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전준우 칼럼] 협상의 품격 시리즈 '상상력의 현실화'

스타트업엔 2021. 7. 8.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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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수년 전 문득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배우고 싶은 건 바로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라 서점에서 독학으로 배울 수 있는 피아노 교습 책을 한 권 사서 바로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 얼마간은 재미있게 배울 수 있었지만, 어느 순간 한계가 드러났다. 독학만으로는 할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 악보를 볼 줄 몰라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포기했다. 그 뒤로 피아노를 배우려는 마음을 접어버렸고, 지금까지도 피아노를 연주할 줄 모른다.

 

사실 나의 목표는 단순했다. 조지 윈스턴(George winston)의 캐논(Canon)이나 비틀스의 렛잇비(Let it be) 정도의 곡을 악보 없이 피아노로 연주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추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캐논이나 렛잇비를 연습했었더라면, 모르긴 몰라도 지금쯤 능숙하게 다룰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이 향상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기초부터 피아노를 배워서 연주를 하려고 하니 문제였다. 피아노는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혹자는 "성공은 남는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 있다."라고 이야기하지만, 남는 시간을 모두 피아노에 쏟아붓는다고 해도 독학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은 분명히 있었다. 피아노가 내게 그런 것이었다. 목표에 비해 투자해야 하는 시간과 비용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진짜 목표, 그리고 그 목표를 해결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일련의 과정들, 그리고 그 과정들을 거쳐가면서 만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에서부터 창의적인 기회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 캐논이나 렛잇비를 연주하려다가 전혀 다른 장르의 음악을 연주해볼 기회가 생겼을지도 모르고, 다양한 리듬의 반주곡을 만들 수도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3P다이어리

이전에 근무하던 회사 선배가 대표로 재직하고 있는 3P 자기 경영연구소에서는 3P바인더라고 하는 독자적인 상품을 개발해서 판매하고 있다. 3P바인더를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었지만, 다양한 종류의 다이어리를 구매해서 사용하고 있는 나는 굳이 아까운 돈을 허비해가며 3P바인더를 구매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구심이 먼저 들었다. 

 

'다이어리 하나 바꾼다고 해서 인생이 바뀔 리가 있겠는가? 그렇다면 그런 다이어리 하나 없이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낸 사람들은 무엇인가?'

 

한동안 그런 고민 속에 빠져 있다가 먼저 사용하고 있는 지인들에게 '사용해보니 좀 어떠냐'하고 물어보았다. 그들의 답변을 듣고, 나는 바로 다이어리와 속지를 구매했다.

 

"굳이 없어도 돼요. 근데 없는 것보다는 나아요."

 

매일매일이 어제보다, 과거보다 조금 더 나아지는 것을 인생 목표로 삼고 있는 나에게 진짜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알려준 기회였다. 

 

아주 단순한 예지만, 실제로 눈에 보이지 않는 목표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다. 3P바인더가 없어도 나는 꾸준히 독서를 했을 것이고, 꾸준히 글을 써왔을 것이며, 더 나은 하루하루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굳이 구매하지 않았더라도 살아가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는 것이었다. 다만 분명히 +@가 된다는 확신 때문에 3P바인더를 구매한 것일 뿐이다. 

 

물론 3P바인더가 아니더라도 좋다.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결책의 범위는 상당히 넓어진다. 3P바인더가 아닌 프랭클린 플래너도 괜찮고, 분초 별로 시간을 관리할 수 있는 플래너가 있었더라면 구매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근본적인 문제를 파악할 수 있는 의지와 이후 선택의 다양성이다. 

 

◇꿈꾸는 것에서 벗어나 

 

앞에서의 예처럼, 정확한 목표가 무엇인지 설정해두는 것만으로도 문제는 쉽게 해결되는 경우가 일상에는 빈번하게 발생한다. 반면에 단순히 노력만으로 가능한 것들도 있다. 책을 출간하는 것, 턱걸이 30개를 쉬지 않고 하는 것은 특별한 재능이나 타고난 끼가 별로 필요하지 않은, 상당한 시간의 투자와 노력만으로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쉽지 않은 일은 맞지만, 목표와 달성일만 어림잡아 계산해둔 뒤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룰 수 있는 것들이었다. 목표가 무엇인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우선적으로 정해둔 뒤 행동으로 옮기기만 하면 이루어질 수 있는 것들도 무수히 많다. 

virtual reality(가상현실)

가령 비둔한 체형을 가진 사람들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서 지방을 모조리 제거한, 보기만 해도 매끈매끈한 근육질 몸매를 가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좀 더 그럴듯하고 우아한 단어를 써서 이야기하자면 virtual reality(가상현실)이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어쨌거나 그런 상상을 통해 자신의 현재 모습과 비교해볼 수 있다면 현저히 나아지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런 상상이 결코 나쁜 건 아니다. 그렇지 않은가? 핵심은 그런 상상, 혹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실제로 어떠한 결과를 맞이하게 될 것인지에 대해 나름대로의 답을 구상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과정을 거쳐서 지금보다 나아진 모습을 갖게 될 것인지, 나름의 목표와 계획을 세워서 좋은 결과를 맞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을 아울러 우리는 올바른 태도라고 이야기한다.

