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고] 김강윤 소방관의 이야기 23편 '그림의 힘'

스타트업엔 2020. 12. 16.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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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엔 특별기획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 시리즈 스물세 번째, 김강윤 소방관의 그림에 대한 이야기

 

스타트업엔에서는 특별 기획으로,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연재하고자 한다. 그 스물세 번째 이야기는 불철주야 국민의 안전을 위해 헌신하는 부산 소방본부 산하 특수구조단 수상구조대 소속 김강윤 소방관의 그림에 대한 이야기인 '그림의 힘'이다.

그림 그리기 (사진=김강윤 소방관)

◇그림의 힘

중학교 2학년 때였다. 2학기가 시작될 즈음, 학기 초에 '특활' 시간을 정했다. 나는 친구들이랑 신나게 뛰어놀기 위해 '농구반'을 지원했다. 매주 수요일 오후 두 시간은 친구들이랑 농구를 실컷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1학기 때에도 농구반이었다. 그렇게 오전 조회 시간에 담임선생님이 각자의 특활반 배정을 했다. 그런데 그날 오후 미술 시간에 사달이 났다.

“야! 너!
넌 미술반으로 들어와”

오후 첫 시간이었던 미술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마녀'라는 별명의 미술 선생님이 대뜸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평소 즐겨 사용하던(?) 당구봉으로 나를 지목하면서 말이다. 교단에서 바로 보이는 2분단 중간 자리에 앉아있던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내가 아닌 줄 알았던 거다.

“3번째 줄!
김동은 옆에 앉은 너, 너 말이야!
담임선생님한테 얘기 다 했으니까
특활 시간에 미술부로 와.
알겠지?”

마녀는 무서웠다. 서울 출신에 세련된 옷차림과 아름다운 미모의 선생님이었지만 괜히 별명이 마녀였겠는가? 미술이라는 과목이 그렇게 무서운 과목인 줄 몰랐다. 마녀를 만나기 전에는 말이다. 수업 전 준비물 검사부터 하는데, 준비물 하나라도 안 가지고 오면 반질반질한 당구봉이 엉덩이와 손바닥으로 마구 날라왔다. 거기다가 미술 수업 2시간 동안 마녀 선생님의 기분이 롤러코스터를 탔다.

친구들은 히스테리라 뭐라 말이 말았는데, 무엇 때문인지 알 수는 없었다. 난 미술 시간이 싫지도, 좋지도 않았다. 그냥 준비물이나 잘 챙겨가서 그럭저럭 시간만 보내던 아이였다. 평소 미술 선생님이랑은 말도 한번 썩어보지 않았다.

그렇게 중학교 2학년 2학기 특활 시간을 미술반으로 지냈다. 조금은 부끄러웠다. 남자답게 땀 흘리며 농구 한판 멋들어지게 하고, 매점 가서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 게 특활 시간의 즐거움이었는데 미술반에서는 그게 불가능했다. 마녀가 그렇게 해주길 만무했다. 마녀는 학교 뒷산에 올라 그림을 그리게 했다.

미술 도구를 가지고 산으로 갈 땐 농구장을 지나는데, 그때 농구반에 있는 친구들이 마녀랑 친하냐고 놀려댔다. 어쩌다 미술반에 들어오게 됐는지 한참을 생각해 봤다. 치밀한 자체 조사(?) 끝에 내린 결론은 내 짝이었다. 구미에서 전학 온 '김동은'은 그림을 정말 잘 그렸다. 특히 소묘가 예술이었다. 1학기 때 전학 와서 내 짝이 되었는데 밝은 성격의 녀석과 금방 친해졌다. 그러다 쉬는 시간에 동은이가 끄적인 그림을 보고 나도 가르쳐 달라고 했다. 동은이가 시키는 대로 대충 샤프 팬으로 따라 그려봤다. 재미있었다.

