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전준우 칼럼] '설득의 심리학'

스타트업엔 2022. 2. 18. 11:41
728x90

수년 전 학습지 기관에서 근무할 때 일이다. 대부분의 학부모님들이 친절하고 겸손하셨으나, 간혹 그렇지 않은 분들도 더러 계셨다. 그런 분들을 관리하는 건 확실히 쉬운 일이 아니었다. 교육에 대한 철학과 방향성을 이야기해도 듣지 않았다. 어떤 면에서 봤을 때 당연한 것이기도 했다.

 

젊은 남자 교사의 실력이 다른 교사들보다 월등히 뛰어날 리는 없고, 이렇다 할 스펙도 없었기에 무슨 이야기를 해도 학부모님들의 반응은 미적지근하기만 했다. 그러다 첫 책이 출간되자마자 내 말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는데, 항상 시큰둥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기만 하다가 책이 출간된 이후에 전적으로 자녀교육에 대한 권한을 나에게 맡기는 분도 계셨다. 그래서 명함을 만들거나 스티커를 제작할 때도 의도적으로 전문가의 분위기가 풍길 수 있도록 디자인했고,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이미지를 풍기기 위해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접목시켰다.

 

인생은 선택과 집중의 연속이라는 말이 있다. 인생에는 다양한 선택의 순간이 찾아오기에 매 순간 가장 좋은 선택을 해야 하고, 그 선택에 집중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게 인간의 특징이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매 순간 설득의 연속이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우리는 다양한 심리학의 세계 속에 살고 있다. 마케팅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도 심리학에 기초를 둔 마케팅 요소가 상당히 크게 우리의 삶을 좌지우지한다. 선택의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선택하는 사람이 있다면, 설득하는 사람도 존재하는 법이다. 사람뿐만 아니라 기업이나 조직과 같은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협상과 설득은 비슷한 말이지만, 협상이 상호 간에 좀 더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한 대화 과정의 일부라고 한다면 설득은 세일즈나 판매처럼 갑을관계가 조금 더 명확하다는 특징이 있다. 이때 다양한 설득 심리학 과정을 통해 이전보다 훨씬 더 크고 빠르게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들을 구상해낼 수 있다. 

 

일례로 행동심리학(behavioristic phychology)은 어떤 특정한 학설이나 논문을 바탕으로 한 심리학의 원리를 파헤친 것이라기보다는 특정 행동과 상황을 주체로 하여 심리의 이동방향을 관찰하는 학문의 일종인데, 가령 동네에 싸고 질 좋은 상품을 판매하는 대형마트가 오픈 기념으로 전 제품을 선착순으로 100명에게 50%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한다는 공고가 붙으면 사람이 몰리는 것과 같은 상황을 의미한다. 가격 대비 훌륭한 상품을 싼 값에 구매하려는 심리에 선착순이라는 단어를 접목시킴으로써 빠른 선택을 부추기는 마케팅을 접목시키는 것이다. 다른 예로 똑같은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옷을 입고 어떤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는지에 따라 이성이 매기는 점수는 0점에서 100점까지 다르게 측정되기도 한다. 

어떠한 호의를 제공하고 어떠한 호의로 되돌려 받을 것인가는 전적으로 최초의 호의를 제공한 사람이 결정한다는 점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불로소득자들은 불공평한 교환을 의도적으로 조장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작은 선심을 우리에게 먼저 베풀고는 나중에 커다란 보답을 요구하기도 한다. [설득의 심리학] 72p, 로버트 치알디니, 21세기 북스

 

최근 들어 한 지인이 취업을 준비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준 적이 있었다. 딱히 어려운 일도 아니었으나, 서류 정리를 마무리한 뒤 그분은 내게 봉투를 하나 내밀었다. 도와준 것도 고맙고, 얼마 뒤에는 명절이니 성의만 담았노라며 금일봉을 전해주는 게 아닌가. 호의로 시작된 도움이 그분에게는 일종의 빚으로 여겨진 셈이다. 흔히 상호성의 법칙이라고 이야기하는 이 용어는 인간이 사사로운 도움을 받은 경험이 있다면 그대로 되갚아야 한다는, 일종의 심리적 압박을 내포하고 있는 단어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설득의 심리학이라는 것에 항상 긍정의 요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 불리하거나 위험한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금세기 설득심리학의 가장 큰 피해 중 하나는 보이스피싱이다. 저금리로 최대 수억 원까지 대출해준다는 허위광고에 속아 넘어 감으로써 상당한 피해를 입는다. 스스로 선택한 일의 결과라는 점에서 피해는 고스란히 선택한 사람의 몫이다. 

