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전준우 칼럼 '글을 쓰는 시간, 4시 50분'

스타트업엔 2020. 12. 7.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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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힘

 

아침 4시 50분.

 

10개월 째에 접어든 아들의 머리맡에서 울리는 자장가소리는 아들과 아내의 잠을 깨우지 않기 위해 설정해둔 알람이다. 처음엔 잠결에 꺼버리기 일쑤였지만 이제는 제법 익숙해졌다.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물로 계란후라이를 해서 김치와 밥을 먹고, 출근을 준비한다. 되도록이면 아침밥은 내가 차려먹는다.

 

곤히 자는 아내와 아들의 얼굴을 보고 아침 6시에 사무실로 출근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심지어 6시까지 사무실로 출근을 하는 경우도 있다. 새벽에 출근하면서 만나는 일출은 8시나 9시에 출근할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멋이 있다. 업무효율성 역시 9시에 출근할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높다.

새벽에 혼자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 보면, 낮시간에 가져보지 못한 집중력이 생기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칼럼을 쓰고, 자료를 만들고, 고객리스트를 업데이트하고, 제안서를 만드는 일이 새벽 2,3시간 안에 모두 끝난다. 느긋한 마음으로 시작하면 하루종일 걸리는 일이다.

 

이렇게 아침을 여유롭게 활용하다 보면 얻어지는 게 많은데, 한 편으론 아쉬움도 있다. 울산이라는 도시가 서울처럼만큼은 교육 시스템과 인프라가 체계적이지 못해서 생기는 아쉬움이 그것이다. 수도와 지방의 간극은 개인의 노력으로 좁혀질 수 없는 부분이다.

 

아내가 일을 시작했고 육아를 같이 하기로 결정하면서부터 아침형 인간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하긴 했지만, 그런 결심 때문에 사람이 바뀐 건 아니다. 아침 일찍 출근하게 된 계기 같은 건 없다. 어느 날 문득, 아침 일찍 일어나서 아무도 없는 새벽에 출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는 시간이 몹시 아깝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온 세상이 바쁘게 움직이는 아침에 부스스한 머리로 일어나서 패배자처럼 하루를 시작한다는 게 몹시 처량하게 느껴졌다. 견딜 수 없이 피곤한 날에는 늦잠을 자기도 했지만 대개 아침 5시를 기점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렇게 새벽에 일어났을 때, 평상시 아침과는 다른 새벽의 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적막감이 맴도는 거실과 서재에 가만히 서서 묵상을 하는 시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들 중 하나다. 그렇게 행복하고 평안할 수 없다. 수북히 쌓여있는 서재의 책들, 정리라고는 전혀 되지 않고 제멋대로 놓여진 책상 위 볼펜과 지우개가루들도 운치있게 느껴지는 시간이 바로 새벽시간이다.

 

잠들기 전만 해도 ‘내일 아침엔 반드시 깔끔하게 정리해두리라’ 다짐하지만, 새벽에 만나는 서재의 풍경은 간밤의 각오가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아늑하고 따뜻하다. 굳이 정리하려고 마음을 들이지 않아도 될 보고만 있어도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다. 나는 이처럼 적막감이 맴도는 서재와 사무실에서의 시간을 사랑한다.

◇사색의 시간

 

새벽의 뜻은 ‘먼 동이 트려 할 무렵’이고, ‘먼 동’의 의미는 ‘날이 밝아오는 무렵의 동쪽’이다. 그러니까 새벽은 동쪽에서 해가 떠오르기 전 어스름한 시간대를 의미한다. 한자로는 신명晨明, 효천曉天이라고도 이야기하는데, 그러고 보면 한여름 아침 6시는 새벽시간이라고 하기엔 이치에 맞지 않다. 이미 밝은 아침이라 새벽이라고 하기엔 뭔가 어감이 맞지 않는 느낌이다.

 

반면에 11월이나 12월에는 아침 7시가 되어도 아직 어둑어둑한 기운이 있다. 그래서 겨울엔 아침 6시만 되어도 새벽이라고 하기에 어색하지 않다. 그렇기로서니 아침 6시를 새벽이라고 하기엔 역시 뭔가 어감이 맞지 않는 듯 하다.

 

20대 후반의 나는 늘 새벽에 일어났다. 밤 11시나 12시쯤 잠자리에 들면 3시 반~4시에 일어나서 책을 보고 기도했다. 아무리 늦어도 5시 반에는 일어났다. 새벽이 영 어색한 단어는 아니다. 그 조용함과 적막함이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맑은 정신으로 어느 한 가지에 깊게 몰두해서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내 인생에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자 즐거움이었다. 잊을 수 없는 시간이다.

사업은 어렵다. 하루에 4시간만 일하는 날도 있지만 14시간 이상 일하는 날도 많다. 하루에 14시간씩 일하는 건 힘든 일이다. 그러나 사는 데 많은 돈이 필요한 건 아니다. 그렇고말고! 아무렴 돈보다는 마음을 먼저 지키는 게 더 중요한 일 아닌가? 그 마음을 제대로 지키지 못해서 나태함이라는 병에 빠져버린 적도 많다. 대개 직장생활에서 오는 경우다.

