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전준우 칼럼] 협상의 품격 시리즈 '사람과 사람의 대화'

스타트업엔 2021. 7. 29.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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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나 같이 합시다

 

마음을 활짝 열고 지내는, 부모님 뻘 되는 여성 은사님이 계신다. 젊고 건장한 남자라는 것을 제외하고 나에게 마음을 열 만한 계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잘 챙겨주시는 분이다. 언젠가 그 분을 통해 생각지도 못한 분을 소개받았는데, 서로에 대한 적절한 소개가 없었더라면 결코 만나보지 못했을 부류의 인물이었다. 지역에서 상당한 입지를 가지고 있는 그 분은 "전준우 선생님, 식사나 같이 합시다."하며 인사를 건넸는데, 마흔살도 되지 않은 내가 예순을 훌쩍 넘긴 초로의 노신사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에게 상당한 가치를 주고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은 다양한 의미를 내포한다.

 

나는 내가 근무하는 센터의 부지에 생활체육시설을 건립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 문의를 드렸고, 그 분은 "어렵지 않습니다. 체육시설은 길거리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수요만 있으면 공급은 쉽습니다. 제안서만 하나 작성해서 보내주세요."하고 이야기했다. 적게는 5,000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의 비용이 들어가는 체육시설 건립 사업의 삽을 뜨는 일이, 서로에게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관계라는 사실이 어렴풋하게나마 직시되자 별로 어렵지 않게 진행되기 시작한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누군가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준다는 것이 생각보다 쉬운 일만은 아니라는 점에 대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더더군다나 수천만원에서 수 억원의 국고가 투자되어 국가 혹은 지방자치단체의 수장과 직간접적으로 얽혀야 하는 공적인 업무라면 쉽게 'ok'하고 이야기할 수 있을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젊은 시절부터 공직에서 근무하며 고공승진한 그 분에게 있어서 내가 여쭈어본 문의사항은 으레 만나는 흔한 질문, 혹은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는 업무의 일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과는 별개로 나의 수고와 노력이 투자되어야 하는 일 앞에, 상대에 대한 신뢰나 믿음만으로 어떤 일을 추진하기란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다. 

 

사실 이런 경우는 인간 관계에서 빈번하게 이루어진다. 잘 아는 어느 한 분은 법률상의 문제로 수억원의 빚을 지고 있다가 훌륭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어느 지인에 의해 단 몇일 만에 모든 빚을 처리할 수 있었고, 1시간 30분간의 대화만으로 3만 평에 달하는 땅을 국가로부터 기증받은 지인도 주변에 계신다. 다소 부족하거나 갖추어진 것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비슷한 사고와 관념, 혹은 생각의 결을 가진 사람들과 연결되면 생각지도 못한 큰 힘을 얻게 되는 경우가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형성되는 유기적 관계라는 것을 통해 생각지도 못한 놀라운 결과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머릿속 그림에 집중하라 

 

서로에게 긍정적인, 상당한 가치를 제공할 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확신이나 결정은 위와 같은 사례를 제하고서라도 사회에서 다양하게 발견되곤 한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설득의 심리학』의 저자 로버트 치알디니 애리조나 주립 대학교 심리마케팅학과 교수는 애리조나에 있는 석화림 국립공원에서 재미있는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석화목을 집으로 가져가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경고의 문구를 적어두었는데, [석화림이 훼손되고 있으니 석화목을 가져가지 말라] 하고 적혀진 피켓이 있을 때보다 [석화림이 보존될 수 있도록 석화목을 가져가지 말라] 하는 문구가 적혀 있을 때 훨씬 더 많은 석화목이 보존되는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루어지는 대화의 물결 속에서 앞으로의 상황을 매끄럽게, 혹은 어떤 식으로든지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을 상대방에게 인식시켰을 때 협상의 결과는 몰라보게 달라진다.

 

상황에 따라 적절한 기술, 이를테면 첫 만남에서는 파란색 넥타이를 착용하고 상대방을 만나지만 두 번째, 세 번째 미팅자리에서는 빨간색 넥타이를 착용함으로써 상대방으로 하여금 강한 니즈를 느끼게끔 하는 세일즈 기법이 있듯이, 상대방의 머릿속 그림에 집중하는 방법도 다양한 기술을 활용해서 접근할 수 있다.

