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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김강윤 소방관의 이야기 ⑭ '화장실 청소'

스타트업엔 2020. 9. 9.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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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엔 특별기획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 시리즈 열네 번째, 김강윤 소방관의 군대에 관한 이야기


스타트업엔에서는 특별 기획으로,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연재하고자 한다. 그 열네 번째 이야기는 불철주야 국민의 안전을 위해 헌신하는 부산 소방본부 산하 특수구조단 수상구조대 소속 김강윤 소방관의 군대에 대한 이야기인 '화장실 청소'이다.

◇화장실 청소

해군에 입대하기 위해 경남 진해시 (현재 창원시 진해구)에 있는 해군교육사령부로 간 것이 1998년 9월 27일이다. 남자라면 누구나 이날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을 거다. 배웅하러 따라와 준 친구들과 인사하고 쿨하게 훈련소 연병장으로 뛰어 들어갈 때가 엊그제 같다. 연병장을 돌아 교육생 막사로 들어가자 가족과 친구들이 보이지 않는 순간부터 DI(Driil Instructor : 신병, 부사관 후보생들에게 기초군사교육을 하는 교관)들의 무지막지한 얼차려 역시 또렷이 기억이 난다.

 

군입대(사진=김강윤 소방관 제공)

 

해군을 전역하신 친구 아버지의 권유로 나는 해군 해상병 427기로 자원입대했다. 해군이라 하면 커다란 군함을 타고 드넓은 바다를 항해하며 우주선 같은 전투함에서 적과 싸우는, 그런 영화와 같은 상상을 했다. 힘든 기초군사교육을 받으면서도 반드시 그런 멋진 군함의 승조원이 되리라 믿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내가 처음 배치받은 곳은 남해의 외딴섬 '욕지도'였다. 그곳에 있는 한 해군 레이더기지였는데 내륙 지방 시골 출신인 내가 통영에서 배를 타고 두 시간 정도 더 들어가는 어느 섬에서 군 생활을 시작하리라곤 꿈에도 몰랐다. 모든 것이 낯설기만 했다.

상상했던 멋진 군함은커녕 부대원들 이래봤자 수십 명도 안 되는 작은 기지였던 그곳은 나의 군사적 상상력을 단숨에 무너뜨렸다. 특히 놀랐던 것은 내가 맡은 보직이었는데 원래 나의 주특기는 배를 타는 '갑판병'이었으나 난생처음 보는 레이더라는 것을 보게 된 것이다. 하늘같은 선배 수병(해군에서는 계급에 상관없이 모두 수병이라 부른다)의 지시에 욕지도 인근 100여 개의 섬을 외우라는 군 생활 첫 번째 '명령'에 심하게 당황했다.

 

 

말이 되는가? 나는 대양에서 적함이나 적 잠수함과 싸우는 전투함의 갑판병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곳은 군대였고 당장 내가 할 일이라고는 선임 수병의 지시를 따르는 것뿐이었다. 그 시절 누구나 겪는 군 내무생활을 말하고 싶지는 않다. 외우는 거라면 질색이었던 내가 100여 개의 섬 이름을 외우는 데 꼬박 하루도 걸리지 않았던 것은 그곳이 군대이기에 가능했으리라 본다. 나에게 그런 놀라운 암기력이 있었다면 난 고등학교 시절 더욱 열심히 공부하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런 시절을 지금 와서 결코 원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때 나는 소중한 무언가를 깨달았고 지금도 내 인생에 있어 그 시절에 경험과 추억이 현재를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되고 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경험이라면 바로 '화장실 청소'이다. 부대장님부터 말단 이등병까지 하루 종일 들락거리는 화장실을 늘 청결하고 산뜻하게 유지하는 막중한 임무였다.

나에게 주어진 청소구역은 본대 1층 화장실이었다. 부대 내에서 가장 중요한 레이더 상황실 인원들이 사용하는 화장실이었고 24시간 맞교대하는 근무형태였기에 나는 이틀에 한 번꼴로 아침 6시에 그곳을 청소했다.

서너 평 크기의 작은 화장실이었지만 무려 '1시간'을 청소해야만 했다. 그 대(大) 작업을 나에게 물려주신 선임병은 화장실을 청소하는 방법을 설명하는데 청소시간의 두 배에 다다르는 시간을 할애하며 성심성의껏 알려주었다. 그 맛집 비법과도 같은 화장실 청소방법은 다음과 같다.