매일 그림을 그렸다. 특히 다른 수업 시간에 그렸다. 그중에서도 수학 시간은 나에게 소묘 시간이었다. 수학 교과서에 내가 좋아하는 드래곤볼 캐릭터를 그렸다. 그걸 동은이에게 보여주고 검사를 받는다. 그러고 둘이 키득거리고 웃었다. 수학 시간에 내가 드디어 할 일이 생긴 것이다. 영어 시간도, 국어 시간도…. 흠…. 그러고 보니 거의 모든 수업 시간에 그렸던 거 같다. 교과서가 온통 그림으로 뒤덮였다. 나는 그림이라기보다 만화라고 생각했다. 드래곤볼, 북두신권, 닥터 슬럼프, 슬램덩크. 그 시절에 유행했던 일본 만화 캐릭터를 마구 그렸다. 잘 그렸느냐고 물어본다면, 그렇지 않았다. 절대로.

동은이가 이실직고했다. 자기가 나를 마녀에게 추천했다고. 동은이는 1학기 때 전학 와서 줄곧 미술반에 있었는데, 특활 시간에 마녀에게 내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생글거리며 말하는 녀석에게 뭐라 대꾸도 못하고 그러려니 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동은이랑 그림이나 신나게 그리자 마음먹었다. 그런데 그림이, 그림이 아니고 고역이었다. 나는 만화를 그리고 싶었는데 마녀는 산을 그리고, 나무와 구름을 그리라고 했다. 마녀의 무서움에 열심히 그리는 척은 했지만, 마음은 농구장의 친구들에게 가 있었다. 몸이 근질거렸다.

아내와 함께 그림 그리기 (사진=김강윤 소방관)

 

23년 전의 일이다. 그 시절 이야기를 장황하게 펼쳐 놓은 이유는 지금 시간과 맞닿아 있기 때문다. 올해 들어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수영이나 스쿠버같이 좋아하는 취미생활을 못 하게 되자 미술을 전공한 아내를 따라 미술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평소 아내의 그림을 볼 때면 '뭐 이 정도쯤이야'라고 근거 없는 자신감을 보였는데 아내가 이참에 같이 다니며 제대로 배우라고 했다. 난 그런 아내에게 호기롭게 외쳤다.

 

“마! 내가 학창 시절에 미술부에 스카우트되었던 몸이시다!”

 

아내의 제안을 단번에 수락하고 당당히 화실에 들어섰다. 뭣에 쓰였는지 수업 첫날 학원 원장님에게도 중학교 시절 미술 선생님께서 친히 나를 미술부에 넣으셨을 정도로 나는 그림 재능을 인정받았던 사람이라고 물어보지도 않은 말을 했다. 함께 있던 학원 선배님들이 빵 터졌다. 그렇게 그림을 배워 나갔다.

 

스카우트는 개뿔…. 뭣이 일 힘드노...’

 

힘들었다. 선과 명암, 원근과 질감까지 연필 하나로 그린다는 것이. 이론과 함께 진행되는 그림 수업은 절대 쉽지 않았다. 어깨, 허리, 목이 쑤셔왔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7개월 넘게 매주 2번 거의 빠지지 않고 학원에 다녔다. 원을 그리고, 정사각형을 그렸다. 벽돌과 소주 병, 손과 귀도 그렸다. 그런데 그릴수록 신기했다.

 

재미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감동이 밀려왔다. 그림을 그릴 때, 손끝에서 전해지는 느낌이 좋았다. 조용한 화실에 울려 퍼지는 사각거리는 연필 소리가 음악 소리만큼 감미로웠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그리다 보면 그림이 완성되었다. 그때의 희열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뿌듯함이 하늘을 찔렀다.

 

살면서 늘 움직이는 것에만 집중했다. 운동을 좋아했고, 군 생활을 6년 하며 베인 습관 때문에 몸은 단 한 순간도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걷기 보다 뛰어야 했고, 조용한 것보다 소리 질러야 했다. 그래야 살아있는 듯했다. 땀을 흘려야 하루를 온전히 잘 살았다고 믿었다. 사람을 많이 만날수록 잘 사는 거라 느꼈다.

