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전준우 칼럼] 협상의 품격 시리즈 '확실한 신뢰가 협상을 주도한다'

스타트업엔 2021. 1. 25.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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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는 사업할 수 없습니다.

 

수년전부터 알고 지내던 지인이 있었다. 지인을 통해 알게 된 사람이었다. 가끔 전화통화로 안부 정도만 나누는 사이였는데, 나쁜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으나 상식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행동들을 하곤 했다.

 

“좋은 사업이 있어요. 내일 오전 10시까지 서울 올라올 수 있으시죠?”


“모래 오전 11시쯤 서울은 어때요? 아님 내일 오후 2시에 전주에서 뵐까요?” 이런 식이었다.

 

어느 날엔가 병원장, IT기업의 대표, 변호사를 소개해주겠다고 연락이 왔다. 그 분들이 재테크에 관심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데, 내일 오전 9시 반까지 서울에 올라오실 수 있으세요? 그 분들이 그 시간밖에 안된대요.” “내일은 일정이 있습니다. 다음주 월요일이나 시간이 괜찮겠네요.” “다음주는 안되요. 그럼 금요일 오후 1시에 올라오세요.”

 

몇 번을 거절하다가 서울로 가는 기차를 탔다. 혹시나 하는 1%의 기대로 올라간 것이었다. 초면이라 양복에 넥타이를 메고 간 나와 달리 그 여자분은 후줄근한 평상복을 입고 나왔다. 그 자리에서 “그 분들이 갑자기 연락이 와서 오늘 못오신대요. 그래서 제가 괜찮은 사업을 하나 추천해드리려고 해요.”하고는 네트워크마케팅 사업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는 게 아닌가! “그 여자 별로 믿을 만한 사람이 못되니 되도록이면 만나지 마세요.”하고 이야기하시던 지인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 여자분의 눈을 바라보고 이야기했다.

 

“관심 없습니다.”

 

사실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지인의 권고도 있었거니와 기업가치분석이 필요하니 병원명과 회사명을 알려달라는 나의 말에 “본인들 신상이 밝혀지는 걸 꺼려하세요.”하고 말을 돌리는 태도 때문이었다. 다만 병원장, IT기업의 CEO, 변호사는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기회이거나 거짓말이거나 둘 중에 하나였다. 기회를 제공한 것이라면 사람을 100% 얻는 것이지만, 거짓말을 한 것이라면 한 사람을 정리할 수 있는 또다른 기회이기도 하다. 혹시나 하던 예상은 틀리지 않았지만,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그릇된 선택을 한 내게도 잘못은 있지 않은가. 다행히 서울에 올라간 김에 칼럼을 기고할 수 있도록 지면을 할애해준 신문사 대표님을 만나 훌륭한 조언도 듣고 좋은 정보도 얻을 수 있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귀한 하루를 헛되이 날려버린 최악의 하루가 될 뻔 했다.

◇신뢰가 무너지면

 

권력의 강제성에 의해 불가피하게 협상을 강요받는 경우를 제외하곤 협상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일반적으로 믿을 수 없는 사람과는 협상 자체가 불가능하다. 상황에 따라 사람을 잃을 뿐만 아니라 엄청난 물질적, 정신적 손해를 입기도 한다. 반대로 이야기해서, 올바른 신뢰만 구축해두면 정직한 협상을 통해 사람을 얻을 뿐만 아니라 엄청난 물질적, 정신적 이득을 얻는 상황도 만들 수 있다. 제 3자의 영향력을 활용하는 경우다.

 

최근에 만난 지인이 있다.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는 대표님으로 상당한 부를 쌓은 분이었다. 원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으나 “노력에 비해 수입이 적어서, 언젠가 내 사업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하고 이야기하신 이 분은 직장생활을 정리하는 동시에 운동기구 납품사업을 시작했다고 이야기해주셨다. 거래처는 H자동차 본사 전공장이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주변 분들에게 단단한 신뢰를 구축해두었던 이 분은 성실한 자세, 적절한 단가 조정, 엄격한 제품관리를 필두로 사업을 진행해나갔고 덕분에 연간 수십억원의 순이익을 벌어들일 수 있었다. 3자의 영향력 덕분에 다른 거래처도 손쉽게 접근할 수 있었고, 이는 곧 수월한 협상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적잖은 부를 쌓은 뒤 다양한 영역으로 자신의 사업을 만들어나갈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신뢰에 대해 잊지 말아야 할 몇가지 사실들

 

인간관계에 있어서 상대방에 대한 제 3자의 신뢰와 올바른 정보를 갖기 전에 상대방을 100% 신뢰한다는 것은 사실상 위험한 일이다. 평소 구축해둔 신뢰를 바탕으로 비즈니스를 진행한다면 별다른 협상의 기술 없이도 첫 거래처가 대기업 전사가 될 수도 있지만, 상대방이 협상대상자로서의 가치를 갖고 있다는 확신이 없다면 내가 겪은 것과 비슷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럴 땐 주변사람들을 통한 평판, 이력서, 자기소개서, 칼럼, 인물정보, 개인SNS의 활용을 통해 상대방의 정보를 충분히 습득하고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협상 대상자로서 올바른 사람인지 확인하기 위해 잊지 말아야 할 몇가지 사실들이 있다.

