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전준우 칼럼] 협상의 품격 시리즈 '문화적 차이와 심리적 괴리'

스타트업엔 2021. 5. 24.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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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차이

 

최근 들어 약 4,000명에 달하는 학생들이 참여하는 온라인 캠프에서 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이 아이들이 차분하고 소극적인 반면, 외국의 아이들, 인도, 필리핀, 그리고 중남미 아이들은 아주 밝고 활기차다. 어린 아이의 밝고 순수한 마음을 갖고 사는 외국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내 마음까지 소망으로 가득차는 걸 느낀다.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자유로운 소통과 표현이 내게는 익숙하지 않다. 10대와 30대의 차이인 셈이다. 대한민국이라는 단일국가에서 태어나 유년시절과 학창시절을 보내고 사회인으로 성장한 나, 다수의 인종이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고 공유하는 문화에서 자라나 평생을 살게 될 아이들이 가진 내면의 세계는 내가 가진 그것과 전혀 다른 무엇인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느낀다. 너무 예쁘고, 귀엽고, 착하다. 나의 시선과 살아온 환경만으로 아이들을 대하면 안된다. 문화적 차이를 좁히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수고와 노력이 필요하다.

앞서 이야기한 표범의 사례처럼, 아이들에게는 표범이 가진 보이지 않는 힘과 야성을 볼 만한 눈이 없었다. 그래서 추장의 말을 들을 수 없었고, 이해할 수도 없었으며, 도리어 귀찮고 번거로운 잔소리 정도로만 생각했다. 문화적 차이는 심리적 괴리와도 연결된다. 아이들의 눈에는 아버지와 다른, 모든 일에 부정적으로만 반응하는 케케묵은 잔소리꾼 정도로만 느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는 가장 큰 힘은 다름의 인정이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다르다. 부부가 한 집에서 평생을 같이 살아도 마음이 다를 수 있다. 아무리 친한 친구 사이라 해도 의견충돌이 없을 수는 없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에서 효율적인 협상이 빛을 발할 수 있다. 버락 오바마로 하여금 역사에 남는 흑인 대통령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었던 가장 큰 계기가 다름을 인정하는 가운데 평등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얼마나 위대하고 탁월한 선택인지 알 수 있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동등한 결과를 약속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성공할 수 있는 동등한 기회를 가져야한다는 생각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당신이 누구든, 어떻게 생겼든, 어디서 왔든, 당신은 해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미국이 당신에게 줄 수 있는 궁극적인 약속입니다. 당신의 인생이 어디에서 시작하든지간에, 어디서 끝나는지는 결정하지 않아야 합니다. 모두가 대학에 가고 싶어해서 기쁩니다. 그 안에는 당신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버락 오바마 2014년 연설문 중에서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 젊은 시절 즐겨듣던 ROCK음악을 듣는 것을 제외하곤 평소 나의 음악적 취향은 클래식에 가깝다. 최신 유행곡은 나와 맞지 않는다. 가사에 의미를 담은 옛날노래가 내겐 더 익숙하고 듣기에 부담이 없다. 어디까지나 내 기준이다. 온라인에서 만난 4,000명의 학생들은 BTS에 열광하고, 정작 한국인인 나조차도 별로 관심있게 보지 않은 종영드라마 '도깨비'의 OST를 따라불렀다. 우리는 서로 다른 나라에서 다른 언어를 배웠고, 다른 문화를 경험했으며, 전혀 다른 풍토병과 교육환경 속에 노출되어 왔다. 그들은 10대 여중생과 여고생이며, 나는 마흔을 바라보는 '아재'다. 서로에 대한 이해, 더 가까워지려는 노력, 작은 배려가 없다면 관계는 쉽게 느슨해진다.

◇상호 의존성

 

온라인에서 만난 아이들에게 나는 새로운 단어들을 몇가지 배웠다. 그 중 아이들을 통해 배운 sanaol이라는 단어는 hope all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모든 희망? 모든 이들을 위한 희망? 우리 모두의 희망? 콕 집어 무엇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우나, 모든 것이 다른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단어는 sanaol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kpop, kdrama, 한국요리를 가르쳐주고, 그들은 나에게 자신들의 나라에서 일어나는 흥미진진한 일들, 문화, 그 외 상호간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들을 제공해준다.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의 빚을 지는 셈이다.