엔디 워홀 (그림=김강윤 소방관)

그런데 그림을 그리고 보니 그게 아니란 걸 느낀다. 움직이지 않아도, 조용히 있는데도 충분히 살아있음을 느꼈다. 나의 숨소리가 들리고, 내 손의 근육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이 느껴진다. 땀이 안 나더라도 충분히 숨 쉬고 있음을 알았다.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되었다. 내가 그린 사람들이 나를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잠깐 만나 웃고 떠들다 헤어지는 사람이 아닌 말 없이 한참을 서로를 바라봐야 하는 사람이 하얀 도화지 안에 있었다. 눈가의 주름, 입가의 미소, 미간의 찡그림까지 모두 마음에 담을 수 있는 사람이다. 더 잘 날 필요도 없고, 더 위로 올라갈 필요도 없는 '내 사람'과의 시간이다.

노인 (그림=김강윤 소방관)

아내와 함께해서 좋다. 10년을 넘게 살며 드디어 같이하게 된 취미가 생겼다. 서로 그림 이야기를 한참 한다. 잘하고 못하고가 아니라 그려보니 어떻다는 것을 그대로 전한다. 아내가 좋아하고 내가 좋다. 아내의 미술 관련 책도 같이 본다. 그중에 '방구석 미술관'이라는 책과 '오프 더 레코드 현대미술‘이 가장 재미있었다. 그림 이야기가 이렇게 재미있는 줄 몰랐다. 제가 좋아하는 서양사와도 맥을 같이 한다. 일거양득이다. 유럽의 역사가 미술의 역사임을 알게 되었다. 스쳐 지나듯 봤던 '모나리자'와 '다비드상'을 이제 한참을 바라봐야 할 만큼 오묘해졌다.

 

존경하는 선배의 얼굴을 그려 선물했다. 2주 동안 그렸는데, 집중하고 노력한 끝에 얼추 비슷하게 그린 듯 했다. 문득 해보자는 생각에 시작한 일인데 뿌듯함이 엄청났다. 받는 사람도 너무 좋아하니 이보다 값진 선물이 있을까? 그려서 남 주자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이제 시작한 초보 그린이지만 작은 재주라도 남에게 베푼다는 것이 이리도 기쁠지 몰랐다.

2주 동안 그려 완성한 선배 얼굴 작품 (사진=김강윤 소방관)

중학교 때 마녀, 아니 '박정은' 선생님이 지금은 고맙다. 그때 선생님이 나를 미술부로 데리고 가준 덕에 제가 이 나이에 그림을 배우겠다 나서는데 오히려 자신 있게 해주었으니까 말이다. 동(動) 적인 일을 하며 평생을 살아온 내가 정(靜) 적인 취미를 가지며 삶의 균형이 잡혀가는 듯 하다. 삶을 바라보는 눈이 편안해졌다. 그림 속에 옛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다 보면 지금의 세상을 보는 눈이 차분해진다. 잠시라도 스마트폰에서 시선을 떼면 불안하던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는 스마트폰이 없어도 마음이 그렇게 편안해질 수가 없다.

 

그림이라는 이미지가 주는 놀라운 희열을 이제라도 알게 되어 기쁘다. 그림이 주는 힘을 나도 가지게 될 수 있어 즐겁다. 잘 그리지 못해도 된다. 아니 잘 그리지 못하니 더 하고 싶다. 이룰 것 없는 아마추어이니 당연한 거다. 뭐든 하고 싶은 나이 마흔세 살(?)이다. 운동하며 몸을 건강하게 하고, 글을 읽고 쓰며 얕은 지식을 알게 되며, 그림을 그리면서 작은 미적 감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내 삶을 풍요롭게 한다. 감히 말하지만 더는 부러울 것이 없을 만하다. 그래서 지금의 삶이 너무 좋다.

글/사진=김강윤 소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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