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엔 특별기획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 시리즈 열두 번째, 김강윤 소방관 시작에 관한 이야기
스타트업엔에서는 특별 기획으로,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연재하고자 한다. 그 열두 번째 이야기는 불철주야 국민의 안전을 위해 헌신하는 부산 기장 소방서 구조대 소속 김강윤 소방관의 소방관 시작에 대한 이야기인 '시작하는 이들을 위하여'이다.
◇시작하는 이들을 위하여
12년 전 새 찬 바람이 부는 어느 겨울날 나는 부산행 기차에 몸을 싣고 있었다. 그토록 바라던 소방관 시험에 합격하여 아무 연고도 없는 부산으로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부산역에 여행용 가방 딸랑 하나 들고 내려 택시를 잡아타고 연산동의 ‘부산소방본부’로 향하던 그때의 설렘이 엊그제 같다.
나의 소방관으로서의 첫 발령지는 부산의 중심 서면을 관할로 두고 있는 부산진 소방서였다. 경북의 소도시 출신인 내가 하루 유동인구만 수 십만 명에 달하는 서면 한복판에 있는 구조대 사무실로 첫 출근을 했을 땐 그야말로 뭐가 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군대 갓 들어온 이병마냥 어안이 벙벙하고 있는 나를 팀장님과 팀원들이 대기실에 사물함을 안내해 주고 간단한 생활 수칙이나 근무방식을 말씀해 주시며 살뜰히 챙겨 주신 것도 생생히 기억난다. 인사를 나누고 있는 와중에도 출동이 걸려 텅 빈 사무실에서 출동 나간 팀원들을 기다리고 있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한 구조대 생활의 첫 출동은 아마 문 개방 출동이었던 것 같다. 어느 오피스텔에서 친구가 자살을 한다는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남기고 문을 잠갔다고 신고한 내용이었다. 출동 가는 내내 얼마나 심장이 두근거렸는지 모른다.
‘사람이 죽었으면 어떡하지?’, ‘문은 어떻게 개방하는 걸까?’ 온갖 생각이 다 들며 이동하는 내내 선배들의 눈치만 보며 내가 할 일이 무엇일까 고민했다.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지만 첫 출동의 두근거림은 아직 생생하다. 뭐든 열심히 하리라 마음먹던 신임 소방관 시절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 후 10년이 넘는 소방서 생활을 하며 처음의 마음은 이제 빛바래졌지만 잊지 않고 가슴속에 담아 둔 다짐은 아직 변하지 않았다. 바로 ‘다치지 말고, 죽지 말자’는 것이다. 구조 대원 근무를 처음 시작하며 나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사고로 인하여 다치고 죽는 줄 처음 알았다.
소방관이 되기 전에 화재니 교통사고니 하는 사고는 뉴스에서만 보는 일이었다. 그 당시 부산진 소방서 구조대는 전국에서 출동건수가 3위 안에 드는 그야말로 격무부서였는데, 고양이를 잡아달라는 출동부터 뛰어내리겠다는 자살 출동, 장소를 가리지 않는 화재출동까지, 처음 몇 개월 동안 딸랑 두벌밖에 없는 주황색 근무복(소방관들은 당근복이라 부르는)을 하루에 한 번은 꼭 세탁을 했던 것 같다.
지금은 달라졌지만 내가 임용되던 당시에는 신임 소방사들은 2일 정도의 간단한 기초교육만 실시하고 바로 현장으로 배치되어 출동업무를 수행했다. 그때 이틀의 기초교육 기간 중에 교관님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가 근무하다가 다치거나 순직하신 선배들의 이야기였다.
생면부지 알지 못하는 순직한 선배님들의 이야기는 남일 같지가 않았다. 소방관으로서 가장 명예로운 것은 다치지 않고 무사히 정년퇴임하는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나와 동기들은 내심 두려웠지만 다치고 죽는 것 또한 ‘일’의 한 부분임을 깨닫는 대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훗날 내가 부산소방학교의 교관으로 부임하여 갓 들어온 신임 소방사 후배들을 교육할 때도 이와 같은 이야기를 가장 많이 강조하였다. 소방관 자신의 안전이 확보되어야 화재진압도 가능하고 구조도 가능하다는 것을 끊임없이 말해 주었다.
구조 교육에 있어 가장 기초적인 이론 중에 ‘구조 우선순위’라는 것이 있는데 가장 먼저 구조 대원 본인의 안전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뜻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구조를 기다리는 요 구조자를 구하지 않고 구조 대원의 자신의 안위가 먼저라니 말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그 뜻을 금방 알 수 있다.
요 구조자를 구조하는 상황에서 구조 대원이 위험해진다면 구조는 보다 더 어려워지고 복잡해진다. 자칫 잘못하다가 구조 대원까지 구해야 하는 상황, 즉 요 구조자가 더 늘어나는 상황이 오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주변 상황과 구조 여건을 파악하여 구조 대원 본인과 동료의 안전이 확보된 상태에서 현장활동에 임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실제로 2001년 서울 홍제동 주택화재 사고 때 화재로 무너져 가는 주택에 요 구조자가 더 있다는 주변의 말에(실제는 없었다) 내부로 진입했다가 구조 대원 6명이 순직한 사고를 우리는 기억한다. 이때의 사고로 우리는 누군가를 구하는 숭고한 희생도 모두가 안전하게 살았을 때 빛을 더 발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날의 기억은 살아남은 자들에게 아직도 가슴 아픈 상처로 남아 있다.
요즘 소방관을 꿈꾸는 젊은 친구들이 많다. 공무원으로서 평생직장이라는 것과 시민들로부터 존경받는 직업이라는 것에 많은 매력을 느끼는 듯하다. 아는 지인이 운영하는 체육 입시학원에 소방관 지망생들이 많이 와서 체력시험에 대비하여 운동하는 모습도 보았다. 현직에 있는 나로서는 유능한 젊은이들이 이 일에 많이 지원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기만 하다.
그렇게 소방관이 되어 시작하는 이 생활은 희생과 봉사라는 숭고한 직업적 사명을 각자에게 부여한다. 가슴이 벅차고 뿌듯해지는 단어가 아닐 수가 없다. 하지만 반드시 기억할 것은 내가 처음 소방관이 되어 가졌던 다짐이나 나의 교관님들이 알려준 대로 퇴직하는 그날까지 다치지 않고 죽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열 명이든 백 명이든 함께 임용된 동기가 함께 퇴직을 하는 기쁨을 누리는 것이 소방관으로서의 가장 큰 복이라고 말하고 싶다.
코로나가 한참 기승이던 지난 3월에 처음 임용되어 함께 근무하고 있는 우리 팀 막내 다원이는 이제 어지간한 출동에도 당황하지 않고 훌륭히 임무를 수행하는 든든한 구조 대원이 되었다. 그저 열심히 하겠다고 말하며 일을 배우기 시작한 막내가 선배들과 발맞춰 현장에서 능숙하게 일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막내에게 바라건대 이일을 시작하는 스스로의 마음이 12년 전 내가 처음 시작하던 그때의 다짐과 같기를 바라본다.
그리고 훗날 건강한 모습으로 명예롭게 제복을 벗는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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