 

협상은 독단적인 선택이 아니다. 상호의존성을 띠고 있는 법칙이다. 문제는 이 상호의존성이라는 게 어떤 사람들에게 유용하냐는 것이다. 사기꾼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 상호의존성이라는 단어가 존재할 수는 없다. 상호의존성은 신뢰할 만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흔히 사용될 수 있는 단어다.

 

적응 무의식adaptive unconscious이라는 단어가 있다. 깊은 사고를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직감적으로 결과를 도출해내는 식의 뇌과학, 혹은 심리학 분야에서 통용되는 단어다. 일례로 늦은 밤 혼자 길을 가고 있는데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를 쓴 채 손에 날카로운 칼을 들고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사람을 만난다고 해보자. 사실 여부를 가릴 필요도 없이 직감적으로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반면 밝은 대낯에 길거리에 아기가 타고 있는 유모차가 천천히 앞으로 굴러가고 있다면 , 아무런 생각조차 없는 사람이 아닌 바에야, 생각할 겨를도 없이 뛰어가서 잡을 것이다. 모두 어떤 것이 옳은 선택인지 직감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신속한 결정이라는 것이 심사숙고 후 내리는 결정보다 꼭 나쁘다고만 이야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온라인에서 만난 수백명의 아이들과 나는 서로가 서로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한국문화에 익숙한 나를 통해 한국사람들이 가진 매력, 문화, 언어를 배울 기회를 갖게 되었고, 나는 다양한 문화권 안에서 틀에 갇히지 않고 상황에 구애받지 않는 매력적이고 훌륭한 인품을 가진 학생들을 사귈 기회가 있었다. 몇 마디 나눠보지 않아도, 우리는 서로에게 다양한 도움을 줄 수 있는 관계가 된 것이다.

◇심리적 괴리와 대화의 거리

 

20년이 넘는 나이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긍정적인 관계가 형성되는 이유는 단순하다. 서로가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비교적 정확히 알 수 있고, 모임을 주관하는 교사와 학생 관계라는 점에서 쉽게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배우는 사람은 가르치는 사람이 요구하는 제안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가르치는 사람 역시 배우려는 사람에게 쉽게 마음을 열 수 있다. 반면 다방면적인 측면에서 인정받을 만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심리적 괴리감 때문에 대화의 거리가 먼 경우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표범에게 죽임을 당한 아이들은 새끼표범을 기르고 있었다. 추장의 경고를 한 귀로 흘리면서도, 추장의 보호 아래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주변 사람들은 왜 추장에게 표범의 위험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그들은 어린 아이들보다 정글과 표범의 위험성에 대해 훨씬 자세히 알고 있었고, 정글에서 추장의 권위가 어떤 것인지도 알고 있었다. 앞서 이야기한 적응무의식adaptive unconscious이라는 어려운 단어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새끼표범을 보는 순간 직감적으로 위험한 짐승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고, 아이들이 그저 귀여운 애완동물로만 생각하는 것이 매우 위험한 생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대화의 거리와 심리적 거리를 좁히면서 성공적인 협상의 기회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세밀하게 다듬어진 통찰력이 필요하다. 흔히 통찰력이라고 하는 것의 의미를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통찰력이라는 것이 강한 의지나 곧은 심성과는 별다른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통찰력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문제를 정확하게 궤뚫어보는 지혜를 의미하지만, 결정적인 상황에서 확신을 가지고 일을 추진하거나 결정하는 마음의 힘도 포함되는 단어다. 언제 어디서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지 모르는 정글 속에서 늘 창을 들고 다니며 주변을 배회하는 추장의 모습처럼, 정확한 협상을 위해 필요한 것은 깊고 세밀한 통찰력이라고 할 수 있다.

글/사진=전준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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