 

1. 명쾌하지 않은 대답은 거짓일 가능성이 많다.

 

앞서 상대방을 만나기 전에 질문을 던졌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어느 병원장입니까? 로펌의 이름은 뭐죠? IT기업이면 어디에 있는 기업이며 회사명이 어떻게 됩니까?”

 

그리고 상대방은 정확하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1%기대감과 더불어 '민감한 사람들이겠거니..'하고 쉽게 생각한 내 실수였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상대방의 말이 거짓이었으리라고 판단할 만한 또다른 질문들을 던져볼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2. 진실/거짓이 의심될 땐 사전에 적절한 보상책을 제시한다.

 

상대가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 의심이 되는 경우든 그렇지 않은 경우든간에 금전적인 문제가 불거질 만한 협상과정에서라면 적절한 보상책을 제시하는 게 도움이 된다. 예비금, 혹은 규칙을 제시하는 것도 좋다. 가령 “만약에 약속이 거짓말이라거나 지켜지지 않는 경우를 대비해서 보상금을 미리 받아두도록 하겠습니다.”하는 식으로. 비슷한 예로 신용보증이 이에 속한다. 미래발전가능성과 잠재력은 충분하지만 재정적 기반이 갖춰지지 않은 기업이 금융기관으로부터 자금을 손쉽게 조달할 수 있도록 보증해주는 것이다.

 

여기에는 한가지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협상과정에서 상대방이 수긍할 수 있는 적절한 보상책을 제시하는 게 중요하다는 점이다. 위와 같은 상황에서 초면인데 “당신이 거짓말을 할지도 모르니 내 차비와 하루 일당 정도는 미리 받아두겠습니다. 만약 엉뚱한 소리를 할거라면 회수할 생각은 하지 마시오.”라고 하는 것도 내 입장에선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래서 서로가 수긍할 만한, 충분히 인정할 만한 보상책을 제시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3. 메세지보다 전화, 전화보다 대면이 협상에 유리하다.

 

청나라의 양강총독, 직례총독이자 태평천국의 난을 평정한 명재상 증국번(曾国藩)은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이 영웅인지 아닌지를 판별해낼 수 있다.”고 말한바 있다. 영웅에게서만 느껴지는 위엄과 기개가 있기 때문에 나온 말일 것이다. 지금 시대는 영웅의 목소리를 가진 사기꾼도 많다.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들과 지속성장할 수 있는 비즈니스를 한다는 것은, 전쟁터에서 핵폭탄을 끌어안고 아군의 벙커 안으로 뛰어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협상은 다양한 상황에서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는 심리적 기술이지만, 여기에서 우리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온라인에서 물건을 판매하는 판매자가 활용할 수 있는 세일즈 기반의 기술이라기보다는 흔히 비즈니스 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상황들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기술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따져봤을 때 메세지보다는 전화, 전화보다는 대면이 협상에 유리하다는 점은 당연한  사실이다.

◇누구와 협상하는가

 

한국 속담에는 이런 말이 있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 고부간의 갈등은 시대를 막론하고 있어왔던 문제다. 시누이는 시어머니의 딸이다. 시어머니를 말린다는 것 자체가 딸의 특권처럼 느껴진다. 며느리 입장에서는 민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불편한 상황을 해소시키려는 시누이의 노력을 모르는 바 아니나 불난 집에 부채질만 하는 격일 것이다.

 

협상은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조정이 없다면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협상에서 3자가 갖는 위치는 무척 중요하다. 동시에 협상자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역시나 진지하게 고찰할 필요가 있다.

 

아내와 나는 죽이 제법 잘 맞는다. 성격에 있어서만큼은 서로의 가려운 부분을 잘 긁어주는 편이다. 일례로 나는 사람을 잘 가리는 편이다. 신뢰할 만한 사람이 아니면 관계를 맺는 것을 꺼려한다. 지극히 소심한 성격탓에 인간관계도 폐쇄적이다. 반면에 사람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크고 작은 실수는 별로 없는 편이다. 신뢰를 바탕으로 하지 않은 모든 것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성격에서 비롯된 습관이다.

 

아내는 굉장히 활발한 성격이다. 누구를 만나더라도 금방 친구가 된다. 결혼하기 전 아내와 연락을 주고 받을 때, 아내와의 결혼을 반대하던 지인이 있었다.

 

“나는 형이 그 여자 안 만났으면 좋겠어. 난 별로 느낌이 안 좋아.” 그러나 아내를 처음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그는 내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형, 저 친구 성격이 정말 좋다. 몰랐는데 형이랑 되게 잘 어울리네. 사람 정말 괜찮다.” 성공적인 협상으로 지금은 그 여자와 한 침대를 쓰고 있다.

글/사진=전준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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