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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김강윤 소방관의 이야기 25편 '내 인생에는 꿈이 없었다'

스타트업엔 2021. 2. 22.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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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는 꿈이 없었다

어린시절에 사실 나는 꿈이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다. 막연했고, 멀었다. 꿈이라는 게.

 

누구나 그런 줄 알았다. 내 주위엔 다 그랬기 때문이었다. 남들처럼 하라면 했고, 가라면 갔다. 같은 옷을 입고 잘 짜여진 교실에서 네모난 책상 앞에 줄 맞춰 앉아 같은 말을 하고, 같은 말을 들어야 했다. 그러다가 가지 못했다. 가라고 해서 갈거라고 했던 대학이었는데 대학은 나를 받아주지 않았다. 적잖은 실망이 밀려왔다. 뒤로 밀려 혼자 서 있는 듯 느껴졌다. 결국 인생이라는 게 일렬횡대로 가 같이 가지 못한다는 것만 뼈져리게 깨달았다.

 

20대가 되어서도 꿈이란 것은 없었다. 아무리 봐도 그랬다. 대학에 두번 떨어지고, 부끄러움이 몰려와 선택한 군인의 길. 다행이었고 잘한 선택이었다. 하라는대로, 시키는대로 살아온 인생의 정점을 찍는 듯 했다. 처음으로 나와 똑 맞아 떨어지는 환경에 놓여졌다. 깍아 자른 듯 이어지는 일상이 좋았다. 극기(克己)의 생활은 나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매일 모두가 오열(伍列)을 맞춰 함께 걸어가고 함께 뛰어갔다. 뒤쳐지면 끌어주었고, 앞서가면 끌어내렸다. 그렇게 잘할것도, 못할것도 없는 시간을 6년이나 보냈다. 철저히 길들여진 시간이었다. 꿈 따윈 사치였다.

30대가 되어보니 꿈이 보였다. 소방관이 되었고, 나의 업(業)에 무게를 견디며 세상을 보았다. 죽은 자를 살리지 못한 죄스러움은 때때로 내 삶을 괴롭혔다. 죽은 자의 모습은 잊힌 듯 했지만 이내 다시 보였다. 다들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괴로움에 스스로 돌아오지 않는 강을 건너는 동료들도 있었다. 반듯하게 그어진 선안에만 살아가던 내가 삐뚤빼뚤 휘어진 나선처럼 걷기 시작했다. 꿈은 두려움이었다. 갈등, 반목, 분노... 꿈은 다양한 형태로 나에게 나타났다.

 

40대에는 꿈을 썼다. 글을 쓰면서 인생을 보았다. 불과 1년 전. 쓰기 시작하고 삶은 바뀌었고 두려운 꿈은 나에게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닌 게 되었다. 기억은 글이 되었고, 활자의 힘은 나에게 새로운 꿈을 보여주었다. 보잘 것 없고 가여운 인생이라 생각했지만 글을 쓰면서 내 인생도 꽤 괜찮음을 알게되었다. 반나절쯤 두근거리며 두드리는 글쓰는 행위는 나를 다시 깨우고 내 꿈을 다시 설계했으며 내 인생을 다시 만들었다. 그렇게 새로운 꿈이 내 안에 들어왔다. 여전히 내 인생은 나쁘지 않음을 불현듯 깨달았다. 이제서야 진짜 꿈이 나에게 보였다.

 

내 인생엔 꿈이 없었다. 망상은 있었겠다. 몸을 짓누르는 현실이 못내 힘겨워 휘휘 저어도 잡히지 않는 또 다른 허황에 목 말라했는거 같다. 미래를 상상하는 아름다운 꿈이 왜 나에겐 구체적으로 없었는 지 지금도 알수는 없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온전하고 건강하게 숨쉬고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쓰며 반쯤 지난 인생을 생각하며 내 꿈이 어쩌고 저쩌고라고 말하고 있음에도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그저 포기하지 않고 꾸역꾸역 살아 온 나 자신이 대견할 뿐이다. 그게 내 인생이었음을 부지불식간에 알게 되었다.

 

다른사람들이 어떤 꿈을 꾸고 어떻게 꿈을 이루어 나갔는 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최소한 난 그랬다. 버티고 버티며 살다보니 지금에 왔고, 멈추고 서지 않고 가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이만하면 다행이고 이만하면 잘 살았다 싶다. 여우보다 더 여우같은 아내와 토끼보다 더 토끼같은 딸아이 하나 얻었고, 먹고 살만한 업을 하고 있으며, 큰 탈없이 몸뚱아리 잘 움직이니 딱 좋다 말하고 싶다. 그리고 이렇게 쓰고 있으니 더 바랄 것도 없다.

꿈이 없다며, 보이지 않는다며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탄하고 분노하는 모습이 곳곳에 보인다. 이해한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하지만 그런거다. 인생은 불공평하다. 인정해야 한다. 이 당연한 현실에 분노할 필요없다. 자세히 보면 남과 같은 삶은 단 한 사람도 없다. 허공에 주먹질도 한 두번이다. 당장의 현실에 눈을 크게 뜨고 뒤로 밀리지 말아야 한다. 어금니 꽉 깨물고 세상에 대들어야 한다. 꿈은 이루고 나서야 꿈이지 방구석 책상 앞에 붙여 놓은 글씨가 꿈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멀리 돌아갈지라도 언젠가 꿈이라는 것을 이미 이룬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언제건 편한 세상이 있었겠는가? 삶의 열쇠는 자신이 쥐고 있으니 둘러보며 화내지 말자. 남보다 잘난 내가 있었겠는가? 내가 이겨야 할 것은 나 자신임을 알고 비교하지 말자. 꿈꾸되 허황되지도 말자. 부디 누구나가 자기의 꿈을 이루는 인생이 되길 바란다.

글/사진=김강윤 소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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