우선 각 칸에 들어있는 휴지통을 수거하여 복도에 내어놓는다. 수세식 변기가 있는(설마 재래식이라 생각했는가?) 칸이 3개였는데 각 칸마다 휴지통 3개와 세면대 아래에 있는 휴지통까지 총 4개의 휴지통을 수거하여 복도에 내어놓으면 복도 청소 담당이 휴지통을 비우고 다시 복도에 그대로 둔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복도 청소 담당이 나보다 선임이었기에 그냥 내어놓으면 안 되고 내가 직접 복도 끝에 있는 큰 휴지통에 다 비워야 했다. 이것을 설명하는 선임 화장실 청소 담당은 이 부분을 야무지게 강조하였는데 자신이 과거 휴지통만 딸랑 내어놓았다가 휴지통으로 머리통을 두들겨 맞았다는 비극을 겪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워낙 진지하게 이 부분을 강조하여 나는 웃겼지만 참았다.

다음은 세면대 아래 물 호스를 이용하여 화장실 전체에 물을 뿌린다. 당시 겨울 초입이었는데 물이 얼마나 찬지 위해 호스 끝을 잡고 있는 엄지손가락 끄트머리가 얼마나 아렸는지 모른다. 이 부분 역시 물을 신속하고 풍부하게 뿌려야 한다는 주의사항을 숙지 받았다. 단순한 일이지만 느긋하게 뿌렸다가는 물이 얼어버린다든지 청소시간이 늘어나기 때문에 소홀히 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리고는 치약과 세탁세제, 물을 각 1:2:2의 비율로 믹싱(?)한다. 그 선임은 이 믹싱이라는 단어를 강조하였는데 사실 위의 비율을 어떻게 맞춰야 하는지는 설명이 없었다. 나는 그 후 눈대중으로 맞추어 나갔음을 이제 서야 밝힌다. 그렇게 세숫대야에 그 믹싱 물을 담아서 쪼그린 자세로 바닥에 놓은 채, 오른손에는 철 수세미를 들고 화장실을 쇼핑한다. 쇼핑이란 군함의 바닥이나 벽면을 세제나 치약으로 닦아 내는 과정을 일컫는 해군 용어인데 당최 어디서 유래된 말인지 지금껏 알지 못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께서 주변에 해군 출신들이 있으면 진지하게 한번 물어봐 주길 바란다.

쇼핑을 하는 과정은 매우 길고 힘든 작업이다. 소변기 3개, 좌변기 3개, 바닥 그리고 허리춤까지 올라오는 벽면까지 그야말로 미친 듯이 문질러대야만 했다. 특히 힘든 것은 절대 고무장갑을 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역시도 나의 선임은 고무장갑을 끼지 말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다. 그 이유를 용기 내어 물어보려 했지만, 그 당시 선임병은 들고 있는 뚫어 뻥으로 언제든 나의 머리를 가격할 수 있는 포지션을 취하고 있었기에 이내 질문을 포기하였다.

초겨울 찬물에 맨손으로 철 수세미를 들고 쪼그려 앉아 화장실 구석구석을 닦다 보면 허리고 무릎이고 뻐근한 것이 온몸의 감각이 사라질 것만 같았다. 손은 이미 아픈 건지 어떤 건지도 모를 만큼 욱신욱신 거렸다. 화장실 청소 중 가장 중요한 이 작업은 약 24분여간 진행되는데 매일매일 닦아 내는 대도 늘 닦을 거리(?)가 생성되는 것이 나를 너무 화나게 했다. 과연 부대원들이 무엇을 마시는지가 궁금할 지경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닦아 놓으면 화장실 전체가 세제 거품으로 뒤덮이게 되는데 다시 물 호스로 물을 뿌리는 작업을 진행한다. 개인적으로 이 작업이 그나마 수월하고 나름 희열도 느끼는 시간이었다. 박박 문지른 변기와 바닥에서 누런 떼를 머금은 거품이 씻겨 나가는 모습을 보면 이 환장할 노릇의 작업의 끝이 보인다는 희망과 함께 작업의 결과물이 나쁘지 않음을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이라 여간 기쁜 것이 아니었다. 아낌없이 물을 뿌리고 미친 듯이 씻어냈다. 이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복도에 있는 휴지통이다. 이 타이밍에서 휴지통도 함께 씻어서 뒤집어 다시 복도로 내어놓아야 한다.

자, 이 청소의 대미를 장식해 보기로 하자. 더 이상 무엇을 할까 의문이 들 정도로 화장실은 아주 깨끗한데 선임병은 이빨을 꽉 깨물며 무엇보다 중요한 최종 작업을 알려주었다. 바로 '물기 제거'였다.