 

결혼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가끔 위기가 찾아왔다. 한동안 아침 5시 반에 일어나서 운동을 다니기도 했다. 그러다 점차 7시에 일어나는 것도 버거워지기 시작했고, 9시가 다 되어서야 겨우겨우 일어나서 일터로 가는 경우가 생겼다. 남의 회사에서 오직 밥벌이만을 위해 일하다 보면 으레 생기는 병이다. 다행히 늦잠의 습관은 오래 가지 않는다. 머리가 무겁고, 아침밥이 모래처럼 느껴지고, 출근을 해서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무렵이 되면 새벽 기상이 그리워진다.  이러면 안되는데, 하고 느끼는 때가 온다. 그럼 다시 새벽에 일어나는 일상이 반복된다. 강요에 의한 습관이 아닌 오직 필요에 의한 습관인 것이다.

 

나폴레온 힐은 어떤 사람을 알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다음과 같다.

 

· 평소의 자세
· 그 사람의 걸음걸이
· 대화할 때 사용하는 어휘와 단어
· 경향, 수준, 독특한 특성
· 돈, 사랑, 희로애락에 관련된 문제 앞에서 취하는 행동

 

사실 이런 것들은 인간관계에 대해 고찰하게 되는 순간부터 터득할 수 있는 관찰의 기술에 불과하다. 사람의 마음은 비슷한 모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폴레온 힐은 앞에서 언급한 몇 가지 외에 또 다른 한 가지를 강조하고 있다. 바로 '무엇인가를 쓰고 있을 때'이다. 무엇을 쓰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격과 품격이 어느 정도는 드러난다는 말일 것이다.

◇사색의 글을 쓰며

 

"저도 책을 즐겨봅니다. 책을 보면 잠이 오거든요."

 

서로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어느 분이 내게 한 말이다. 우스갯소리로 흘려듣긴 했으나, 사색을 거친 글과 그렇지 않은 글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점을 발견하기엔 그다지 권유할 만한 태도는 아니다.

 

사색을 거친 글은 앵무새처럼 써내려간 글과 분명한 차이가 있다. 나폴레온 힐, 브라이언 트레이시, 팀 패리스, 스노우폭스 그룹의 대표이자『김밥파는 CEO』, 『돈의 속성』을 쓴 김승호 회장의 책은 똑같은 자기계발서임에도 불구하고 남다른 깊이가 있다. 그들의 글은 왜 깊이가 있을까?

 

20대 때의 나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성공, 그러니까 ‘돈을 많이 버는 것’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독서, 봉사, 사색, 신앙, 그리고 예술적인 의미를 가진 모든 것에 가장 큰 가치를 부여했다. 음악감상과 영화보기가 취미였고 카메라 하나 달랑 메고 사진 찍으러 다니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꾸준한 사색을 기점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사업 역시 성공적으로 키워나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든 사업에서 실패하고 비로소 나를 돌아볼 만한 때가 되어서야 알게 된 사실이었다. 뿐만 아니라 독서, 봉사, 신앙, 예술적인 의미를 가진 모든 것들은 다양한 방면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습관이거나 마음을 훈련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진 모든 것들이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성공의 도구이자 밑바탕이 되었던 좋은 습관들이었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들 대부분이 책을 쓰거나 글을 쓰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들은 모두 이른 새벽에 하루를 시작했다. 물론 늦잠을 자면서 성공하는 사람도 있다. 늦잠을 자면서 엄청난 부를 누린 사람도 있을 줄 안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새벽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양치질을 한다. 양치질을 한 뒤 소변을 보고, 부엌으로 가서 깨끗한 물을 마신다. 기상 직후 500ml 큰 컵에 물을 가득 채워서 마시는 게 습관으로 자리잡은 지 10년 정도 되었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면서 간단하게 스트레칭을 하고, 샤워를 마치면 바디로션을 담뿍 발라서 촉촉한 피부를 유지한다.

 

자기 전에 취사버튼을 눌러둔 밥솥에서 밥을 뜨고, 김치와 김을 꺼내고, 물로 계란후라이를 해서 아침밥을 먹는다. 이렇게 아침밥을 먹고 나면 비로소 나의 새벽이 서재, 혹은 사무실에서 시작된다. 글쓰기와 사색의 시간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조용한 새벽시간을 늦잠과 맞바꾼 것은 매우 훌륭하고 멋진 일이다.

새벽 글쓰기와 새벽 독서는 고요한 품격을 만드는데 큰 도움이 되는 훌륭한 기회다. 이 때 아무 글이나 써선 안되고 아무 책이나 읽어서도 안된다. 잠을 물리친 나의 새벽과 맞바꾼 시간이기 때문이다.

 

새벽의 장점은 많다. 일례로 새벽은 만물에 감사하기에 무척 좋은 시간이다. 새로운 하루를 시작함에 감사하고, 심장이 건강히 뛰고 있음에 감사하고, 아내와 아들의 잠든 얼굴을 볼 수 있음에 감사하다. 또한 새벽은 가장 맑은 정신으로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주고, 성경이나 책을 읽는 동안 마음에 소망을 가득 채우는 일을 한다.

 

하루 중에서 가장 감사와 소망으로 가득한 아침에 쓰는 글, 독서, 기도는 말할 수 없는 깊이의 풍요로움을 담고 있다. 새벽은 이처럼 아름다운 시간이다. 소망으로 가득한 어린아이의 마음처럼 담백하고 맑은 글을 쓰기에 새벽이란 얼마나 훌륭한 시간인가?

글/사진 전준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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