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 고전문학, 혹은 역사에 관련된 책이 아닌 바에야 창조문학에 가까운 장편소설은 그리 즐기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난 몇 달 동안 수호지에 푹 빠져 있었음을 고백한다. 무협지는 읽지 않는 줄 알았다던 아내에게 “출간된 지 500년이나 된 무협지라면 가치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수호지에 숨겨진 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알 수 있었다. 아래는 수호지 7권에 나오는 어느 대화 장면이다.
“듣자 하니 천자께서는 자네를 뽑아 양산박으로 보낸다더군. 내 자네에게 특히 할 말이 있어 불렀다네. 어디를 가든지 조정의 기강을 잃게 하고 국가의 법도를 어지럽히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 되네. 논어에 ‘부끄러움이 무엇인지를 알아 어디로 가든지 임금을 욕되게 하지 않는 자라야 사신이라 이를 수 있다.’라는 말이 있음을 자네도 들었을 것이네.”
“예, 명심하겠습니다.” 『수호지 7권, 회귀(回歸)의 길 중』
채 태사가 양산박으로 떠나는 전전 태위 진종선에게 조서를 보내며 나누는 대화의 일부분이다.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수호지 전편 중 극히 일부분에 해당하는 태위와 태사의 격식 없는 대화 장면이다. 하지만 대화의 내용을 통해 격식 있고 수준 높은 고전의 단면, 수호지의 작품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수호지는 중국 명나라 초에 살았던 작가 나관중이 쓴 장편소설이다. 흔히 중국의 4대 기서로 알려져 있으며 마오쩌둥이 즐겨 읽었던 소설로도 유명한데, 삼국지와 수호지는 같은 작가가 쓴 책으로 모두 중국을 대표하는 무협소설이다.
초대 두령이자 선봉장이었던 조개가 화살에 맞아 죽은 뒤에 선봉장의 자리를 이은 송강, 그리고 함께 양산박을 이끌던 도두 흑선풍 이규, 노지심 등과 함께 108명의 호걸들이 부패한 조정과 그 무리를 이끌어가는 관료 세력들에 대항하며 양산 지역에 그들만의 집결지를 만들어 부정을 척결하고 의를 행한다는 이야기가 대강의 줄거리다. 4대 기서라고 불리지만 필체가 거칠고, 다른 소설과 달리 소위 말하는 도적떼들이 영웅시된다는 점에서 비판적인 시선을 가진 독자들도 더러 있다.
거듭 사람을 죽여 이미 눈이 뒤집힌 무송에게는 그 계집종들도 모두 못된 장도감과 한패로만 보였다. 허리에서 피 묻은 칼을 꺼내 들기 바쁘게 부엌문을 열고 뛰어들어가 한 계집종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단칼에 찔러 죽였다.
다른 한 계집종은 그 끔찍한 꼴을 보고 달아나려 했으나 발등에 못이라도 박혔는지 걸음이 떼어지지 않았다. 소리를 지르려 해도 입이 열리지 않아 그저 넋을 놓고 보고만 있는데 다시 무송이 달려와 한칼에 죽여 버렸다.
무송은 두 계집종의 시체를 부뚜막 쪽으로 끌어놓고 부엌칸의 등불도 꺼버렸다. 밖은 여전히 달빛이 환해 걷기에는 아무 어려움이 없었다. 무송은 그 달빛에 의해 한발 한발 안으로 들어갔다. 『수호지 3권, 불어나는 흐름 중』
의리와 형제애로 뭉친 호걸들의 터 양산박은, 간신배들의 계략에 의해 송강과 이규가 독살당한 뒤 하나하나 뿔뿔이 흩어지면서 꽃잎처럼 사그라지며 장엄한 대서사시의 끝을 맺는다. 흔히 말하는 해피엔딩happy Ending이 아닌 영웅의 안타까운 죽음, 이루지 못한 사랑의 결실, 인간의 애환과 슬픔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식의 이야기 전개방식은 장편소설의 한계가 아닌가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묻혀 있다고 하늘을 원망치 마라
멸족당한 한신韓信 팽월彭越 가련치 아니한가
나라 위한 한마음 꺾이는 그날까지
숱한 싸움으로 큰 공 이룬 세월이었네
천강성 지살성 이제 사라졌으나
간신과 역적은 아직도 남아 있구나 『수호지 10권, 꽃잎처럼 지는 영웅들 중』
어떤 면에서 봤을 때, 수호지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와 맞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 시대적 배경 탓도 있다. 사람을 함부로 죽이고, 작은 충돌에도 분을 이기지 못해 거칠게 말하며, 자갈과 모래 혹은 종잇조각으로 만든 인형에 짐승의 피를 뿌려 구름과 비를 일으키는 따위의 졸한 계략으로 전쟁을 일으키는 이야기들은 초연결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은 잘 이해할 수 없는 구전신화처럼 느껴진다. 특히 인신매매와 인육을 먹는 장면들은 4대 기서에 들어간 내용이라고 하기엔 납득이 되지 않는 잔인한 이야기들에 불과하다.
하지만 108명의 호걸들은 공통점이 있다. 첫 번째로 다양한 직업과 높고 낮음 따위의 사회적 계층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같이 인생의 굴곡점에서 실패를 맛본 사람들이라는 것, 두 번째로 혼돈스러운 세상을 등지고 그들만의 세계 속에서 서로에 대한 존중과 우애로 하늘(천자)의 명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 마지막으로 사람됨이 호걸이며 혼자서 만 명을 능히 상대할 만한 인물이라고 생각되면 귀양길 떠나는 죄인이라도 허리를 굽혀 예우를 갖추고 형제의 연을 맺는다는 점이다. 속세를 떠나 천자의 명을 기다리며 근신하고 훈련하는 삶을 살았다는 점에서,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던진다.
500년 전 수호지 속 인물들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이야기는 세상과 인연을 끊고 산속으로 들어가서 살라는 현대판 양산박으로의 귀환이 아니다. 역사 속 인물들의 삶을 통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의 모습을 뒤돌아보라는 의미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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