◇그는 어떻게 탁월함이 되었는가

 

어떤 협상에서도 올바른 태도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나 자신과의 협상에서든, 자동차 판매사원이 고객과 나누는 대화에서의 협상에서든, 고급 빌라를 계약하기 위해 내방한 고객을 응대하는 셀러든, 협상 그 자체는 태도가 90% 이상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최악의 상황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최악의 상황이 협상의 결렬이라면, 최고의 상황은 협상의 완성이다. 올바른 태도는 그 협상의 완성을 위한 최고의 도구다. 

 

우연한 계기로 알게 된 지인이 있다. 현재 국내 모 공기업의 사장이며, 이전에는 서울지검 부장검사를 거쳐 관세청장으로 재직한 바 있는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분이다. 업무에 관련한 내용 때문에 그 분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두 가지를 느꼈다. 한 가지는 상당히 박식한 분이라는 것, 또 한 가지는 소탈함이었다.

 

"보기에도 그렇겠지만, 나는 촌놈이에요. 시골에서 소 키우면서 자랐습니다."

 

요즘 흔한 유행어로 '지거국' 출신에 이렇다 할 사회적 영향력이라곤 전혀 없는 나를 대하는 그분의 태도에서 상당한 매력을 느꼈다. 나는 협상자도 아니었고, 비서도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특별한 관계를 유지할 만한 사람도 아니었다. 시골에 사는 평범한 젊은이에 불과했다. 그런 내가 작은 도서관 축사 요청 건으로 전화를 드렸을 때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몇 시에 합니까?"

◇믿음과 소망 사이

 

상대와 협상을 진행할 때는 협상의 형태와 규모가 작든 크든 구체적인 주제, 주제에 걸맞은 정보, 그리고 순서까지 완벽하게 정해야 한다. 어느 지인은 한 나라의 대통령, 혹은 국왕과 면담을 할 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낸 뒤 분, 초 단위까지 세밀하게 계산한 뒤 자리에 임했다. 

 

5분 : 음악 및 국가 연주
5분 : 인사 및 질의응답
15분 : 주제에 대한 토론
5분 : 협상안 제시 및 결과 수렴

 

물론 한 나라의 국왕, 대통령과의 면담이 계획대로 진행될 수는 없다. 상대방을 만족시키는 것, 그래서 상대방이 나로 하여금 편안함을 넘어 존경을 느낄 수 있도록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으로부터 며칠 전, 청소년 선도사업을 위한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울주군청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담당자를 만나 내 의견을 이야기하고 조언을 구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아마 안될 거예요."

 

그의 입에서 "아마 안될 거예요."라는 말은 총 5번 나왔다. 내가 만나본 대다수 공무원들의 입에서는 "아마 안될 거예요."라는 말이 자동으로 흘러나왔다. 나는 안 되는 걸 되도록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불가능과 한계를 넘어 도전하는 것을 좋아한다. 어쨌거나 직업 특성상 분주하게 뛰어다니면서 결과를 만들어내는 일들이 무척 수고롭고 번거로운 일이라는 것은 안다. 공무원 아닌가! 다만 같은 말이라도 상대방이 용기를 잃지 않고 힘 있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도록 적절한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어떨까?

 

"제가 모든 정보를 알아본 뒤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혹 연락처나 이메일 주소를 좀 알려주시겠습니까?"

 

대다수의 사람들이 '소망하지만 이루지 못하는 일들'을 하나 둘 가지고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터무니없는 꿈이거나, 믿음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믿음을 가진 사람은, 소망만 가지고 있는 사람보다 어떤 형식으로든지 발전된 삶을 만들어가게 마련이다. 불가능해보이는 상황일지라도 "아마 안될 거예요."라고 이야기하는 것보다, "나는 시골에서 자랐습니다. 촌놈이에요."라고 이야기하는 게 훨씬 훌륭하고 멋진 인생이지 않은가? 적어도 협상 자리에서는 말이다.

글/사진=전준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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