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전준우 칼럼] 협상의 품격 시리즈 '직업과 대화의 기술'

스타트업엔 2021. 6. 28.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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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과 대화의 기술

 

언젠가 대구 COEX에서 5,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이는 컨퍼런스에 참가한 적이 있다. 초대형 스크린과 화려한 조명, 말쑥한 슈트와 반짝거리는 구두를 신은 사람들이 모이는 그 장소에는 일상생활에서 찾아보기 힘든 열정과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물론 모든 컨퍼런스가 그런 것은 아니다.

 

전국에서 모여든 관객, COVID-19로 인해 비대면 시스템이 활성화된 시점에서 290개에 달하는 공기관과 기업, 3,500명가량의 관람객을 유치하는 박람회를 개최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일이다. 얼마나 많은 노동력과 비용이 투자되었겠으며, 코로나라는 전대미문의 위험요소를 안고 있으면서 행사를 진행해야 하는 주최 측의 수고가 어떠했을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박람회 현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저마다 목적이 있고, 목표가 있다. 바이어가 있고 셀러가 있으며, 회사와 기업에 이익이 되는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많은 자료를 준비한다. 분초를 다투는 각축 속에서 누구는 희열을 느끼고, 누구는 아쉬움을 남긴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운집하는 그 공간에서 우리가 하는 일은 상호간의 다양성을 존중하며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2021APMBF 박람회 현장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과 나눈 명함 속에는 실로 탁월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의 겸손과 노력이 숨어 있었다.

 

바이어로 참석한 비즈니스 박람회 현장에서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분명히 one of them이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 봤을 때는 수많은 only one의 집합체이기도 하다. 개중에는 대기업의 임원급인 사람들도 있을 수 있고, 작은 회사의 대표가 있을 수도 있다. 실력차이는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이 선택한 업무, 그리고 그 업무가 주어진 삶의 방향에 있어서만큼은 각자의 전문성personality를 갖고 있기 때문에 모두가 자신의 업무 분야에서만큼은 전문가인 셈이다.

우리를 방문한 통역회사 대표는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파스텔 톤의 앙증맞은 팸플릿은 얼핏 봐도 대기업의 브로슈어와는 차이가 있었다. 크고 진한 갈색 눈동자를 갖고 있던 그 여성분은 우리에게 "장관 분들을 초청하는 큰 행사를 진행하실 때 협업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을 것입니다."하고 이야기했다.

 

"예, 저희도 오랫동안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다양한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분들이 얼마 계십니다. 동시통역을 커버할 수 있는 분들도 제법 있고요. 다만 회사에서는 전문성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확실히 우리와 협업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줄 압니다. 좋은 인연이 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보겠습니다." "네, 꼭 한 번 연락 주세요. 감사합니다."

 

미소를 잃지 않는 얼굴은 비즈니스 박람회 현장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조건이다. 박람회 현장에서 미소는 사람을 얻는 가장 큰 기술 중 하나다. 마스크를 쓰고 있음에도 가려지지 않는 젊은 여성 대표님의 미소는, 주차장에서 우연히 마주친 그 분의 대형 외제세단과 오버랩되었다. 모두가 갑이 되고 모두가 을이 될 수 있는 박람회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개 그만한 재력과 능력을 겸비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 순간이었다.

 

◇박람회 현장에서

 

비즈니스 박람회 현장에서 힘든 것은 하루 종일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해야 한다는 업무적 스트레스와 육체적 피로가 대다수이지만, 그만큼 평소에 쉽게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직접 대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기회를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기회는 시시때때로 찾아온다.

 

행사장을 돌아다니던 나는 에스컬레이터를 내려가다가 왠지 낯익은 분이 내 앞에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시장을 포함한 수행비서관들, 행사를 유치한 회장단을 따라다니다가 우연히 발견한 것이었다. 주변에 업무를 수행하는 수행비서관들이 있었기에 시의장님 아니시냐고 물었다.

 

"예, 맞습니다." 내 목소리를 들었던지 그 분은 뒤를 돌아 나를 쳐다봤고, 나는 명함을 드리며 소개를 드렸다.

 

"의장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ㅇㅇ관세청장님과 ㅇㅇ이사장님을 업무적으로 돕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시간되실 때 인사드리러 가도 되겠습니까?" 정부기관에 소속된 정치인, 그리고 그들이 하는 업무와는 별로 연고가 없는 편이지만, 정치인이라는 타이틀을 제하고서라도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종사한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알아두는 것만큼 훌륭한 일도 없다. 그 분은 내 손을 꼭 잡아주시며 "에스컬레이터에서 인사를 하게 되다니! 시간 나실 때 꼭 한번 찾아주세요."하고 말씀하셨다.

 

자리에 앉아서 자신의 위치를 고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장에서는 열심히 발품을 팔면서 사람들의 얼굴을 익히고, 손을 맞잡고, 눈을 마주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사람들이 찾아오는 게 바이어의 입장이지만, 바이어의 능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나는 명함과 브로슈어를 들고 열심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다.

그러다 어느 공공기관의 임원을 대면할 기회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공공기관은 누구나 알 만한 기관이라는 점에서 그 분의 업적과 위치도 결코 무시할 만한 수준의 것이 못되었다. 그분과 담소를 나누다가 서로가 책을 출간한 저자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 분은 자신의 친필서명이 담긴 책을 선물로 주시며 살갑게 대해주셨다.

 

작고 예쁜 굿즈를 제작하는 어느 회사 부스에서는 젊은 여성분이 있었는데, 최근 들어 사업계획서를 제출하게 된 국제영화제 PPL을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승낙하며 얼굴을 기억해두겠다고 하셨다.

 

"저희 작품이 국제영화제 출품작으로 선정되면 다양한 곳에서 홍보가 될 것이고, 파급효과 역시 적지 않을 것입니다. 상호간에 윈윈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으니 많은 도움 바랍니다."

 

"네, 감사합니다. 제가 얼굴을 꼭 기억해두고 있을 테니 편안하실 때 연락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직업과 대화의 관계

 

박람회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배우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여러 가지 있는데, 그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공통적인 직업군에 속해있는 사람들은 비슷비슷한 성향과 패턴을 유지하고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었다.  이론적으로는 이해가 가능하지만, 실제로 대면하면서 만나보면 그 차이가 상당히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일즈와 마케팅 부서에서 활동하는 분들은 대체적으로 조근조근하며 경청에 능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듣는 것은 말하는 것보다 훨씬 귀하고 아름다운 것이기도 하지만, 듣지 않으면 고객의 요구사항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적절한 질문, 적절한 대답, 그리고 상대가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적절한 제스처까지 비슷했다. 당연한 것이겠지만 호텔 담당자인 경우 총지배인이냐, 부지배인이냐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났고, 대표와 직원 사이에서도 차이가 났다. 어느 곳이든지 위치가 사람을 만들기도 하고, 회사의 기여도와 애사심의 깊이에 따라 서열이 적용되는 곳이다 보니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공기관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들은 다른 성향을 갖고 있었다. 활발하고 활동적인 분위기의 마케팅 회사와는 달리 다소 경직된 분위기에 업무 중심의 성향을 갖고 있었다. 시청 소속 담당자들 중에는 아주 밝고 친절하며 겸손한 분들도 있었지만 드물었다. 비슷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으나 물과 기름처럼 나뉘어진 정무직 공무원은 친절이 몸에 배여 있었다. 개인마다 생각은 다를 수 있지만, 다양한 사람들과 협상하는 우리는 성향에 따라 맞추어서 대응할 필요가 있다.

글/사진=전준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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