사회과학자들은 강한 외부적 압력 없이 우리 스스로 선택하여 행동한 일에 대해서는 우리가 내부적 책임감을 갖게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설득의 심리학] 155p, 로버트 치알디니, 21세기 북스

 

다양하게 존재하는 설득의 형태 속에서 긍정의 요소와 부정의 요소를 분별할 수 있는 것은 개인의 능력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으며, 이는 곧 생각의 점진적인 진행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횡단보도는 무단횡단이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과 규칙이라는 질서를 심어줌으로써 사회적 규범을 만드는 데 일조했으나, 나는 횡단보도가 파란 불일지라도 절대로 앞만 보고 건너지 않으며, 파란 불이 들어오자마자 횡단보도로 뛰어드는 행동도 절대 하지 않는다.

 

운전자가 술을 마신 음주운전자일 가능성도 있고, 자동차의 내연기관에 오류가 생겨서 급제동이 걸릴 수도 있으며, 하필 그 순간 심장마비와 같은 긴급한 상황이 발생하는 바람에 내가 길을 건너는 동안 정신을 잃고 엑셀레이터를 밟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제 아무리 명백한 잘잘못의 결과를 따질 수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모든 부정적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나의 몫이라는 말이다.

 

모든 상황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건 아닌가 하는 의견이 있을 수 있으므로, 다음과 같은 실제상황을 예로 들어보자. 최근 들어 신뢰할 만한 어느 분이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법이 없어도 살 수 있는 분이겠다 싶을 정도로 자기 관리에 철저한 분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배웅하는데, 가시는 길에 인사를 하기 위해 운전적 뒤편 우측에 내가 서 있었다. 손을 흔들고 차가 출발하려는 찰나, 그분이 실수로 R(후진) 모드에 기어를 넣고 차를 출발시켰다.

 

내가 '어어어' 하는 사이 그분이 운행하는 1톤 트럭은 사무실 문을 그대로 들이받았는데, 철제문은 절반이 접혀 들어갈 정도로 찌그러졌다. 겁이 많은 나는 시동이 걸려 있는 차량의 앞과 뒤에는 절대 서지 않는 습관이 있는데, 본능적인 거부감이 때로는 예기치 못한 위험에서 우리의 생명을 구해낼 수도 있다는 것을  몸소 확인한 사례였다.

 

학문으로서의 심리학이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시점이지만, 사실 심리학이야말로 살면서 가장 필요한 능력들 중 하나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심리학을 통해 사회, 경제, 문화가 전반적으로 반전과 쇠퇴가 반복되기 때문이며, 인간성 파괴라고 이해되는 사회적 현상 역시 일종의 군중심리와 연관된 심리적 반응일 수 있기 때문이다.

위기에 처한 사람은 목격하고 있는 사람이 많이 있다고 해서 그들이 자기를 구조해 줄 것이라고 결코 안심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 중략...) 어떤 집의 문틈으로 연기가 새어 나오는 것을 혼자서 목격한 경우에는 목격자의 75%가, 그리고 세 사람이 함께 목격한 경우에는 목격자의 38%가 소방서에 신고하였다고 한다. [설득의 심리학] 207p, 로버트 치알디니, 21세기 북스

 

상호 협력하는 과정 속에서 싹트는 사랑만큼 서로 간의 호감을 빠르게 높이는 과정은 없을 것이다. 우리와 유사한 성격 혹은 생각을 갖고 있는 존재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잘못된 가치관과 견해를 가진 지도자(심지어 그 조직 안에서의 권위가 그로 하여금 1.3cm 정도 키가 커 보이게 만든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의 지휘 아래 어긋난 선택을 습관화하는 집단에 오랫동안 속해 있으면 조작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심리학은 마술 같은 조종술과는 거리가 먼 일종의 학문이며 사고의 흐름을 전환시키는 기술에 불과하지만, 인류 역사상 적절한 심리학의 활용 없이 사업에서 성공하거나 전쟁에서 승리한 유례를 찾아보기란 어렵다. 이제부터라도 심리학에 관심을 갖고 내 마음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보는 것은 어떨까? 혹시 아는가? 지금 아등바등하는 우리의 사업이 지금보다 2배, 3배로 크게 급성장할지.

글/사진=전준우 작가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