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오리지널 콘텐츠 '닥터브레인'을 선보이고도 화제를 불러일으키지 못했던 애플TV+가 지난주 한국계 미국인 이민진 작가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를 선보이며 조금씩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2017년에 출판되어 전미도서상 최종후보작으로 이미 유명세를 탄 '파친코'는 험난했던 일제 강점기 시절을 살아낸 재일교포 가족의 이야기를 4대에 걸쳐 방대한 스케일로 다루고 있는 드라마다. 한국인들에게는 비교적 낯설지 않은 소재인 재일교포의 이야기는 진주만 또는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와 같은 제2차 세계대전의 단면을 주로 다루는 할리우드의 콘텐츠들과 확연한 차이를 보이며 많은 해외의 극찬을 이끌어 내고 있다.
최근 들어 이렇게 로컬리즘 (지역성)이 강조된 콘텐츠가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데, 이러한 추세는 전통적으로 콘텐츠의 글로벌화에 있어서 중요하게 여겨지던 보편성에 기반한 영웅/로맨스 서사와 영어 중심 제작이라는 공식을 깨뜨리는 행보로 업계와 학계의관심을 받고 있다. 갑자기 흥행하는 것처럼 보이는 로컬 콘텐츠는 사실 20여 년 전 새로운 지역의 콘텐츠 시장 점유를 위한 전략으로 글로벌 콘텐츠 포맷의 지역화가 이뤄지며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후, OTT와 같은 구독 중심의 스트리밍 서비스가 콘텐츠의 로컬화를 보다 전략적으로 선택하며 급속도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현재는 로컬 콘텐츠들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으며 콘텐츠의 로컬화는 콘텐츠 글로벌화라는 성공 공식으로 탈바꿈하기에 이르렀다. <오징어 게임>과 같은 로컬 콘텐츠의 세계적 흥행은 OTT 기업들로 하여금 더욱 다양한 로컬 콘텐츠를 수집하고 플랫폼에 전시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콘텐츠의 '다양성' 지향하게 만들었다. 다양한 로컬 콘텐츠의 생산과 노출을 통해 OTT 구독자는 '아는 맛'의 경계를 넘어설 수 있었고 '모르는 맛'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경험을 통해 '새로운 맛'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한편, 애플TV+의 <파친코>는 재미교포의 원작 소설과 연출, 사극이라는 한국적 표현 방식과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는 배우들이 어우러진 제작 과정을 통해서 좀 더 도전적으로 로컬 콘텐츠의 '다양성'을 선보였다. 이를 두고 혹자는 탈경계의 시대극이라고 칭하였는데, 지극히 맞는 말인 듯 싶다. 물론, 국제 공동 제작은 콘텐츠 글로벌화의 실패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오래된 미디어 산업 전략 중 하나이다. 그러나 파친코의 이러한 행보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방어적 전략이 아닌, 글로벌 구독자의 마음을 사기 위한 적극적 구애로서의 도전적 전략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제, 콘텐츠의 지역성과 다양성은 낭만적인 표어가 아닌 가장 효과적인 산업(시장) 전략인 것이다.
OTT기업들이 많은 자본과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아주 적은 소수만이 공감할 것 같은 가장 지역적인 작품을 제작, 보유함으로써 많은 사람이 ‘모르는 맛’을 새로운 맛'으로 체험하는 경험의 과정속에서 생겨나는 듯 보인다. 다양한 콘텐츠로 여러 구독자의 취향을 읽어내고 저격함을 넘어서 전 세계 사람들의 공감과 공유 지점을 만들어가려는 대담한 도전은 OTT 산업이 미디어 시장에 던지는 신선한 충격이며 사회에 전하는 잔잔한 위로가 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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