 고통스럽기만 하던 그 시절, 영혼의 인도자와 친구는 좁은 한반도가 아닌 먼 이국땅에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젖어 살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영혼의 인도자, 영혼의 친구는 갠지스강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나 있었다. 길거리에도, 사무실에도, 공사장에도, 카페에도, 어디에도 영혼의 친구는 존재했다. 그들과 만나 대화하고, 마음을 나누고, 서로의 기쁨과 행복을 나누는 것이 내게 큰 즐거움이자 소망이었다. 

 

최근에 소외계층 청소년을 지도하는 교육봉사단 발대식에 참석했다. 월 2회 4개월간 상담과 지도를 하는 일인데, 좋은 일인 줄 알면서도 부담스러웠다. 교통비 정도만 주는 건데 괜히 지원했나 싶었다. 그러다 같은 팀이 된 분과 담소를 나누며, 오길 잘했다 싶었다. 나이가 10살이나 많은 그분을 '누나'라고 불렀고, 그분은 나에게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선생님처럼 좋은 분을 만나게 되어 기쁩니다. 술집이나 클럽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는 오늘 교육봉사단 발대식에 참석한 분들과 나누는 대화와는 다르잖아요. 저는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분들이 계시는 곳에 참석하면서 인연을 만들어갑니다. 아무 사람이나 사귀지 않아요. 우리,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봅시다." 

 

"브라보, 젊은 친구! 종이와 잉크는 지옥에 보내 버려! 재산이나 이익 따위도 던져 버리고요! 광산, 인부, 수도원 이런 건 쓸데없어요. 이것 봐요, 당신이 춤을 배우고 내 말을 배우면 우리가 서로 나누지 못할 이야기가 어디 있겠소!" 그는 맨발로 자갈밭을 짓이기며 손뼉을 쳤다. 


"보스! 당신에게 할 말이 아주 많아요. 당신만큼 사랑해 본 사람이 없었다오. 하고 싶은 말이 쌓이고 쌓였는데 내 혀로는 부족해요. 춤으로 보여 드리지. 자, 갑시다!" [그리스인 조르바] 373P, 니코스 카잔차키스, 베스트 트랜스 

 

MBTI가 유행이다. 유행이다 싶지만, 인간은 서로 다른 유형을 갖고 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하나님은 인간을 16가지 유형으로 만드셨고, 마음의 대화가 통하는 사람들과는 서로 교류할 수 있도록 하셨다. 그래서 마음의 대화가 통하는 영혼의 친구를 만나면, 깊은 마음속 대화까지도 나눌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마치 알렉시스 조르바처럼.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주위에는 하루하루 춤추며 정열을 노래하는 수많은 조르바가 있는 게 아닐까.

글/사진=전준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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