 

적절한 대화, 질문지, 이미 머릿속으로는 정확하게 해야 할 말을 알고 있지만 마치 꼼꼼히 준비해온 것처럼 느껴지는 적절한 스크립트 페이퍼 등을 통해 상대방의 머릿속 그림에 집중할 수 있다. 최선의 결과를 얻기 위한 최대한의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세차장 일이 부끄러운가? 수년 전, 존경하는 은사님께서 내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한 사람이 있다. 세차장을 운영하는 분인데, 하루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 '나는 앞으로 반드시 10억을 벌겠습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이야기해봐라."


"모르겠습니다."

 

내 눈을 빤히 쳐다보던 그 은사님이 설명을 해주었다.

 

"'나는 앞으로 10억을 벌겠습니다.'라고 하는 말 속에는, '나는 세차장에서 근무하는 게 부끄럽다.'는 마음이 숨어 있다. '내가 지금은 세차장에서 일하고 있지만, 앞으로 내가 돈 많이 벌어서  떵떵거리며 살 것이다. 그러니까 나 무시하지 마라.'하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지금 시대에 휴대폰을 살 때 생각보다 형편 없는 기종을 선택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인터넷을 뒤져서 높은 평점을 유지하는 기종만 선택한다거나, 가장 많이 광고되는 상품만 구매하더라도 속된 말로 '평타'는 치기 때문이다. 수백 수천개에 달하는 선배들의 사용후기, 광고 속에서 보여지는 화려한 앱 가동률 그 이상의 능력을 보여주는 IT기술력, 완벽에 가까운 A/S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즉각적인 피드백, 0.0001% 진상고객이 친절하게 기록한 악성 댓글 하나는 휴대폰을 제조하고 납품, 수출하는 기업에 수천억원에 달하는 피해를 입힐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빈틈시장을 노리는 수많은 스타트업 CEO들과 유니콘 기업이 생겨남에도 대기업이 눈 하나 끄떡하지 않는 이유는, 엄청난 손실을 유발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끊임없이 피드백을 공유하고 수정해나가는 가운데 폭발적인 성장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수도 없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관계 속에서 협상이 어려운 이유는 이런 피드백을 공유하고 수정해나가는 기회, 혹은 경험이 사물을 마주하는 경험보다 훨씬 부족하기 때문이다. 인간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대립과 충돌 때문에 겪는 인지부조화, 성격과 마음의 깊이 때문에 가까이 할래야 할 수 없는 껄끄러운 상대를 만나 대화할 때 느껴지는 불쾌한 기분들은, 내적인 성장을 돕는 데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으나 대다수로 하여금 상당한 스트레스와 심적 고립을 초래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세월이 지날수록, 사람들 사이에 대화가 사라지고 마음의 흐름을 차단시키는 결과가 일어나는 이유다. 

◇니즈와 이해관계의 연결

 

만약 서로가 서로에게 훌륭한 조언자, 훌륭한 멘토, 혹은 훌륭한 대화상대가 되어준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다면, 혹은 그런 마음의 그릇을 발견할 수 있는 내면의 감각을 키울 수 있다면 마음의 흐름이 차단되는 결과는 섣불리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앞서 나는 어른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 젊은 청년에 대한 이야기를 한 바 있다.

 

1945년, 1950년, 혹은 1970년대에 젊은 청년이었던 분에게 앞서 언급한 젊은 청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면 어떤 반응이 돌아올까? 청춘의 대부분을 전쟁, 기근, 혹은 역사의 성장을 주목하는 데 온 마음을 바친 분들에게 있어서 서로에게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관계라는 것은 적과 아군을 구별하는 것 정도 이외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들 중 대다수의 사람들은 상대방을 대할 때 그 사람이 가진 가치와 내면의 맛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단순히 관계의 깊이, 혹은 친분의 여부에 따라 사람을 대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글/사진=전준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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