선임병의 시범을 보는 순간 나는 이건 아니라 생각했다. 선임병은 "잘 보그 래이!!!"라고 짧게 부르짖으며 들고 있는 걸레를 쫙 펴 바닥의 물기를 쓸어내기 시작했다. 요즘으로 치자면 세차할 때 물기 제거를 위해 수건으로 차 표면을 닦아 내는 형태와 같다고 말할 수 있다. 난생처음 방바닥도 아니고 화장실 바닥을 걸레로 그것도 뽀독뽀독 닦아 내는 광경을 보고 내가 군대에 온 건지 청소대행업체에 온 건지 심하게 헷갈리기 시작했다. 어디 그뿐이랴. 소변기, 좌변기 그리고 복도에 내어놓은 휴지통까지 단 하나의 걸레로 물기 한 방울 없이 참 고집스럽게도 닦아 내었다. 신기에 가까운 기술이었다. 나는 군인이 아니라 물기 제거의 장인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놀라움도 잠시. 진정한 최종 단계가 남아있었다. 선임병은 몇 번을 짜서 쓴 걸레를 얼굴을 찌그려가며 마지막으로 있는 힘껏 쥐어짠 다음, 두 손끝으로 걸레를 펴 잡고 부채처럼 바람을 일으켜 화장실을 말리는 작업을 보여주었다.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스꽝스럽기도 했지만 앞으로 내가 저 짓(?)을 해야 하나 걱정되기도 하였다. 이 모든 작업을 손수 시범 보여준 선임은 보기에도 희열과 감동에 가득 찬 표정으로 나에게 말을 했다.

내일부터... 헉.. 헉..
네가 하 그해 이.. 헉..
하.. XX. 숨차 뒤지겠다...

그렇다. 내가 봐도 선임은 당장 숨이 넘어갈 듯 보였다. 순간 그런 선임병의 불쌍한 얼굴 뒤로 화장실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때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내가 이 세상에서 본 어느 화장실보다 깨끗한 화장실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신기했다. 세균이라고는 살 수 없을 것 같은 새콤한 치약 냄새와 향긋한 세제 냄새가 번갈아 내 코를 자극했고 뽀오얀 변기는 손끝으로 문지르면 뽀도독하고 소리를 내며 미끄러지지 않으려 버텼다. 선임이 숨차 뒤질 만큼 걸래 부채질을 한 화장실은 그 사이에 벌써 다 말라 있었다. 화장실 한쪽에 있는 열풍기가 물기를 말리는 데 일조했음을 그때야 알았다.

 

화장실 청소(사진=김강윤 소방관 제공) 

다음 날부터 나는 선임병의 신기와 같은 화장실 청소 시범을 상기하며 똑같이 청소를 진행했다. 일등병으로 진급할 때까지 약 5개월 남짓 청소를 했는데 지금도 생생히 이 대작업을 기억하는 것은 이런 작은 청소일 하나라도 온 힘을 다 쏟아야 한다는 진리를 그때 알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시절 화장실 청소라고 해봤자 담배 피우다 걸린 농땡이 친구들이 대충 맷값으로 하는 일로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군대에서의 화장실 청소는 말 그대로 과업(課業) 이었다.

화장실뿐만이 아니었다. 아침마다 하는 조별과업(아침 기상 직후 이루어지는 국민의례, 체조, 구보, 청소 등을 일컫는 해군 용어)에 이루어지는 청소는 장소에 상관없이 그만의 노하우와 집중력으로 최선을 다해 이루어짐을 늦게야 알게 되었다. 군대라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 당연하다고 치부될 수도 있겠지만 한정된 자원과 시간으로 최대한의 성과를 내야 하는 어쩌면 남자라면 알아야 할 조직 생활의 시작을 스물한 살 나이에 처음 겪게 된 것이다.

손끝이 시려도, 무릎이 아파도 내가 그때의 화장실 청소에 최선을 다했던 것은 뚫어 뻥을 들고 무섭게 서 있는 선임병 때문이 아니라 내가 맡은 일에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것과 난생처음 겪어보는 소중한 성취감 때문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을 수가 없다.

그깟 화장실 청소쯤이 아니라 이런 화장실 청소라도 제대로 할 줄 알아야 뭐든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어렴 풋이 알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상병 진급 직후 부사관으로 신분을 전환하여 해군 특수부대 UDT로 자원하게 되는데 그 험한 UDT 훈련을 들어가기 전에 우습게도 문득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이등병 시절 한겨울에 화장실 청소하던 그 정신이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그것이다. 그런 마음이 작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지옥 같은 6개월의 UDT 교육을 무사히 받고 거기다가 다친 곳 하나 없이 4년여를 더 군 생활을 한 후 전역할 수 있었다.

 

 

군함(사진=김강윤 소방관 제공) 

 

 

멋진 군함도 타지 못했고 대양을 누비 지도 못했지만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찬란했던 젊은 시절의 시작을 다시는 경험해 보지 못할 '화장실 청소'를 했다는 것이 나에게는 뿌듯하고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남자라면 누구나 겪었을 군 생활. 모든 게 힘들고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랐던 그 시절에 어쩌면 우리는 인생의 함축된 교훈 같은 것을 배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끝으로 그 시절 나에게 화장실 청소를 가르쳐줬던 그 선임병, 혹여 지금 어디선가 청소대행업체를 운영하고만 있을 것 같은 그 선임병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글/사진 김강윤 소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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